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수성
요새 앞에 도착한 무르디안과 병사들은 곧바로 요새의 성벽을 오르기를 시도했다. 뒤쪽에서 대기하던 공병들이 앞으로 나섰다.
팡- 팡- 팡-
끝에 갈퀴가 달린 둥그런 물체는 갈퀴와 함께 밧줄로 보이는 물체를 함께 사출했다. 연달아서 발사된 그것은 순간 터져나가는 듯한 파공음을 내면서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덜그럭- 카가각
성벽 위에 걸쳐진 갈퀴는 덜그럭 거리며 움직이다가 이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성벽을 긁으면서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렇게 성벽에 오를 준비가 끝나자 성벽에서부터 병사들을 향해서 쏘아지던 화살의 세례도 곧 끝을 보였다.
"녀석들의 화살이 떨어졌다! 이 틈에 놈들을 향해서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야 한다!"
막 성벽을 오르기 시작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무르디안은 독려했다. 적들이 일시적이라도 공격을 멈춘 틈에 조금이라도 적들과의 거리를 좁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독려를 받고 병사들은 성벽을 올라가기 위해서 팔과 다리에 더욱 힘을 실었다.
그 사이, 성벽 뿐만이 아닌 성문도 함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화살 세례 속에서도 어떻게든 사수한 충차는 여기저기 화살이 박혀 있었지만 그 기능은 멀쩡했다. 성문 앞에 도달한 충차는 그 몸에 매달고 있는 거대한 나무 말뚝으로 성문을 향해 공격했고, 단 한번의 공격으로 얼기설기 엮인듯 허름해 보이는 성문은 요동을 쳤다.
그렇게 인간들이 성벽을 향해서 공격을 펼치자 고블린들도 새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공격했다.
쐐액-!
첫번째 공격을 성공시키고 다시 이격째를 준비하던 충차를 향해서 길죽한 형상의 무언가가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면서 날아갔다.
콰앙!
몸체 대부분이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결 부위와 같은 중요한 부분에는 강철로 덧대어져 있는 모습의 충차와, 그와 비교하면 마치 이쑤시개와 같은 얇디 얇은 창의 충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순간 헛것이라도 본건가 싶었던 병사들은 곧, 몸체의 일부분을 무너트린 충차를 보면서 현실을 직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공격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박혀든 곳에서부터 넘실거리는 붉은 불꽃과 매캐한 내를 풍기면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는 더더욱 경각심이 들게 만들었다.
"불! 불이다! 불을 꺼야한다!"
불꽃을 확인한 한 지휘관이 다급히 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듯이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웠고, 곧 물로 이루어진 구체들이 순식간에 충차를 향해 날아들었다.
촤아악 촤아악
무너진 곳을 중심으로 물은 퍼부어졌고, 불은 더욱 매케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사그라들었고, 그제서야 병사들은 충차를 향해 날아온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창?"
쐐액-!
방금전과 똑같은 소리가 공격을 받아 주저앉은 충차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마치 한쪽으로 기울은 충차의 균형을 맞춰주려는 듯 이번에는 반대쭉을 향한 공격이었다.
콰앙!
그리고 다시 펼쳐지는 방금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 이미 한번 겪은 일이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역시 빠르게 움직인 지휘관과 마법사들에 의해서 충차가 완전히 불타버리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벌어진 두번의 타격이 맛보기라는 듯이, 연달아서 창이 쏘아졌다.
그때까지 창이 날아오는 일순간만 피했을 뿐, 불이 붙어도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던 병사들은 뒤로 물러날수 밖에 없었다. 곧 연달아서 날아오는 창으로 보이는 물체는 하나도 빗나가는 일 없이 충차를 향해 내리 꽂혔다. 하나씩 하나씩 해체를 당하듯 파괴당한 충차는 결국 거대한 말뚝만을 남기고는 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그렇게 성문의 병사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을 무렵, 성벽을 기어올라가던 병사들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서걱
"으아아악!"
"어...? 어...! 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단단히 고정된 갈퀴는 벗겨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고블린들은 아예 갈퀴와 연결되어있는 밧줄을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칼날에 의해서 잘려나간 밧줄. 당연히 잘려진 밧줄은 바닥을 향해서 떨어졌고, 그것은 거기에 매달려있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갈퀴에 달려있는 밧줄들도 끊어질것을 염려했는지 갈퀴와 가까운 부분은 얇은 철과 같은 물질로 덧칠되어 있어 끊어내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하나의 밧줄을 끊어내는데도 시간이 잡아먹혔고, 그 잠깐의 틈은 병사들을 성벽을 향해 가까워지게 만들어 주었다.
후두두두두둑
그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성벽에서부터 돌을 떨구기 시작했다. 거의 일자에 가깝게 올라오던 병사들에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퍽- 퍼벅- 퍼퍼퍽
"끅?! 끅, 겍, 끆...?!"
성벽 위를 주시하면서 팔과 다리에 힘을 주던 한 병사는 갑자기 얼굴 위로 덮쳐오는 돌의 무더기에 깜짝 놀랐다. 후두두 떨어지는 돌더미가 곧 그의 얼굴을 덮쳤고, 안면에 몰려오는 통증에 순간적으로 손아귀의 힘이 빠져버렸다.
퍼걱
아귀힘이 빠진 그는 자연스럽게 밧줄에서 떨어져나갔다. 그의 뒤를 쫓던 이에게는 다행히도, 밧줄에서 떨어지면서 붕 떳기 때문인지 뒤따라 올라오는 이들의 후방을 스치면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그에게서는 위험한 소리가 났고, 결국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와 같은 광경은 이곳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성벽을 기어올라가는 이들은 그들의 생명줄과 같은 밧줄이 끊어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얼굴에 돌무더기를 한아름 안고는 다시 맨바닥에 그 몸을 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떻게해서든 성벽에 올라서는 이가 있기 마련, 피해에 피해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한 인물이 성벽 위로 올라서는데 성공했다.
"오...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성벽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던 광경을 그 두 눈에 담게 되었다.
"어... 어?"
성벽의 위. 이곳에는 충분히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의 눈에 언듯 들어온 이들만 해도 족히 수백은 될법한 수였다.
하지만 그는 이 숫자에 큰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을 향해 마주 달려오는 고블린을 상대해야만 했다.
카강-
그 고블린은 그가 알고 있는 정보에 비해서 그 덩치가 더 컸다.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기본적인 고블린들의 대한 정보였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했을 때,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이 외형적 모습으로 위압감을 품기를 바란다는걸 생각해보면, 한단계 이상 진화한것이 분명한 고블린이었다.
기본적으로 하급의 직업은 지니고 있어야만 병사가 될 수 있고, 그에 해당하는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의 뒷편에서는 연이어서 동료들이 성벽의 위로 올라서고 있었지만,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고블린들에게 대항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 앞의 존재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급 이상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몬스터를 상대 할 때, 하급의 직업을 가진 이라면 적어도 서넛은 힘을 합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동료들이 더 합류해야 한다. 하지만 이쪽이 다수라면 저쪽도 다수니 대응하기 어려운것이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올라오는 족족 그의 동료들에게도 또 다른 고블린들이 달라 붙었다. 어떻게 일순간 떼어놓는게 가능은 했지만, 바로바로 다시 달라붙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버거움을 느낀 그는 일단 뒤로 물러서고는 주변을 빠르게 한차례 훑었다. 아니, 훑으려고 했다. 단 하나의 지점이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사로잡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