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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37화 (237/374)

237화

또 다른 전투

독지를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망연자실해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저 독지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그나마 일말의 희망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은 분명히 그들이 지나온 적이 있는 길이었다.

그것은 여기저기 널려있는 목판의 잔해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목판이었다. 분명히 독지의 위로 다리처럼 놓았던 목판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 앞에 있는 것은 훤히 그 속을 보이는 독지와, 그 주변으로 흩어져있는 목판 뿐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뿌드득

성주는 눈 앞의 광경에 절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이런 일도 생각 못한 참모들을 향해서 울분을 토해냈다.

"처음부터 여기는 고블린 놈들의 홈그라운드니 그 정도 생각은 먼저 했어야하는게 아니냐!!"

그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서 앞서 있던 참모들 중 한명은 그의 외침에 억울했다. 애초에 그와 그의 동료들도 사전에 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릴거라는 이야기는 이미 했었으며, 고블린들이 제법 오랜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을 때 부터 그에게 경고를 끊이지 않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퇴를 권하기도 했었지만, 그때도 반대부터 하고 보았던 성주였기에 그들로서는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것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따돌렸다 생각했던 고블린들이 어느새 그들을 향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미 한번 병사들에게 위압감을 주었기 때문인가, 고블린들은 이전과는 달리 조용히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간신히 패닉에서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길을 놓을것을 지시하던 병사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었다.

서걱- 푸확!

후방에서 조심스레 경계하던 병사들은 소리도 모습도 없이 나타난 고블린들에 의해서 목이 달아났다. 은밀히 다가온 고블린들은 경계를 서던 병사들의 목을 날릴 때까지 그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목이 달아나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눈에 확 띄는 일이 있고서야 접근을 눈치챈 것이다.

"적!"

"고블린 놈들이 다시 나타났다!"

정확히 고블린들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나타날만한 적이 그들말고는 없으니 병사들로서는 당연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올바른 추측이기도 했다.

후방에 위치했던 병사들의 외침에, 작업을 준비하던 병사들도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놓고는 무기를 빼들었다.

병사들 중 후방에 위치한 이들은 비교적 경험이 적은 이들이었다. 본래라면 경험 많은 병사들이 선두에서 리드하면서 병사들의 경험을 쌓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고블린들이 들이친 장소는 하필이면 그 후방이었다.

후방에 있던 병사들 중 하나는 감작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바로 조금 전까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의 목이 날아갔다. 당연히 그도 겁을 먹고 긴장을했다. 그런 상황에서 눈 앞에 무언가가 일렁인다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당연했다.

퍼억-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의 눈이 좋았던 건지, 그가 검을 휘두른 자리에서 한 고블린이 나타났다. 그것도 병사가 휘두른 검에 피해를 입은 듯 한 모습이었다.

"기잇"

병사가 내리친 검이 어깨에 맞은 듯 부근의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의 고블린. 그리고 그의 모습이 드러나자 주변을 경계중이던 병사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적이 그 뿐이니 모두가 그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병사들의 실수가 되었다.

푸슛-

"..."

"꺼걱-!"

주의가 한순간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에게 쏠린 그 순간, 또 다른 고블린들이 병사들의 뒤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한순간에 병사들의 목에 비수를 찔럿고, 단 한순간만에 다수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본래라면 이런 단순한 수에 걸리는 일은 드물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적을 경계하면서, 그의 동료는 없는지 절로 경계하는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지금 상대한 병사들이 경험이 일천한 이들이기 때문인지, 실수가 생겨났고 고블린들은 그 틈을 찔러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더 이용해먹기는 어려워졌다.

어느새 떨어진 거리에 있던 병사들이 다가온 것이다. 신병의 비율이 높았던 병사들 사이사이로 베테랑 병사들이 끼어들었다. 이들 대부분이 전쟁에 몬스터 토벌 등등 다양한 전투를 경험한 이들인 만큼, 뭐가 더 중요한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블린들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더 이상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 둘 병사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병사들은 더욱 긴장했다. 나타난 고블린들이 숫적으로도 병사들에 그리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병사들은 각오를 다졌다. 그들의 뒤에는 독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으며, 앞에서는 고블린들이 부대를 이뤄 병사들을 적대하고 있었다. 특히나 고블린들에 비해서 전력적으로 딱히 우위를 잡은것도 아닌 만큼, 살아 남기가 힘들다는 것을 이해 한 것이다.

그러니 병사들은 살아남기를 각오하는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고블린들을 잡고 죽겠다는 다짐을 가진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이 그러했다. 이대로 죽음만 기다리기에는 억울하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두 세력은 서로를 향해서 마주 달려들기 시작했다.

///

세 고블린, 쿠알론과 트레이 그리고 드란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드란이 올리는 보고를 듣기 위한 자리였다.

"우리 영역으로 침입해 들어온, 인간 병력들은 모두 전멸했습니다"

단 한마디로 그는 더 이상 걱정은 필요 없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의견에 다른 둘도 그다지 이견은 없는듯 보였다.

그들로서는 이미 끝난 일 보다는 앞으로 벌어질 일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곧바로 시작되었다.

"이번에 처들어왔던 놈들에게서 뭐라도 캐낸 정보는 없나?"

쿠알론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드란에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 드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가지 정보를 이야기해주었다.

이번에 처들어온 이들이 한 성의 가용 가능한 병력 대부분이 처들어온 것이라든가, 그들을 이끌던 이가 다름아닌 하나의 영역과 성을 다스리는 성주였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호오- 그러면 지금 놈이 다스리던 영역은 전력의 공백이 크다는 이야기로군?"

그것은 그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희생이 끊이지 않았던 만큼 적이 만만해졌다는 것 만큼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듯이 드란은 그곳을 공격하려면 여전히 주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반 병사들은 분명히 대부분 끌고온것이 맞는 듯 보입니다만, 고급 병종으로 가서는 이야기가 바뀝니다. 우리를 얕봐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 걵지 성주라는 놈이 정말로 병사들과 소수의 기사 그리고 소수의 참모만을 데리고 온겁니다"

"그 말은?"

"놈의 영역에 병사들은 줄어들었지만, 고급 전력들. 기사나, 마법사들은 여전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으음..."

그의 이야기에 쿠알론은 잠시 고민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저들이 기사, 마법사라고 부르는 이들이 좀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도 뒷받침 해주는 일반 병사들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맨몸으로 드러난 그들을 상대하는 것 쯤은 손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방침을 바꾸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만큼 부족의 성장에 좋은 거름이 되어 줄 기회가 드물다는게 그의 선택을 굳혀주었다.

"기왕 손쉬운 먹잇감이 생겼는데, 그대로 놓아주기에는 아깝잖아"

씨익 웃은 그는 결심을 굳히고, 동시에 고블린들도 침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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