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또 다른 전투
뒤늦게 도착한 고블린들은 비교적 진니 힘이 약한 이들이다. 애초에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급 고블린들이 먼저 앞서나간 시점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온몸에 화상을 입어, 거동이 불편한것이 사실이라고는 하나 충분히 기사들과 일대일로 버티는게 가능했다. 마법사들이 일시적으로 무력화되고, 갓 도착한 고블린들이 난전의 틈바구니로 끼어들던 그 때. 먼저 적을 상대하고 있던 고블린들이 그들을 붙들었다.
눈 앞의 적을 신경쓰느라 주변 상황을 미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기사들은 틈바구니로 파고들어오는 고블린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푸욱-
한 고블린의 손아귀에 쥐어진 단검이 한 기사의 허리춤으로 파고들어갔다.
"커헉"
본래라면 갑옷을 뚫고 들어 갈 수 있을리가 없으나, 고블린이 찔러 넣은 곳은 골반 관절이 움직이는 부분. 어쩔 수 없이 이음매 때문에 부실해지는 틈새였다.
고블린의 공격에 기사는 일순 몸이 경직되었다. 그것은 고통 때문일수도,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놀란 것일 수도 있지만 모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멈칫한 순간 그가 상대하던 고블린에게는 큰 틈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블린들의 키는 작다. 최하급 고블린은 기껏해야 성인 남성의 절반이 될까 싶으며, 어느정도 성장한 중급 고블린도 간신히 키가 좀 작은 성인과 비슷한 크기가 될 뿐이다. 당연히 기사들과 비교적 눈높이가 맞는 것은 중급 고블린들이었고, 그들에 집중하던 그들에게 갑자기 파고든 하급과 최하급 고블린들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한 기사의 허리춤에 칼을 꽂아넣는 것은 단순한 시작이었다.
한 고블린이 다른 기사의 허리춤에 칼을 찔러 넣고, 어떤 고블린은 뛰어올라 단번에 목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바로 눈 앞에 상대해야 할 적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까지 신경 쓸 수 있는 기사들은 소수였고,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속수무책으로 그들에게 당할수 밖에 없었다.
기사들이 낭패를 당해, 밀리는 모습을 보이는 동안 자경대와 마법사들은 그들을 돕지 못했다.
덥썩-
"흡"
약한 기합성을 내뱉으면서 쿠알론은 한 마법사를 잡아들고는 휘둘렀다. 사람이 아닌, 단순한 도구를 휘두르는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후우웅 후웅 후웅
"으아아!...아아!...아악!"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한손에 들린 마법사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적들이 함부로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다. 본래 마법사들을 지키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경대들도 그를 향해 창을 겨눌 뿐, 별다른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흡! 흡! 흐하하하 이거 재미있구만!"
홀로 사뭇 다른 분위기의 쿠알론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손아귀에 쥔 인간을 휘둘렀다.
"으아...가아아아...가르르르르"
스스로의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경험은 흔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고, 당연히 쿠알론의 손에 휘둘러지는 마법사로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휘둘러지면 휘둘러질수록 점점 의식을 유지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휘둘러지는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쉬이익- 퍼억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그를 이제 볼일은 없다는 듯 집어던진 쿠알론은 다음 먹잇감을 찾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으아아아아앗!"
그의 모습에 공포에 휩싸인 마법사들이었지만, 아무도 그 손에 들리지 않은 그 틈에 자경대들도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일단 무작정 돌격하고 본 그들은 손아귀에 들고 있는 창을 검을 그를 향해서 찔러넣었다.
기긱- 끼기깅-
그들의 공격에 그도 일단 생물이라는 듯이 무기는 박혀들어갔지만, 그것도 조금 뿐이었다. 그의 몸에 박힌 칼날은 오히려 근육에 밀리듯이 지날수록 안으로 파고드는게 아닌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에게 공격받은 쿠알론의 태도는 이질적이었다. 마치 저들의 공격이 자신에게 제대로 된 피해를 줄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을 이은 것이다.
텁
그는 자신을 찔러온 무구중 한 창을 집었다.
"익- 이이익!"
창은 당연히 그 주인인 자경대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이고, 그는 쿠알론의 손아귀에서 창을 빼내려 했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도 요지부동이었다.
스윽-
그리고 쿠알론은 자연스럽게 창을 들어올렸고, 그 끝에는 창의 주인도 딸려 올라갔다. 창을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부여잡고 있었지만, 그가 몇번 휘두르자 손아귀에 힘이 풀린 그는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연스레 무기를 얻은 쿠알론은 굳이 바꿔 잡지 않고, 촉이 없는 부분을 여전히 자신을 향해 공격하는 자경대를 향해서 휘둘렀다.
부웅- 퍼벅- 퍽 퍽- 퍽!
쿠알론이 휘두른 창에 죽는 이는 없었지만 다수의 자경대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튕겨졌다. 그가 한가롭게 놀듯이 상대하는 사이, 어느새 다시 모여서 마법을 완성한 마법사들은 그를 향해서 마법을 발동 시켰다.
"ㅡㅡ!"
"ㅡㅡㅡㅡ!"
"ㅡㅡㅡ"
쿠알론을 향해 쏟아지는 마법은 연계를 신경쓴듯 먼저 그를 흠뻑 젖게 만들더니, 이어서 전격이 날아오고 이후 그대로 얼려버렸다. 그 상태에서 돌덩이들이 날아들어 공격하고, 이어서 화염과 바람으로 그 공격력을 더욱 키워서 공격해왔다.
심혈을 기울인 듯한 공격이었지만, 마법의 한복판에서 빠져나온 그의 모습은 군데군데 얼어있고 흙먼지와 그을음이 묻었지만 멀쩡한 모습이었다.
다만 마법사들이 신경쓰이긴 했는지, 자경대 보다는 그들을 우선시해서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놀듯이 마법사들과 자경대들을 상대하는 동안, 고블린들과 기사들의 난전도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캬앗!
하나 둘, 작은 고블린들에게 기습을 당한 기사들이 쓰러졌다. 당연히 기사들로서도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힘들어졌다. 중급 고블린들을 상대하기 바빴던 그들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고, 자연스럽게 틈을 보여주는 일이 잦아져 일종의 눈치싸움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사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그들이 줄어드는 만큼 한명의 기사가 상대해야 하는 고블린들의 숫자는 늘어만 갔다. 마법사들의 원호라도 있었다면 다시 우위를 잡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들은 현재 쿠알론 단 한명에게 농락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만 갔고, 점점 쓰러져간 기사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기사가 그 몸을 땅에 누이고는 그들의 전투는 끝을 맺었다.
기사들을 상대하면서 고블린들이라고 피해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각자 나름대로의 상처를 입고, 몇몇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격렬하진 않더라도 서로 눈치에 눈치를 보느라 심력을 소모한 고블린들도 지치기는 매한가지 였다.
쿠알론도 힐긋 힐긋 중간에 한번씩 그들의 상황을 살폈기에 전투가 끝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씨익-
저들의 전투가 끝나자 미소를 지은 쿠알론은 이제 정말로 끝을 내겠다는 듯이 자세를 다잡았다. 그리고 벌어지는 일은 그가 지금까지 자경대와 마법사들을 상대하던 것이 놀이였다고 주장하는 듯 했다.
쿠웅-
그는 손아귀에 쥔 창을 땅에 내리 꽂았고, 지면은 그에 반응하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땅이 출렁이자, 고블린들은 무슨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는 듯 그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런 고블린들의 움직임과, 어쩐지 진지해보이는 쿠알론의 모습에 위기감을 마법사들도 자경대도 그들을 지휘하는 칼튼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패배가 분명한 상황, 칼튼은 후퇴를 지시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쿠르르르릉
출렁이던 땅은 이내 진동을 만들어내더니 여기저기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쿠과과과과과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금이 간 땅은 다시 한번 출렁이더니, 땅의 여기저기가 튀어나오고 서로 어긋나면서 강력한 지진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벌어졌다 닫히기를 반복하고 한번 튀어나온 자리가 다시 튀어나오고, 갑작스레 꺼졌던 땅이 튀어나오더니 다시 꺼지기를 반복하는 혼란스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 땅 위에 온전히 발을 들이고 있던 마법사들과 자경대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면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벌어진 틈 사이로 떨어져갔다.
그리고 모든 현상이 끝났을 때,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멀직이 떨어진 고블린들과, 무릎을 꿇고 땅에 박아넣은 창을 붙잡고 있던 쿠알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