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또 다른 전투
지하부족의 위쪽, 높지는 않지만 충분히 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 이곳에서는 정찰병으로 보이는 이들이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있었다.
"찌익?!"
비명을 지르면서 랫맨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랫맨의 앞에서 한 병사가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었다.
"젠장, 대체 어디있는거야?"
"이쪽이 확실한거 맞아?"
한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가 맞받아쳤다. 그리고 그들의 투덜거림에, 이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들은 이야기는 여기에, 고블린 놈들의 본거지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 뿐이다. 그게 확실한 것인지, 아니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는 이야기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저 내려온 명령대로 이곳을 이잡듯이 뒤지는것 뿐이다"
그는 딱딱하게 말하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뭐, 지금까지 이렇게 찾아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게 정말 있는지는 나도 의심스럽다만"
벅벅
"대충 따르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귀찮다는 듯이 그는 다른 병사들에게 이야기했고, 병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그의 이야기를 따랐다.
"하필 산이라니, 이 놈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귀찮은 장소에 숨어드는 거야?"
여전히 투덜거림은 끊이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따지고 들려는 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비롯한 여럿의 병사들이 온 산을 뒤졌지만 나오는 것은 없었다. 간혹 과거 있었던 듯한 흔적은 보였지만, 이곳에서 멀어진지 오래되었는지 흔적들도 하나같이 오래된것들 뿐이었다.
"이런걸 보면 분명히 여기서 지내긴 했었던 것 같은데..."
병사들을 다독이던, 십인장의 위치에 있는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허름한 주머니를 주워들었다.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완전히 삭아버린 그것은 보고로 들은 고블린들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과 같은 모양이었다.
"일단 여기 놈들이 있었다는 증거품이니까 챙겨두고..."
주섬주섬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 안에 대충 쑤셔넣듯이 낡고 허름해진 주머니를 집어 넣었다. 다시 일어나서 탐색을 이어가려던 그 때. 그의 눈에 유난히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언뜻 보기에도 별다른 특징이 없는 그저 땅바닥 뿐인 장소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벅 저벅
슬금 슬금 다가간 그는, 어째서 이 한 지점만이 그의 눈에 띄었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여기만... 색이 다르잖아?"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마른 흙이 윗부분을 덮고 있었다. 특히나 그가 서 있는 지점은 햇빛이 어느정도 들어오는 곳인 만큼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바라본 곳은 젖은 흙이 위로 드러나 있었다.
"누가 땅을 뒤집었나?"
병사들이 중간중간 소변이나 대변으로 옆길로 빠지기도 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그것을 부정했다.
"아냐, 누가 이런곳에서 일을 보겠어. 차라리 수풀이 널려있는 곳에서 보는게 낫지"
햇빛이 들어올 정도로 살짝 휑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던 만큼, 그가 생각하기에 이곳에서 볼일을 볼 녀석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건 뭐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는 이내 그것을 건드려 보았다.
퍽- 퍽-
다행히 함정이 있는 지점은 아니었는지, 주변에서 주워온 굵은 나뭇가지로 강하게 내리쳐봤지만 별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과 무언가 다른 행동을 취하자 이상하게 여긴 병사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십인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의 직속 부하인, 젊은 병사가 그에게 물었다.
잠시 뚫어져라 유난히 진한 색의 흙으로 덮여있는 장소를 보던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병사에게 말했다.
"음... 자네도 저기가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가?"
"네?"
마찬가지로 젖은 지점을 바라본 병사도 이상함을 느꼈지만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에이, 땅이 조금 색이 다른게 누가 발장난이라도 쳤나 보죠"
"한번 여기를 파보자고"
괜히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에 병사는 대충 넘기려고 했지만, 그의 눈 앞에 있는 십인장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단 함정은 없는 것 같으니까. 어쩌면 여기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지않나?"
씨익 웃음짓는 그를 향해서 한숨을 내쉰 병사는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필요한 삽을 가지러 떠나있다가 동료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가 저렇게 나온 이상 번복은 커녕, 혼자서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오자, 십인장은 그들과 함께 그 지점을 파기 시작했다.
푹- 푹-
삽의 날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집어넣고는 밖으로 빼내면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흙을 퍼날랐다.
푹- 푹- 푸스슥
힘껏 땅을 파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이곳이 이상함을 알 수 있었다. 파내려가던 어느 순간, 흙을 파고든 삽이 허공을 찌르는 느낌을 받았고, 곧 그곳을 중심으로 흙이 무너져내려갔다.
쿠르릉- 쿠르릉-
그리고 그에 연쇄되듯이, 주변의 흙들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행동이 하나의 트리거가 된 듯, 병사들이 파던 땅을 중심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으... 으아아악!"
"뭣, 뭐뭐뭐야?!"
"우, 우와앗, 으힉!"
무너져 내리면서 흔들리는 땅. 그 위에 자리잡고 있던 병사들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라는 듯이 우르릉 땅이 울리더니 폭삭 내려앉았다.
쿠구구구구구구우우우-
그렇게 산의 전체적인 높이가 낮아질정도로 큰 소란이 있었고, 병사들을 보내놓고 기다리던 지휘관들도 그 변화를 알아차리고는 우왕좌왕하다가 간신히 대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지고, 구출대가 산속에 있는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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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회의를 이어가던 삼형제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큰 충격에 안색을 굳혔다. 이미 과거 약한 지진으로 한차례 무너진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지하 부족 전체를 다시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무너질 걱정은 없지만, 그들이 안색을 굳힌것은 다른 이유였다.
"...전혀 짐작하지 못한건 아닌가 보군"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쿠알론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듯 드란은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이지만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닙니다. 이건, 제가 혹시나 싶어서 만들어둔 함정입니다. 수색하던 인간들 중에 의심이 많은자가 섞여있었나 보군요"
"함정?"
"예, 건들지만 않으면 별 이상은 없지만... 깊이 파내려간다면 그곳을 중심으로 지반이 무너져내리도록 조작해놓았었죠"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드란이 말하자, 다른 둘은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그럼 이게"
황당해하면서 쿠알론이 묻자, 드란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허..."
허탈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그를 향해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땅을 파내려갔다는 이야기는..."
"그저 제가 만든 함정을 의심했을 뿐일수도 있고, 아니면 수상한 지점을 중심으로 땅을 파본것 뿐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드란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런 일이 생겼으니... 녀석들의 움직임은 둘 중 하나 일 겁니다. 산의 지하를 파보던가, 아니면 아예 이곳에서 철수를 하던가"
드란은 첨언을 하듯이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뭐, 제 생각에는 후자가 유력하지만요"
그러는 그의 눈에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