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218화 (218/374)

218화

침공

루프스는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요새에 대해서 그는 알고 있었다. 플루 왕궁에서 군락지를 경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요새. 그리고 본래라면 지금 고블린들의 전력으로는 상대하기 상당히 어려웠음이 분명했을 요새다.

그렇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온 그였지만, 지금 눈 앞의 요새는 완전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전에 있었던 그 소동 때문이겠지'

짐작 할 수 있는 요인은 그것 하나 뿐이었지만, 그렇게 판단 할 만한 단서는 충분했다. 요새가 군락지에서 멀지 않은 장소, 나오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근거리에 세워져 있는 만큼 이곳에서 빠져나오는 몬스터들에게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제법 긴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이전에 일어났던 폭동과도 같았던 이변이 요새를 휩쓸었을 것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 증거로 아직도 성벽의 곳곳이 보수가 끝나지 않아 헐어있었으며, 그나마 형태를 바로잡은 장소는 갓 만들어진듯이 다른 장소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깨끗해 보였다.

보수가 끝난 장소는 멀끔했지만,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은 듯 드물지만 곳곳에 무너져내린 장소들이 보였다. 다만 성벽의 역할을 수행시키기 위해서 벽만큼은 일정치 이상만큼 올려놓은 상태라 딱히 요새 공략에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잡다한 생각을 이어가던 루프스는, 요새의 성벽이 눈 앞까지 다가오자 당장 앞으로 다가온 전투에 집중했다.

고블린들은 조별로 나뉘었지만, 아직까지 산개하지는 않았다. 한데 뭉쳐서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언뜻 보면 규칙없이 무작정 적진을 향해서 돌진하는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금방 밝혀졌다.

성벽과 일정거리로 가까워지자 고블린들은 뛰지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듯이 성벽에서부터 그들을 향해서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첫 몇발은 돌진하는 고블린들의 앞에 떨어졌다. 돌진해오기 시작한 모습에 우발적으로 쏜 것인지 정확성도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은 화살이었다.

하지만 곧 적들의 사정거리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고 그 때 부터는 화살들이 고블린들을 마음껏 노리기 시작했다.

화살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자, 그 때 부터 방패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탱- 태대댕-

쉬이익- 팟 부르르르

방패의 중앙과 그 부근을 때리는 화살들은 강철로 만들어진 면을 때려서 오히려 튕겨나갔다. 그리고 어쩌다 가에쪽을 때린 경우는 방패에 하나씩 박혀들어갔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방패의 형태 때문이었다. 얕은 곡선의 원형 방패는 일반적인 방패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 강철로 이루어진 부분은 그 중앙 부분 뿐이었다. 정확히는 목제 방패 위에 그보다 작은 원형의 철제방패를 덧댄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그저 전열에서 상대방의 화살을 받아내기만 할 뿐인 역할이었다면 이런 방패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루프스는 조를 짜서 협동해서 전투하는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 때 리더의 역할을 맡아줄 이들에게 줄 방패에 대해서도 생각했었다.

애초부터 조원들 대부분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인 방패였기에, 그에 적합한 인원들은 조장을 맡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연스레 무력순으로 조장을 맡게 되었고, 그들이기에 이런 형태의 방패를 고안하는게 가능했다.

방패는 두겹이라는 특징 외에도 한가지의 특출난 점이 더 있었다. 다름아닌 그 크기였다. 자신의 몸만을 가릴 생각이 아니었기에, 여럿을 가리는 사용자보다도 거대한 크기를 가진 방패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방패를 들고 돌진하는 그들의 옆에는 몇조가 모여서 함께 사다리를 옮기고 있었다. 다섯조가 한데 뭉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여섯이나 일곱조가 뭉쳐있는 경우도 있었다.

방패로 자신들을 향해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사이 드문 드문 화살이 박혀들은 사다리를 성벽을 향해서 세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사다리가 성벽에 걸쳐졌고, 화살도 멀리있는 이들 보다는 성벽에 가까이 있는 이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조장들은 날아오는 화살들로부터 동료들을 지켰고, 그 사이 사다리는 무사히 성벽에 설치되었다.

그저 들어서 성벽에 붙이는 것 뿐인 작업이었지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그 부피도 무게도 제법 크다는게 성가신 일이었다.

사다리가 완성되자, 조장들은 일제히 방패를 내팽개쳤다. 그리고 스페어로 만들어진 방패를 꺼내서 위로 들어올리고는 가장 먼저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몬스터들이 이렇게까지 준비해서 올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지, 언뜻 보이는 성벽 위의 병사들이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고블린들은 계속해서 사다리를 기어 올라갔다. 인간들도 당황스러움을 감출수는 없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듯 성벽을 올라오는 그들을 막아섰다.

"쏟아부어!"

"자갈뭉치! 비축해둔 자갈뭉치를 가져와!"

"사다리를 밀어버려!"

"안됩니다! 너무 무겁습니다!"

"찔러! 찔러! 올라오지 못하게 찔러서라도 막아!"

성벽의 위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만일을 위한 대비가 되어있기는 한 듯 싶지만, 비교적 미흡했던 듯 기름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연달아서 떨어지는게 아닌 간헐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며 그 양도 적었다. 선두에 선 조장 고블린이 손에 들고있는 방패를 이용해서 슬쩍 흘리는것으로 충분할 정도였다. 어쩌다 밑에서 올라오는 이들에게 튀더라도 이렇다 할 피해를 주고 있지도 못했다.

또 자갈이나 돌덩이를 내던져 올라오기를 방해하고, 거의 성벽의 끝에 근접한 이들에게는 기다란 장창을 찔러넣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노력은 보답받지 못했고, 고블린들이 하나 둘 씩 성벽의 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캬앗!"

부웅-

가장 먼저 올라선 한 조장 고블린은 손에 들고있는 방패를 휘둘렀다. 처음 들고있던 것에 비하면 작지만 여전히 육중한 방패의 위협에 성벽 위의 병사들은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직 올라오고 있는 조원들을 위해서 아직 다른 무기를 뽑아들지 않았다. 다른 무기를 뽑아든다면 상대하기가 편해지겠지만, 놓치는 이들이 나올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그의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일이기에 방패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듯이, 일시로 막아선 그의 등 뒤로 나머지 고블린들이 올라섰다.

성벽위에 올라서는데 성공한 고블린들은 곧바로 그들 정면에 대치중인 적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서걱-

선두에 나선 검병이 휘두른 검이 인간 병사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에 뒤치지 않듯이 창병의 창이 또 다른 병사의 심장, 목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아군을 보조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달려들던 다른 병사들은 가장 후방에 위치한 궁병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순식간에 대치중이던 인간들을 물리친 그들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여전히 올라오는 고블린들을 막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들이치는 공격에서 버티는 것은 힘들었다.

성벽에서 적들이 올라오고 있어 그들을 방해하는 사이 들어오는 공격들은 그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구멍이 또 하나 뚫렸고, 그를 시작으로 성벽위에 올라서는 고블린들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고블린들은 성벽위를 휩쓸고 다녔고, 대비가 미숙했던 요새의 병사들은 손쉽게 고블린들에 의해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듯이 성벽으로 올라오지 않은, 그들 중에서도 최대의 전력인 루프스와 세 고블린들 그리고 루프스의 자식들 중 셋이 성문의 앞에 섰다.

가장 선두에 선 루프스는 성문을 향해 다가갔고, 그곳을 향해 손아귀에 쥐고 있는 도끼를 휘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