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또 다른 전투
고블린들이 들이닥치자, 건물의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흡!"
가장 앞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창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들던 고블린들에게 공격을 피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푹- 티딩 팅 푸북-
찔러넣은 창은 고블린들의 가죽을 뚫고 그 속을 찔러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부의 고블린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분명히 맨살을 드러낸 가죽을 찔렀음에도 충돌음을 내고 튕겨나갔다.
찔린 고블린들의 반응도 영 시원치가 않았다. 뱃가죽을 관통해서 창촉이 등을 뚫고 튀어나왔음에도 무시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기괴함을 보여주었다.
몇몇 고블린들은 찔리는대로 쓰러졌지만 그것은 극소수였다. 결국 창으로 막아선 전열이 돌파당하자, 이번에는 고블린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후웅-!
한 고블린이 손에 들린 무기를 휘둘렀다.
퍼걱-
재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우둘투둘한 표면에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부실해보이는 무기는 정면에 서 있는 인간의 머리를 후려쳤다.
머리와 부딪히는 순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부실한 외견과는 다르게, 무너져내린것은 인간의 머리였다. 속빈 강정을 내리친것과 같은 허무하게 부서진 머리는 체액을 튀기면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바뀌었다.
이어서 다른 고블린들도 인간들을 향해서 무기를 내리쳤다. 간신히 그들의 무기를 막아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앞서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부서지고, 심장이 꿰뚫리는 자들 또한 속출했다.
반대로 고블린들 또한 온전히 성치는 못했다. 인간 한명이 휘두른 무기는 그들에게 치명상을 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저들도 전력을 다해서 처들어오는 고블린들을 저지하려는 이들. 각오하고 휘두르는 무기는 적어도 생채기는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히면 입힐수록 자잘하지만, 고블린들에게도 피해는 계속해서 누적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을 주민들의 한계였다. 소수나마 고블린들이 피해를 입었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주지 못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대피처는 물론, 건물 안에 있는 인원들 모두가 고블린들에 의해서 참살당하고 말았다.
///
습격은 하나의 마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각 마을들은 스스로를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알지 못했지만, 제라임 성의 영역에 있는 마을들 중 많은 곳이 습격을 받고 있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작심을 한 것인지, 고블린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한 장소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습격 받은 마을의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마을. 이곳에는 고블린들의 출몰을 유력히 보았기에 대기 중이던 인원들이 있었다.
최초 고블린들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것 또한 그들이었다.
뚜두두두두
하릴없이 마을에서 죽치고 앉아 있던 한 마법사는,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알림음에 벌떡 일어났다. 마을과 떨어진 장소에 설치해둔, 알람 마법에 의해서 몬스터의 접근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번 반복해본 듯, 숙달된 움직임으로 마법을 이용해서 주변의 경관을 관찰했다. 이미 사전에 마을에 들어서면서 준비된 정찰용 마법진들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그 사실을 통해 고블린들의 접근을 알아차린 마법사는 품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조그마한 구슬을 하나 꺼내들었다.
퍼석-
구슬은 이내 그의 악력에 의해서 부서졌고, 이후 그는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슬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각자 개인의 일을 보고 있던 기사들과 다른 마법사들도 이상을 알아차렸다. 그가 깨트린 구슬이 일종의 알람 역할을 맡아 준 것이다.
마법사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기사들도, 다른 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일하던 마을 주민들도 그들의 움직임으로 이상을 알아차렸다. 평소대로라면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게으름을 표방하듯이 의자에 걸터 앉아 나태한 모습을 보이던 그들이 분주히 움직이니 못알아차리는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그렇게 주민들은 미리 만들어진 대피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이곳이 다른 마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있는 전력 없는 전력 끌어들여서 전투를 벌이던 다른 마을과 달리, 이곳은 정식 자경대만이 고블린을 잡기 위해서 온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보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를 마쳤을 무렵, 과연 마법은 정확했다. 고블린들이 대기중인 그들의 육안에 보이기 시작 한 것이다.
꿀꺽
아직 어려보이는 한 병사가 마른침을 삼켰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막상 눈 앞에 적이 그리고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게 긴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긴장이 풀리기도 전에, 고블린들이 먼저 마을에 도달했다.
시작의 준비를 마친 마법사들이었다.
"ㅡㅡㅡ"
"ㅡㅡㅡㅡ"
"ㅡㅡㅡ"
"ㅡㅡㅡㅡ"
마법의 효과는 직후 곧바로 나타났다. 맹렬히 마을을 향해서 달려오던 고블린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발목이 잡힌 듯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선두가 넘어지자 그 영향은 바로 뒤에 위치한 후열에까지 미쳤다. 많은 인간들을 막연한 두려움으로, 그리고 맹렬한 공격으로 방심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고블린들이 꼴사나운 모습으로 넘어지고, 짓밟고, 짓밟히는 모습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경대와 기사, 마법사들은 완전히 긴장을 거두지 않았다. 이미 몇번이고 고블린들을 상대한 바가 있는 그들은, 이정도로 저들이 물러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짐작은 들어맞았다. 처음부터 제법 피해를 입었지만, 대부분이 갓 성인이 된 어린 고블린들. 부족을 다스리는 쿠알론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보충 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에 그런 성향은 더욱 드러났다.
하지만, 이 이상 굳이 전력에 손해를 입을 필요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쿠알론이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부하들을 향해서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손짓을 신호로, 다른 고블린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던 중급 고블린들이 움직였다.
중급 고블린은 현재 쿠알론의 부족에서 가장 큰 전력이 되는 이들이고, 주력인 이들이다. 그들보다 두단계는 높은 그와 그의 형제 둘이 있었지만, 상급이 부족한 그들에게 가장 큰 전력이다.
앞으로 나선 고블린들은 지금까지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상대하던 이들과는 달랐다. 정확히는 상대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들이 상대했던 무리에 꼭 하나씩 끼어있었지만, 대부분이 뒤도 안돌아보고 도주했기 때문에 지닌 힘에 비해서 수월하게 잡아내거나,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달리기 시작한 고블린들은 순식간에 마을의 입구에 도달했다. 그들의 접근을 보아서 이미 알고 대비중이던 인간의 병력들이었지만, 대비한것 치고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끅, 끄윽!"
억눌린 신음성을 내뱉으면서 버티는 그들이었지만, 대부분이 주민들로 이루어진 자경대원인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거지로 버텨내면서 어떻게든 버티는데는 성공했다.
한번의 충돌로 단번에 밀어내지 못하자, 고블린들은 한차례 잠시 물러나고는 다시 들이닥쳤다.
콰앙-
한번만에 태세가 어그러졌던 그들이, 두번째 충돌을 버틸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밀리는 수준이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어그러진 진영에 강력한 충격이 전달되자, 단번에 뒤로 날려지는 병력이 다수였다.
벽에 부딪히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순간 이미 절명한 이들도 있는 인간들 입장에서는 큰 피해였다.
하지만 그것도 고블린들에게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만만한 적들이 아닌, 그들의 뒤를 지키고 있던 이들에게 신경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된 첫 격돌은, 기사들과 고블린들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