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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47화 (247/374)

247화

영역 확장

"끄응..."

후퇴하는 병사들을 본 성주는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이미 저들이 쉽지 않은 상대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는 일이 전혀 없으니 골치를 썩이고 있다. 당장도 충분히 이기진 못하더라도 충분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전투는 결국 그들의 패배로 끝이 났다.

병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이상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저 숲으로 들이박는다고 얻는것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 상황이 만들어진 자신의 무능을 한심해하고 자책하면서 성주는 하루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후퇴해야겠군"

다음날, 한참 동안 얼굴을 감싸쥐고 고민에 잠겼던 그는 후퇴라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성주가 결정을 내리고 지시를 내리자 병사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제법 그럴싸하게 차려졌던 진영은 차려진 이상으로 빠르게 회수되었다. 다만 숲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몇몇 감시자들과 그들이 머물 자리를 남겨두었다.

정리가 끝나자 그들의 후퇴는 신속했다. 만에 하나 저 숲속에서 고블린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경계하는 듯 싶었다. 그렇게 성주와 병사는 허무하게 두번째 회군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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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이 회군을 하는 때에 맞춰서, 루프스가 이끄는 고블린들이 숲에 도착하였다.

"흠"

분주히 움직이는 인간들을 보면서, 그는 입맛을 다셨다. 저들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거기에 전투에 대한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루프스도 저들이 물러나려고 저리 분주히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저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처들어온다면, 이번에는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까지 함께 몰살시키고자 생각했기에 아쉬워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물러난 이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그는 이 숲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엘라에게 다가갔다.

"어려운 일은 없었나?"

루프스는 그녀에게 치하를 내리면서 문제는 없었는지를 물었다.

"새롭게 개발한 방어법이 생각보다 유효했고, 고블린 여러분도 지시를 잘 따라줬죠. 그리고 적들도 생각보다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으니 딱히 문제랄건 없었어요"

엘라의 말에 루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별로 문제는 없었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엘라에게 치하의 말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숲을 방어해주기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뭐... 어차피 한동안은 여기 그대로 있을 생각이예요. 인간들에게 제법 사전 시험을 하듯이 사용해 봤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한 것들도 제법 있으니 말이죠"

그녀의 이야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더 남아준다면 그로서도 더 바랄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시험이 어느정도 끝나면, 부하들에게 맡겨둘 생각이예요. 제가 여기서 언제까지고 있는것도 문제니까 말이죠"

그녀는 잊지 말라는 듯이 그에게 이야기했다. 엘라가 현재 이곳을 맡아주고는 있다지만, 그래뵈도 그녀는 이제 엘프들의 수장으로서 움직여야 하는 이였다. 당연히 무작정 이곳을 지켜주고 있을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나가있는 동안만 방어해주면 된다"

그리고 루프스도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잠시 고블린들을 이끌고 외유를 하는 동안 지켜주는 것이었다. 무슨 성과를 내서 새로운 영역을 얻어내던지, 아니면 실패해서 후퇴를 하던지 외유의 결과만 얻어낼때까지만 지켜주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다. 그리고 엘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왠만하면 그의 바램을 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럼 하룻동안 신세지도록 하지"

루프스는 엘라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그녀와 헤어졌다. 간만에 다시 얼굴을 마주한 만큼, 밤에는 다시 만날 예정이었지만 그 전에는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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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간을 숲속에서 그대로 보냈다. 굳이 이곳에서 보내지 않고, 요새에서 출발을 하루 늦춰도 되었겠지만 이것엔 루프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엘라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겠단 생각이 그 첫번째였고, 직접 두 눈으로 처들어왔다는 인간 병사들을 확인하겠다는 것이 두번째였다.

과연 하루의 시간동안 잠잠히 있으니, 그들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았는지 다음날 일어나보니 이미 병사들은 대부분이 물러난 뒤였다. 숲을 감시하기 위한 소수의 병력들을 제외한 모두가 물러난 듯이 보였다.

그들의 존재는 루프스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준비가 끝나고 함께 떠날 고블린들도 그의 뒤에 도열했다. 한차례 뒤를 돌아 부하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엘라와 그녀의 부하, 혹은 가족이라고도 부르는 엘프들 그리고 일단의 고블린들이 그들의 곁에서 떠나가려는 루프스와 고블린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함께 떠나는 고블린들이 그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이 자리에 있는 고블린들을 보아하니, 과거 처음 그가 부족을 만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또 그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그의 뒤를 받쳐주니, 괜스래 울컥하는 느낌도 들었다. 특히나 이것이 그가 일군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했다.

"출발하지"

잠시 감상에 빠졌던 그였지만, 그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고블린들을 이끌고 숲을 빠져나왔다.

숲의 바깥으로 나서는 고블린과 그들의 리더 루프스의 모습은 멀리서 숲의 모습을 감시하던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전투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 당연히 숲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으니 더욱 발견이 빨랐다.

"쏴라"

루프스는 담담하게 고블린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미리 대기중이던 고블린들이 순간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병사들을 향해서 화살을 쏘아올렸다.

후두두두두둑

"끄악!"

"으아악!"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후퇴하려는 이들과, 잠시라도 고블린들의 전진을 막으려는 이들로 나뉘어졌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들이 움직였을 때는, 이미 화살은 쏘아진 뒤였고 전열을 다잡으려 할 때는 화살이 그들에게 도착했다.

화살 공격을 피하지 못한 그들은 순식간에 당해버리고 말았다. 간신히 살아남아 저들이 밖으로 뛰쳐나왔음을 전달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남은 이들을 처치하고자 고블린들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거리에서 그들이 전멸하는 모습을 확인한 루프스는 그대로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바로 발치에서 확인 하는게 가능 할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확인 사살로 끝 마무리를 지어라"

루프스는 무감정하게 부하 고블린들에게 그렇게 지시했고, 고블린들은 그의 지시에 따랐다.

분명히 죽은것이 확실해 보이는 이들도, 어쩌면 운 좋게 살아남아있을수도 있는 이들도 예외없이 고블린들이 꽂아넣는 확인 사살에 분명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이 자리에 있던 모든 병사들의 전멸을 확인한 루프스는 다시 행군했다. 지면에 남아있는 병사들의 발자취를 쫒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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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패를 어떻게 만회해야하는가, 머리를 싸매쥐고 고민에 잠겼던 르윅 성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민 자체를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했다.

"보...보고! 드립니다!"

갑작스럽게 후방쪽에서 한 병사가 다금하게 그를 찾아왔다. 본래라면 병사가 그에게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몰골이 너무나 초췌한 것이 누구나 무언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해, 빠르게 그에게 도달한 것이다.

"무슨일이지?"

돌아가는 길에 뭔가 문제가 생길거란 생각을 전혀 안했기 때문인가, 그는 다급해 보이는 병사의 몰골을 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후방에서 고블린이 나타났습니다! 그 수가 물경 수천에 이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중 일부가 습격을 가해와서 후방이 와해되었습니다!"

병사가 다급하게 전하는 소식은 선두에서 진행하던 병력들을 웅성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주가 그들에게 대비하라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습격해왔다는 고블린들의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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