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또 다른 전투
고블린들의 출몰은 무작위로 나타났지만, 그들이 물러나는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음을 그들에 대해 조사하던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위장용으로 지어진 마을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이 끝난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미 앞서 발견한 곳에서 고블린들이 사라졌음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저곳은 그저 몇 안되는 수만을 줄일 수 있을 뿐 그 외의 가치는 없었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지하에서 머문다는 소식은 그들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고블린들의 전력을 조금 깎아먹을 뿐이라는 평가에서, 저들의 본거지로 통하는 통로가 되어 줄 것이라는 평가로 바뀐 것이다.
고블린들의 본거지를 찾으려다, 오히려 큰 피해만 입었던 이들이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 흩어져있는 고블린들의 마을을 공격했다.
대부분이 상주하는 인원들만 있었던 마을은 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처들어온 병사들에 의해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본거지로 이어지는 통로는 없는가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나 잘 숨겨져 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패배를 직감해서 최대한 숨기거나 미리 무너트렸기 때문인지 목표를 찾는것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두개 마을에서 통로를 찾았지만, 이미 고블린들에 의해서 무너져내린 뒤였다. 아마 병사들이 공격해 오는 모습에 무너트린 것으로 보였다.
최초 고블린들에게 당했던, 제라임 성의 성주도 소식을 듣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미 다른 마을들에서는 단서가 끊어졌지만, 단 하나 아직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장소가 있었다.
과거 그가 직접 토벌하려 했던 고블린들의 마을로, 당시에는 이미 놈들이 피신한 뒤였기 때문에 그저 마을을 불태우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성주는 그곳의 조사를 명령했었고, 그에 대해서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고블린들의 본거지로 통하는 통로를 찾았다는 보고에, 그는 기뻐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놈들이 통하는 통로마다 하나같이 무너트려 버리는데. 이번엔 그런 일이 없었나?"
그의 질문에 기사는 들어온 보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무너진 통로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가 폭삭 주저앉은 상태라 조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에 찾은 통로도 무너지면서 드러난 것을 찾았다고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좀 수상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음..."
확실히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성주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쨌든 골치 아팠던 고블린들을 토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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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서 성주는 군대를 이끌고 목표한 지점에 도착했다. 고블린들을 토벌할 기회가 생기고, 그는 그가 동원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준비했다. 그의 성과 주변 마을의 치안을 지킬 몇몇 병사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은 것이다.
"이런 기회를 굳이 나눠줄 필요는 없지"
그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고블린들에게 피해를 입고 있는 다른 성주들, 그리고 고블린 하면 눈 뒤집고 달려드는 한 가문까지 지원을 청한다면 얼마든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자신에게 피해를 준 고블린들에 대한 울분도 섞여 있었지만, 외부에 알려서 지원을 얻는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곤란한점이 몇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토벌과 동시에 그 사실이 외부로 곧바로 퍼져나간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주변 고블린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성주들에게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갈 것임이 틀림없다.
그건 그에게 곤란한 일이었다. 아직 그와 바스티온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기면서 일시적인 휴전일 뿐, 토벌이 완료된다면 다시 적대적 관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적이 태세를 갖추는 것 보다는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는 틈이 있는게 그에게는 더 좋았다.
두번째로는 그의 편판과 연관되어 있다. 고블린들이 현재 큰 골칫덩이면서, 우환 덩어리지만 그것은 직접 겪은 그들의 이야기이다. 고블린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가장 약한 몬스터들 중 하나였다. 특히나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성장하기도 보통 어려운게 아니라는 점이 그들에게 그런 인식을 더욱 심어주었다.
그를 비롯한 고블린들에게 공격받은 성주들은 현재 일말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고작 고블린들 따위에게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 전투는 그런 불명예를 씻어내고자 하는 의도도 함께였다.
통로가 있던 마을은, 들은대로 지하로 꺼지듯이 들어가면서 폭삭 주저 앉아 있었다. 병사들의 보고로는 이렇게까지 한 일은 없다고 하니, 아마 그 후 고블린들에 의해서 이렇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통로는 마을의 중심부에 있었다.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곳은 마치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음산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그곳에 있었다.
"꿀꺽"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침 삼키는 소리가 병사들의 사이로 퍼져나갔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 통로의 입구에 긴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들어가야 하는 통로를 보면서 성주는 표정을 굳혔다. 통로가 마치 누군가가 찾길 바라는 듯이, 이렇다 할 가림막도 없이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잇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를 잠깐 막아주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결심을 한 그는 직접 선두로 통로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로 병사들이 하나 둘 그를 따라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을 나아가는 성주와 그의 병사들은 긴장을 멈추지 못했다. 이제 적들의 본거지로 향하는 곳에 들어왔으니,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목의 폭은 그리 넓지 못했다. 기껏해야 세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것 같은 정도의 폭이었다.
통로의 안으로 들어오자, 성주를 지나쳐서 가장 앞서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고블린들이 함정을 잘 쓴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고용한 이들이었다.
가장 앞에서 함정을 찾기 위해서 나선 그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그들이 나서는 일은 없었다.
길은 그저 쭉 뻗어 있었으며, 아무런 함정도 없이 계속 평온하게 나아갔다.
가장 앞서나가던 이들은 계속 할 일이 없이 걷기만 하자 뻘줌했지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나는 항상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슥-
그렇게 어느새 처음 진입했을 때 팽팽하게 당겨졌던 긴장의끈이 슬금슬금 느슨해지면서 방심하기도 시작했을 무렵. 앞장서던 이들이 손을 들어서 행군을 멈추게 했다.
"무슨일이지?"
조심스레 낮은 목소리로 성주는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물음에 앞서가던 이들, 함정 전문가라고 해도 좋은 도적들이 낮게 읊조리듯이 그에게 말했다.
"함정인것 같습니다. 그것도 독을 이용한 것 같은게, 콧속으로 약한 독기가 들어오는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다른 함정은 없는건가?"
"아직은 독기가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조금씩 조심스럽게 접근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성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먼저 확인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뒤에서 날랜 병사들 몇을 불러 앞을 슬쩍 정찰하고 오도록 시키고는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먼저 앞으로 나섰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성주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앞은 통로 전체가 독지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앞으로 나가길 멈추는게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