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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40화 (240/374)

240화

또 다른 전투

고블린들의 틈바구니, 특히나 쿠알론의 부족에서는 한끗발 날리는 중급 고블린들. 그리고 인간들, 특히나 제라임 성에서 가장 정예라고 부를 수 있는 기사들의 충돌은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다.

쿠웅-

서로가 들고 있는 무기와 무기의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마차와 마차가 충돌한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두 무리의 전투는 누군가의 우세라고 점치기 어려웠다. 고블린들 하나 하나가 상당히 강력했지만, 그에 맞서는 기사들도 그에 못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변수가 되는 것은 기사들의 후방에서 무언가를 준비중인 마법사들과 쓰러진 동족을 짓밟고 전진하고 있는 고블린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비교적 초조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마법사들이었다.

"큭, 어째서 저런 놈들이 떼거지로 나타난거야?"

이곳에 있는 기사들과 마법사들 모두를 이끌고 있는 대장, 칼튼은 이를 갈면서 고블린과 기사가 충돌하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최근 몇일 동안 고블린들의 공격이 없어 이 마을에서 한가롭게 지내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그와 그의 부대는 많은 고블린들을 참살했고, 그동안 처들어오는 고블린들을 경험하면서 저들의 전력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했다. 아니, 짐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따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 저 앞에서 기사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중급의 수준에 도달한 고블린일 것이다. 그것은 최하급과 하급의 고블린들 모두 상대해본 경험이 있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중급 고블린의 저력은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최하급도, 하급도 손쉽게 상대하다보니 중급 고블린도 비슷하게 취급하였다. 그렇지만 드러난 것은 기사들과 비등하게 맞붙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었다.

앞을 막아서 시간을 끌어주는 역할의 병사들은 순식간에 당했고, 고블린들을 마주한 기사들은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난다고 저들이 고블린들에게서 승리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고블린들이 계속 들이닥치고 있자, 칼튼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공격 준비!"

첫 한방을 고블린들에게 날리고,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들에게 칼튼이 소리쳤다. 마법사들은 그에 반응하듯이 재빠르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알수없는 말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지만, 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그것은 한창 기사들과 힘싸움을 하고 있던 고블린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동료인 기사들은 예외였다.

"공격!"

마법사들의 준비가 끝난 듯 보이자, 칼튼은 기사들과 맞붙고 있는 고블린들을 가리켰다.

"ㅡㅡㅡㅡ"

"ㅡㅡㅡㅡ"

"ㅡㅡㅡ"

"ㅡㅡㅡㅡ"

마법사들의 외침과 함께 마법이 발동되었다. 그 직후 고블린들과 힘싸움이 한창이던 기사들이 뒤로 뛰기 시작했다. 여러번 연습해본 듯, 모두가 동시에 뛰어서 단번에 고블린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힘을 맞받아쳐주는 상대가 한순간에 물러나자, 고블린들은 잠시간 휘청거렸다. 금방 다시 자세를 다잡았지만, 그 때는 이미 그들을 향해서 마법이 날아들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들에게 도달 한 것은 화염구였다. 일렬로 늘어선 화염구들이 단번에 그들을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기사들과 고블린들의 사이에 빙벽이 올라섰다. 마찬가지로 여럿이 동시에 시전한 듯, 중간 중간 끊어져 있었지만 기사들이 열기에 의한 피해를 입는 것을 막아주었다.

"캬아아악!"

"끼이이기기긱"

화염구들이 고블린들에게 작렬하면서 일순 크게 불길이 치솟았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그곳을 향해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 합류하면서 본래 한번 크게 터지고 금방 가라앉던 불길에 힘이 더해졌다. 강렬한 기세 그대로를 한동안 유지 한 것이다.

화르륵- 화륵-

불길은 한동안 그 기세를 유지하다가 이내 점차 꺼져갔다. 결국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캐한 연기와 검게 그을린 바닥, 그리고 간간히 탁탁 튀는 소리를 내는 불씨들 뿐이었다.

그에 맞추듯이 불길에 녹아가던 빙벽도 이내 사라졌고, 연기도 점점 바람에 걷혀나갔다.

그 때까지 보이지 않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칼튼과 그의 부대는 한 순간 골치 아픈 적이 될 수 있었던 중급 고블린들을 몰살시켰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매캐한 연기 너머로 실루엣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더욱 확신했다.

그렇게 그들이 승리감에 고양되면서 후발대 고블린들을 대비하던 그 때. 모두 불 타 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블린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파- 팟-

그것은 말 그대로 튀어나왔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기사들이 다시 전진하면서 고블린들을 대비하는 그 순간, 갑작스럽게 땅이 터지듯 튀더니 그곳에서부터 온몸이 그을린 고블린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정면에서 다가올 고블린들을 대비하고 있던 기사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에게 반응 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들이 자신들의 발 밑에서 튀어 나온 것이 더더욱 그들의 몸을 굳도록 만들었다.

"캬아아악!"

뻐걱-!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면서 고블린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적을 향해 휘둘렀다. 이가 나가 있었지만 분명히 강철로 만들어진 도끼였다. 식지 않은 듯 붉게 달아오른 도끼는 순식간에 한 기사의 머리를 박살내었고, 그에 멈추지 않고 또다른 먹잇감을 찾아 휘둘러졌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기사들은 당황하는 바람에, 그대로 당하고 있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태세를 잡았다.

무기를 들어올리고, 고블린들의 맹공을 차근차근 막아간 것이다. 더불어 고블린들도 딱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는지, 무기에 제대로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그것은 한번 한번 그들의 공격을 막아가면 막아갈수록 더욱 확실해져 갔다.

"놈들의 힘이 빠졌다! 침착히 대응해라!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것은 떨어져서 전황을 살피던 칼튼의 눈에도 들어왔다. 간신히 놈들을 없앴다고 안도하고 있던 찰나에, 갑작스럽게 부활하는 모습에 당황했었지만 차분히 상황을 살피던 그의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었다.

사실 고블린들은 마법 공격을 온전히 회피하지 못했다. 위험한 상황이 오면서, 지하에 대기중이던 굴착 고블린들이 도움을 주는데 성공은 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불길에 휘감겨져,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적들을 상대하다보니 그에 대한 티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의 외침은 기사들에게 힘이 되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 그는 다시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전황을 바꿀 방법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이번에야말로 쿠알론을 필두로 하는 고블린의 무리들이 그들에게 접근해 왔다.

특히나, 그들의 선두에는 다름아닌 쿠알론 그 자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들과 고블린들이 뒤엉켜 난전을 벌이는 현장에 도착한 그는, 힘껏 뛰어올랐다. 단숨에 한데 뒤엉킨 난전의 현장을 뛰어넘은 그는 그 뒤편으로 착지했다.

쿠웅

그의 무게감이 실린 소리가 울리고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 인간을 향해서 주먹을 먼저 휘둘렀다. 마침 그가 떨어진 장소는, 마법사들이 한데 뭉쳐있던 곳이었고 그가 휘두른 주먹은 당연히 마법사를 향했다.

뻐억!

그의 주먹은 이전 다른 고블린들이 했던 것과는 달리 단번에 머리를 부수지는 않았다. 그의 주먹에 맞은 이가 단순히 멀리 날아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쿠당탕탕-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아군과 뒤엉킨 적들과, 그들에게 틈바구니로 끼어들려는 또다른 적군을 바라보면서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그들에게, 들어온 방해공작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막 완성되어가던 마법이 흐트러지고, 날려진 이도 그에 맞아 함께 쓰러진 이도 멀쩡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이 쓰러져, 아무런 방해도 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고블린들은 난전의 틈바구니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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