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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20화 (220/374)

220화

침공

성벽과 성문 바로 앞에서 벌어졌던 전투가 끝나고,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이 더 이상 싸우는 일은 없었다. 마을에 머물던 이들은 대다수가 항복했으며, 숨었다가 습격하거나 항복한척 하다가 기습하는 이들은 그 자리에서 고블린들의 손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그 밖에도 뭉쳐서 고블린들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도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 할 뿐이었다.

만일 이 자리에 제대로된 마법사가 열명정도만 되었어도 이렇게 일방적인 상황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방패병 고블린들이 사용하던 방패들은 하나같이 특제라고 할 정도로 견고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다. 일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만큼 불이 붙는다면 타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그 열기 때문에 절로 방패를 놓을테니 그것이 또 고블린들에게는 피해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에는 이렇다 할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마법사'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있으나,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법사의 직업은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하급까지의 직업들은 얻는것이 매우 쉽다. 검을 몇번 휘두르면 '검을 든 자' 라는 직업을 얻게되고, 여기서 수련만 꾸준히 이어가도 검사의 하급 직업을 얻는것이 가능 할 정도다.

마법사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 경우는 더욱 쉽다고 볼 수 있다. 마법과 관련된 책을 한권 읽으면 '마법을 안 자' 라는 직업을 얻을 수 있으며, 여기서 한번이라도 마법을 겪는다면 '마법사'의 직업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다른곳에 있다. 직업을 가지면 관련된 기술을 얻을 수 있다. 무기 관련의 직업을 얻은 이라면, 속도 보정이나 명중률 보정이 들어가는 경우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직업들이 거의 공통된 사항이다.

마법사의 경우도 체내의 마나의 흐름을 인식하고 어느정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단순히 마나를 뭉칠 뿐인,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못하는 '마나볼' 같은 밑바닥의 마법도 직업으로는 얻을 수 없다. 모두가 스스로 배워서 대기중, 그리고 체내의 마나를 조종해야만 마법을 사용한다고 볼 수 있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과거 군락지에서 벌어진 난동으로 본래 요새에 주둔하던 이들은 대부분이 그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으로 이곳을 떠나갔다. 그 이후에도 어찌어찌 보충하기는 했으나, 최근 군락지를 경계하는 틈 사이에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있던 것이다.

마법사들이 이런 장소로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마법 실험에 사용 할 수 있는 희생양을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갓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이들이고, 오랜 시간 배워온 베테랑이고는 아무 상관 없는 공통의 명제다.

그런데 군락지로의 진입이 막히면서 제물을 구할 수 없자,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요새에 남아있던 것은 마법사이면서도 그런 실험에 관심이 없는 자, 직업만 마법사로 가진 쭉정이들 뿐이었다.

당연히 그들로는 고블린들을 막을 수 없었고, 지금 벌어진 패배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흠"

요새를 차지했지만, 루프스는 별로 신통치 못한 표정이었다. 별 피해 없이 차지하는데 성공했지만, 루프스도 이것이 매우 운이 좋은 경우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마법사와 만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들이 어떤 힘을 휘두르고 얼마나 강력한지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피할 수 있었으나, 항상 이렇게 운이 좋을리는 없었다.

사실 마법에 관해서는 별로 이렇다 할 대비책이 없었다. 만일 이번에 그와 관련한 일이 벌어진다면 각자의 역량으로 돌파해야만 했으며, 그것이 이번에 각자 다른 특성을 지닌 이들로 하나의 조를 이루도록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선두에 선 방패병이 일차적으로 조원들을 지키고, 만일 그것이 뚫린다면 이차로 검병들이 나서서 공격을 방어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시적으로 방어하는 틈에 그들의 틈에 있던 궁병들이 당장의 위협이 되는 마법사들을 조준해서 공격하는 것이 기본 전략이었다.

다행히 이곳에 제대로된 마법사는 없어 별 필요 없는 전략이었지만 말이다.

루프스는 앞으로 마법사들을 마주쳤을 때 어떤 방법을 써야 가장 유효한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차적인 조치로 포로들에게서 그들에 대한 정보들을 최대한 뽑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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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들의 요새 점령에 관한 소식이 인간들의 귀에 들어가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군락지에서 이변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던 것은 요새 뿐만이 아니었고, 당연히 그들이 소속한 왕국의 왕실, 그리고 주변의 성주들과도 수시로 연락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러니 정기연락이 올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것에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요새와 가장 가까운 성주가 대표로 요새를 확인하기 위해서 병사들을 소수로 출발시켰고, 그들에 의해서 요새가 고블린들에게 점령당했음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소식에 의해서 플루 왕국은 발칵 뒤집혀지고 말았다.

왕실에서는 이에 대해서 요새 주변의 성주들에게 일임했고, 그들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모여들수 밖에 없었다.

요새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성. 르윅 성의 회의실에는 다른 두 성주, 노르드 성과 바스티온 성의 주인들이 보낸 사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하나씩의 수정구를 꺼내들었고, 잠시 후 르윅 성주는 수정구를 통해서 두 성의 마법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노르드 성, 연결되었습니다"

"바스티온 성, 연결되었습니다"

"르윅 성주다. 연결을 확인했다"

소리가 온전히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하고는 세 성주는 회담에 들어갔다.

"요새에 고블린들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만, 무언가의 착각은 아닌가?"

노르드의 성주는 아직도 요새가 몬스터들에 의해서 점령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듯 다시 르윅 성주를 향해서 물어왔다.

"우리쪽 병사가 확인했다. 각자에게 보낸 녹화 수정구에 담긴 영상들은 모두 사실이다"

"음... 이것 참"

바스티온 성주는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리쪽은 그쪽을 도울수가 없는데 말이지"

그는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고, 그의 사정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 두 성주는 그를 설득하려 했다.

"지금 상황이 더욱 급하다. 일시적으로라도 전쟁을 그만두는게 어떤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왕실에서도 중재가 들어갈거라고 생각한다만"

"바로 얼마전 요새가 점령당했을 때 맺은 조약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요새가 점령되었을 때 요새 주변의 성주들끼리 따로 조약을 나누었다. 요새를 점령한 몬스터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보험과 같은 느낌으로 맺어진 조약이었다. 내용은 요새가 다시 점령되는 사태가 벌어질 때 조약을 맺은 성주들은 동맹을 맺고 그 몬스터들을 쫓아내자는것이었다.

세 성주는 서로 조약을 나눈 당사자이면서, 왕실에 의해서 이번 사태를 일임받기까지 했다. 당연히 서로의 병력을 모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으음...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은 얼마 전부터 휴전에 들어간 상황이다. 내가 말하는 도울 수 없다는 것은 이쪽도 그만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바스티온 성주도 곤란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쪽 영지에서도 고블린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것도 점점 습격의 빈도가 높아지는 상황인데 아직도 꼬리를 잡지를 못하고 있지. 경계를 맡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력들이 그쪽으로 투입된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쪽으로 지원 보내기가 매우 곤란한 상황이라는 거다"

그가 전달한 소식은 다른 두 성주에게도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였고, 결국 그들은 그날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야기를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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