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탈주자들
들썩 들썩
푸스스스
들썩거리던 흙에서 튀어나온 것은 고블린들이었다. 다섯의 고블린들은 마을의 안에 잠복하면서 처들어온 이들이 언제 사라지는지 지하부족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마을에서 직통으로 지하부족을 향하는 통로는 무너트려서 제거했지만, 적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완전히 모르고 있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마을의 지하에 따로 땅굴을 파놓았다. 통로도 무너트린 마당에 굳이 지하와 마을을 연결시킬 필요는 없었다. 당연히 이곳은 어디에도 마을과 연결된 장소는 없었기 때문에 마을에 있는 이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 할 것이다.
다만 인간들이 마을 전체에 불을 지를지는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위장 마을이 숨겨져 있는 장소는 어찌되었든 산 속이었고, 자칫해서 큰 불이 났다가는 산 전체를 홀랑 태워버릴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드란은 그들이 그런 방법을 쓰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의 밑에 파여있는 지하에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그리고 만일의 경우 호흡이 곤란해지지 않도록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당연히 불태워지는 마을에서 전해지고 있는 열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들이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적들의 이야기를 더 듣기보다는 지하로 더 파고들어가는데 집중해서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다만 열기가 식어 어느정도 밖과 드나들 수 있을 때 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에도 마을 전체에 귀를 기울여 별다른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까지 마쳐야만 했다.
열기도 사그라들고, 밖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제서야 마을을 향해서 흙을 파내고 위로 올라 설 수 있었다.
없는 통로를 만들고자 강제로 파다 보니 온몸에 흙먼지가 묻은 상태지만 이미 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온몸의 흙먼지를 털어낸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연 밑에서부터 느꼈던 그 열기가 거짓은 아니라는 듯이 대부분의 장소가 무너져내린 뒤였다.
그것은 외진곳에 덩그러니 있는 무너진 통로도 집어삼킬만한 참상이었다. 마을 전체가 불에 타올라 잿더미가 되고, 타다만 나무와 짚단만이 남아있어 더 이상 사용하기는 힘들어보였다.
게다가 어지러이 흩날리는 재와 무너지다만 건물들은 이곳을 다시 재건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다행히 인간들에 의해서 통로는 발각되지 않은듯해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그들은 그대로 마을에서 떠나갔다.
떠나가면서, 잠깐 다시 지하에 들어갔던 그들은 미리 준비해둔 방법으로 지반을 건드려, 지하에 만들어진 공간을 무너트려 버렸다. 자연스레 이전 고블린들의 마을은 폭삭 주저앉아 버렸고, 그곳에 남은 것은 큰 구덩이와 타다가 남은 나무쪼가리들과 지푸라기 뿐이었다.
///
인간들에게 침공당한 마을과는 또 다른 장소. 이곳에서는 고블린들에 의해서 두번째 위장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미 상당히 작업이 진척되어있는 상황이었기에, 인력이 추가되자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폭 단축되었다.
오랜시간 이어진 지하에서의 생활은, 그들에게 안전을 가져다 주면서 동시에 기술의 발전도 안겨주었다. 점토를 열로 굳혀서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알아내었고, 그걸 이용해서 집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지어지고 있는 것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 인간들에게 들킬시 바로 버리고 도망칠수 있는 버림패와 같은 장소다. 당연히 이런 장소에 심혈을 기울일리는 없으니, 가장 초기에나 지었던 조잡한 움집들로 가득 채운 것이다.
마을은 빠르게 정비되었고, 그것은 또 다시 인간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는 하나의 신호탄이 되었다.
각 장소에서 만들어진 통로에서는 고블린들을 쏟아내었고, 그와 동시에 그들의 활동 영역을 높이기 위해서 통로들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늘어나는 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한명의 성주가 다스리는 정도의 영역만을 돌아다니는 정도였던 고블린들이, 순식간에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게 된 것이다.
통로가 완성되자마자 바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두번째 마을에서 시작된 하나의 파동은, 습격 이후 쉬어가는 하나의 거점이 되어주는 마을이 하나, 둘 씩 점점 완성되어 갈 때 마다 인간들을 향한 공격은 점점 거세어져 갔다.
하나의 영역 정도를 공격하는게 가능했던 그들이 어느새 둘, 셋 씩 점점 습격 할 수 있는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천천히 진행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인간들의 침공으로 바뀌었다. 드란도 이미 짜여진 계획이 있음을 이야기했지만, 인간들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많이 치고서는 빠져나가려는 것이다.
///
"급보 입니다!"
"급보 입...!"
"급보!"
성주의 집무실로 연달아서 달려오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급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소식은 과연 그렇게 판단할만한 것이었다.
"이... 무슨..."
바로 얼마전에, 고블린들의 거점으로 짐작되는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에 억지로 병력을 일부 쥐어짜내서 보내는 일까지 있었지만, 결국 고블린들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그 장소만을 불태우고 돌아오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사라진 고블린들. 당연히 성주는 별 생각이 없었다. 다른 장소로 이주했겠거니 하는 비교적 태평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것까지 신경쓰기에는 전쟁이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성주의 생각은 부메랑처럼 수많은 마을의 전멸이라는 소식으로 도착해버렸다. 아무래도 고블린들의 수가 아주 많지는 않은지, 하루에 몇개의 마을이 사라지는 정도라지만 그것만으로도 피해가 컸다. 이전의 몇일에 한번 움직였던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수일에 걸쳐 연속되는 비보에 안색이 좋지 않은 성주는 두개의 서류를 그 손에 쥐어 들어올렸다. 그곳에 적혀있는것은 그에게 그나마 안심이 되는 두가지 정보였다.
그와 전쟁을 벌이던 또 다른 성주의 영지에서도 고블린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정보와 그로부터 도착한 휴전의 협정서였다. 그곳에는 고블린들을 토벌 할 때까지 전쟁을 중단하자는 제안이 들려있었다. 마침 고블린들에게 속을 썩이고 있던 그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제안이었다.
딸랑 딸랑
서류를 내려놓은 그는 탁자에 놓여있는 종을 흔들었고, 곧 그의 심복인 기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공손히 고개를 숙인 기사에게 성주는 하나의 서류에 도장을 찍고는 그에게 전달했다.
"이걸 들고, 바스티온 성주에게 가게. 그와 휴전한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수가 없네"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에 안든다는 태도를 보이는 성주였지만, 기사는 묵묵히 그에게 다가가 휴전의 서찰을 받아들고 떠나갔다.
"휴전도 그다지 믿을것은 못되지만... 일단 전력에 여유가 생긴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겠지"
어찌되었든 그쪽이나 이쪽이나 고블린들을 처치하는 것이 다급한 상황이다. 자연히 그 과정에서 그쪽이나 이쪽이나 전투를 벌일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고블린들을 처치하고, 그 다음은 놈들이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 있는 고블린들을 최대한 빨리 몰살시킬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그의 영역에서 전멸하는 순간, 그는 다시 전쟁을 재개할 생각인 것이다. 아직 영역에 빈틈이 생겨있을 그 사이에 공격을 시작해서 단숨에 휴전을 승전으로 바꾸어 끝낼 생각인 것이다.
성주는 다짐을 하고는 눈을 빛냈다. 이것이 어쩌면 악재가 아닌, 적들을 밀어버릴 수 있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