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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30화 (230/374)

230화

수성

성벽 앞의 병사들을 쓸어버린 고블린들은 곧 그들을 향해 새롭게 공격해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을 맞이해야 했다. 방금 전의 어쩐지 초췌해 보이던 병사들과 달리 이들은 기세등등하게 고블린들을 향해서 달려들었고, 고블린들도 고역에 대항해 곧바로 반격했다.

챙- 챙-

날카로운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전장의 곳곳을 울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살을 파고들고 짓이기는 소리, 그리고 소소한 절삭음만이 들리던 전장에 생겨난 새로운 변화였다.

루프스와 프리트 그리고 파인피는 성벽의 꼭대기에서 가만히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를 주시했다.

"순조롭군"

루프스는 계속되는 전투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성문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고블린들의 우세가 보이고 있었다.

성벽에서의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도전하듯, 계속해서 올라가고 올라가던 인원들이 어느새 옆으로 빠지자, 더 이상 밧줄을 당기면서 올라서는 이들은 드물어졌다. 성벽에 몰려있던 병력들 중 한창 올라가던 이들과 몇몇 뒤를 받쳐주는 병력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성문쪽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가, 성벽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곧 끝날듯이 보였다. 대부분의 갈퀴와 밧줄이 제거되었고, 소수 남아있는 것들도 이제 곧 모두 제거될 것이다. 게다가 더 이상 그들이 소지한 도구도 없는지, 추가되는 일도 없었다.

그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에서 벌어지던 전투가 끝이났다. 결국 성벽의 위까지 올라오는 이 없이 밧줄의 위에서 그 많은 이들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전투가 끝났을 무렵. 또 하나의 전투는 한창 격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한 인간이 고블린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한손에 꼭 들어맞는 그 검은 한순간에 상대 고블린을 절명시키겠다는 듯이 그 목을 향해서 뻗어나갔다.

고블린은 그 공격을 비껴내려는 듯이, 검이 지나갈 경로에 자신의 검을 두었다. 하지만 원래부터인지, 아니면 그가 검으로 막으려하자 순간적으로 길을 바꾼것인지 병사가 휘두른 검이 어느 순간 흐릿해지더니 목이 아닌 가슴을 찔러가고 있었다.

"킷?!"

막고 곧바로 발로 차서 밀어 넘어트리려던 고블린은, 생각대로 되지 않자 차려던 발에 힘을 주어 뒤로 뛰었다.

쉬익-

그의 가슴을 찔러들어오던 검은 멈춰섰고, 다시 한번 고블린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한발 뒤로 물러나면서 역시 저 병사가 그대로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던 고블린은, 그의 생각대로 되자 반격에 나섰다.

자신을 향해 뛰어들어오는 병사를 향해서 그는 들고 있던 검을 연달아 내리쳤다.

후웅- 부웅- 후웅-

검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적 병사를 향해서 휘둘러졌다. 달려들어서 고블린을 공격하려던 병사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멈칫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고블린은 다시 한번 그를 향해서 검을 내질렀다.

본래라면 미묘하게 닿기 힘들 정도의 거리였지만, 한순간의 가속으로 병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컥!"

병사는 그대로 절명했고, 그와 같은 광경이 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먼 장소에서 상황을 살피던 루프스는 그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일부 오히려 병사에게 당하고 목숨을 잃는 고블린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수와 다수가 전투를 벌이다 보니, 혼잡한 전장에서 일대일의 상황은 물론 다수 대 일, 일 대 다수, 다수 대 다수로 벌어지는 상황이 흔했다.

요새에 머물던 고블린들의 숫자는 일만 이었다. 계속해서 군락지 안쪽의 부족과 오고가다보니 요새에 머무는 숫자는 매번 달랐지만, 평균적으로 일만에 달했고 이번에도 그러했다.

루프스는 이번에 성문 밖으로 보낸 것은 대부분이 하급과 중급의 고블린들 그리고 소수의 상급 고블린들에게 지휘를 맞겼다. 한동안 지켜본 인간 병사들의 수준에 맞춰서 내보낸 병력들이었다.

적당한 수준의 군대는 그에게 하나의 먹잇감으로 보였다. 만일 저들이 세세하게 작전을 짜고 귀찮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저돌적인 어찌보면 멍청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군대는 그에게 특히나 그렇게 보였다.

저들을 이용한다면 고블린들이 더 성장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짐작은 그대로 드러맞는듯 싶었다.

"생각보다는 수준이 낮군. 아니 우리를 얕봐서 저렇게 보낸건가?"

적들의 태도도, 그리고 개개인의 힘도 고블린들에게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지금이야 전투가 이어지다 보니, 점점 그 기세가 날카롭게 다듬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루프스가 처음 저들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전투가 아닌 놀러온듯한 웃음기에 태평함까지 깃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들의 능력도 기껏해야 최하급 고블린들보다 조금 더 우위에, 하급 고블린보다 못하는 정도가 평균이었다. 간혹 중급, 상급은 물론이고 루프스의 자식들과도 비슷한 수준의 적들도 다수 있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무의미한 정도였다.

그나마 선두의 전열에 포함되어 있다가 어느새 후방으로 빠져나간 저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최상급에 달해 보이기는 했다. 다만 그 기세만 그럴 뿐, 그의 행동도, 태도도 모두 그의 기준에서는 미달인 존재였다.

"정말, 미성숙한 자로군"

"무엇이 말씀입니까?"

"저들의 지휘관 말이다. 걸음걸이는 엉성하고, 부하들을 다루는 모습도 감정에 내맡기면서, 절대 선두로 나가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우습게 느껴지는군"

루프스는 냉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과연 그의 이야기대로 적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는 딱히 숨어드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서 사기를 진작시키려는게 아닌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듯 보였다. 특히나 그의 주변을 빽빽히 매우고 있는 호위 병력이 그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듯 보였다.

"흐음"

프리트는 슬쩍 한곳에 겁먹은 소동물 마냥 뭉쳐있는 병사들과 지휘관을 보고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처음에만 해도 뭔가 있는 녀석인가 싶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내내 저런 태도라니..."

병력들을 지휘하는 것도 한곳으로 계속 뭉치도록 만드니, 그들을 상대하는 루프스와 프리트도 딱히 생각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의 장단에 맞춰주기만 해도 되었다.

"아군을 맹신하는 건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자만심인지"

한심한 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내보이면서 루프스는 코웃음을 쳤다. 저런 허접한 녀석에게 자신의 부하들이 질리가 없다는 일종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루프스의 부하, 고블린들은 어느새 성문 앞에서 벌어진 전투의 끝을 보고 있었다. 서서 적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있는 대다수의 고블린들과, 그와 반대로 어느새 고블린들과 그 수가 비슷해진 병사들은 고블린들에게서 후퇴하고 있었다.

바닥에 듬성듬성 고블린들의 시체도 보였지만, 압도적일 정도의 전과였다. 3,000과 5,000의 부딪힘임에도 3,000의 승리였던 것이다.

고블린들은 후퇴하는 인간들을 딱히 쫓지 않았으며, 그 틈을 타 인간 병사들은 다시 재정비를 가지고 뒤로 빠져나갔다. 아니 그렇게 보였었다.

"ㅡㅡㅡ"

"ㅡㅡㅡㅡ"

"ㅡㅡㅡㅡㅡ"

"ㅡㅡㅡㅡ"

어느새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마력을 회복한 마법사들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후퇴하는 병사들의 틈바구니로 파고든 마법사들은 승리에 취한 듯 그들에게 관심을 끊은 고블린들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곧 그들이 외운 주문은 각각의 형체를 이루면서, 혹시나 숨이 붙은 이들이 없나 그 목을 찔러 확인사살을 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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