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침공
꾸웅-!
단순한 한번의 도끼질. 루프스의 전력이 담긴 일격이라지만, 철과 나무를 함께 이용해 만든 견고해보이는 성문에 단번에 흠집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흠집 하나라는 결과는 언뜻 별 피해를 주지 못한듯 싶었지만, 그 흠집이 루프스의 몸의 배에 달하는 크기를 지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꾸웅-
그리고 그는 쉬지 않고 다시 방금 때린 곳과 같은 장소를 도끼로 내려 찍었다.
꾸웅-
한번 한번 도끼질이 이어질때마다 성문의 흠집은 균열이 되고, 갈수록 균열은 점점 커져만 갔다.
꾸웅- 꾸웅-
그리고 그를 도우려는 듯이 그의 옆에 자리잡았던 이들도 마주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루프스의 도끼가 성문을 향해서 틀어박히고, 파인피의 창이 도끼에 의해서 만들어진 균열을 파고들어 그 틈을 넓혔다. 스콘드의 사기가 그 주변을 침식해 벌려진 틈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루프스의 도끼질이 다시 한번 내리치기 직전에 프리트에 의해서 문의 내구성을 대폭 낮추었다. 마치 늪처럼 흐물해지기 시작한 성문을 향해 다시 도끼가 내리찍혔고, 거대해진 균열로 성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퍼서석-
힘없이 성문의 한 부위가 부서져나갔다. 사람 하나는 충분히 지나가는게 가능할 정도의 구멍이 뚫린 성문을 보면서,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이 성문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성벽 위에서는 한창 난전이 벌어지는 와중, 그쪽에 전력이 집중되어 있을 거란 짐작하는게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이 요새는 그렇지 않았다. 요새를 끼고 수성전을 하는 경우가 드문만큼, 오히려 성벽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그들에겐 낯설었다.
성벽을 지키긴 해야하기에 대부분의 정규병들이 지키고 있긴 했지만, 요새의 전력은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최근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접근을 자제했지만, 본래 군락지를 들락날락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모험자들이 이곳에 남아있었다. 하염없이 언제 다시 군락지로 들어 갈 수 있는가 하는 기다림을 가지고.
그 와중에 전투는 벌어졌고, 두려움에 휩싸여 숨어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특히나 처들어온 이들이 고블린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직접 그들을 마주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나타난지 오랜 시간. 고블린들에 대해서는 그저 작고 조금 빠를 뿐인 몬스터라는 인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들을 만만하게 본 이들은 전투에 참여했고, 대부분이 익숙치 않은 성벽이 아닌 성문 부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스스로 바깥으로 나가 물러나거나 무리하게 처들어오는 고블린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성벽이 뚫릴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도 맥없이 뚫렸으며, 그곳에 지원을 가려 해도 그들이 대기하고 있던 성문의 낌새가 영 이상했다.
계속해서 울리던 성문은 결국 균열을 만들어내면서 일부지만 부서져내렸고, 소수의 고블린들이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
주기적으로 격렬하게 울리는 성문을 바라보던 그들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성문이 파괴되면서 무수하게 몰려오리라 생각했던 고블린들이, 단 소수만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를 노리듯이 일순 그들이 멈칫 한 그 순간, 성문을 방금 넘어온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크아앗!"
선두에 선 것은 들어온 이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덩치를 지닌 고블린이었다. 키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온몸을 이루는 근육이 그의 단단함과 강력함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는 순식간에 모여있는 모험자들에게 접근해서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콰지지직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듯이 떨어진 주먹은 한 모험가를 완전히 압축시켜 버렸다. 정수리는 어깨와 나란히 섰고, 그 어깨는 어느새 골반까지 내려앉았다.
선두의 자리는 어중이 떠중이에게 주지 않는다. 가장 먼저 적과 마주치는 자리이며, 그곳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면 사기도 함께 무너져내리는 자리다. 그만큼 선두에 세우는 것은 모여있는 이들중에서도 정예라고 할 수 있는 강자들. 하지만 지금 그들의 고민이 쓸데없었다는 듯이 선두의 강자가 단 일합으로 고블린의 손에 그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끔찍한 모습으로.
그것은 시작이었다. 한순간에 사람의 몸이 반도 안돼게 압축되는 모습은 그들을 위축시켰고 도주하려는 이들을 속출시켰다. 하지만 그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들의 발 밑이 어느새 늪지로 바뀌면서 그 움직임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 때를 노려서 프리트를 제외한 고블린들이 달려들었다.
파인피의 창은 단번에 둘 셋의 인간들을 꿰뚫어 버렸다. 그리고 창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이 그들을 집어삼켜 순식간에 소사(燒死)시켜 버렸다.
불타오르고 남은 신체는 늪지에 닿아 단번에 식어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수난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스콘드에 의해서 불타오른 그들의 신체는 다시 일어서야만 했다. 툭 건들면 그대로 부서져 내릴 정도로 허약한 시체였지만, 전 동료의 시체는 과연 그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 허약한 내구성에 어울리지 않게 강력한 악력을 자랑하면서 아직 살아있는 주변의 동료에게 들러붙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죽은 이들은 쓰러지기 무섭게 다시 일어섰고, 다시 주변으로 희생자들을 찾아나섰다.
늪지대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반수 정도는 집어삼켰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 자유로운 반이 있었고, 그들 중 또 절반은 고블린들을 향해서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도주했다. 당연히 적들을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던 루프스는 다른 그의 두 자식들에게 그들을 상대할것을 명령했다.
라둔은 항상 함께 다니는 늑대의 등에 올라타서 달렸다. 빠르게 달린 그는 단숨에 도주하는 이들을 앞질러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공포에 반쯤 눈이 뒤집혀서 도주하던 이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뒤늦게 눈치챘다. 순간 멈칫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엉뚱한 용기를 내면서 그를 지나치려는 시도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라둔은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그의 아버지의 명령이었으며, 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커헝-!
라둔을 태운 늑대는 크게 울었다. 도주하려는 이들을 향한 위협이었다. 그것의 포효는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려는 이들에게 확실히 위협이 되었다. 공포에 또 공포가 덧씌워진 이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라둔은 그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 목숨을 거둬갔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 빠르지는 않은 속도였다. 당연히 그 사이에 몸이 굳은 이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시 움직이는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도망칠 의도로 다시 발을 떼기 시작했지만, 당연히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고블린들이 아니었다.
피이잉- 퍽!
한발의 화살이 간신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이를 향해서 날아들었다. 빠르게 날아든 화살촉은 곧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어갔고 그대로 그는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졌다. 라둔과 함께 딸려보낸 그룬의 솜씨였다.
두 고블린의 사이에 쌓인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간신히 움직이게 되면 화살이 날아들었고,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자니 눈 앞에서 날뛰는 늑대와 고블린에 의해서 잡아먹힐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늑대가 입에 물고있어 덜렁거리는 하나의 팔을 보면 더욱 그러했다.
결국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싸우기를 결의 했지만, 사기도, 실력도 뒤쳐지는 이들이 유일하게 우위를 잡은 숫자로 밀어 붙인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의 수는 줄어들었고, 그들이 라둔과 그룬에게 줄 수 있는 피해라고는 몇개의 생채기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성벽 위에서의 전투도, 성문 앞에서 벌어지던 루프스들의 전투도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