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탈주자들
두 차례나 일어난 고블린들의 습격은 오크들을 고용해 고블린들을 향해 밀어넣었던 이들의 귀에서 들어갔다.
"젠장, 도대체 어느사이에 그렇게 새끼를 친거야?!"
계속해서 점잖은 자세를 관철하던 중년 남성이 테이블을 찍으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군락지에 있는 고블린들이 최후의 고블린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그 안에서 새롭게 영역을 차지하고 부족을 만들어낸 고블린들이 나타나자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확신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또 다른 놈이! 나타난거야!"
쿵- 쿵- 쿵-
연달아서 테이블을 내려치면서 분통을 터트리는 그의 모습에, 소집으로 모여든 다른 세명은 아무 말도 못하고 몸을 움츠리고만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면서 어느정도 진정한 듯 보이자, 모인이들을 대표해서 말상의 젊은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까?"
하지만 조심스런 그의 물음이 너무 일렀던 것인가, 아직 온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중년 남성은 말상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크으으... 됐다. 더 생각해봐야 열만 더 끓어 올릴 뿐이겠지"
다행히 이번에야말로 냉정을 찾겠다는 그의 태도 덕분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토벌관련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지"
"예상한대로 거부하더군요"
심각한 표정을 지은채로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깃털 같이 가벼웠다. 그 어떤 이변도 없이 예상 그대로의 이야기가 펼쳐진듯 지루한 목소리였다.
"빌어먹을"
"자업자득이죠. 그러게 선조께서는 왜 욕심을 부리셔서"
혀를 차면서 끌끌거린 말상의 남자를 보면서 중년 남성은 또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어떻게든 잘 처리되길 빌어야지. 그럼 우리가 원래 노리던 놈들은?"
"음... 그쪽은 지금 침투도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남자는 곤란한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보충하듯이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나이로 보이는 한 남성이 덧대어 말했다.
"오크 놈들이 처들어가면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전투가 격해지면서 그게 영향을 미친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저기서 몬스터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군락지 근방의 요새들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한동안 일제히 접근금지를 시켜서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필요한 보고만을 하는 딱딱한 표정의 남성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중년 남성의 표정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군"
탁 탁 탁 탁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탁탁 치면서 분을 삭히던 그는, 곧 모여있는 이들을 둘러보면서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일단 군락지에 있는 녀석들은 내버려둔다. 녀석들의 덩치가 더 커지기 전에 몰살시키는게 제일 좋겠지만, 너무 성주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안좋겠지. 지금은 군락지를 벗어났다는 놈들한테 집중한다"
"알겠습니다"
엄숙하게 분위기를 잡으면서 지시를 내리자, 모여있는 이들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
세 모험가와 고블린들의 전투는 오랜시간 이어지지 않았다. 최하급 고블린들은 얼마든지 상대 할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점점 당하기만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그들을 지휘하던 하급 고블린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섰고 세 모험가는 곧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선두에서 고블린들의 맹공을 받던 월터는 버티지 못해 그 목숨을 잃었지만, 그의 보호를 받던 한스와 헤론은 어떻게든 그 목숨을 이을 수 있었다. 다만, 그것도 고블린들이 그들의 정보에 필요성을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시체는 주변에 만들어져있는 함정으로 이용되는 구덩이에 밀어 넣어두고, 둘은 그대로 마을을 향해 압송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단의 무리가 그들보다 아득한 후방에 존재하고 있었다.
///
온 몸을 검은색의 로브로 꽁꽁 감싸고 있는 이가 꼭 감고 있던 눈을 떳다.
마치 루비와 같은 영롱한 적색의 눈동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예상대로, 그 모험자들. 뭔가 단서를 찾았었던것 같아요. 정확하게 고블린들의 거점을 발견해낸것을 확인했어요"
그 목소리는 맑고 고왔으며, 로브의 안에 있는 인물이 여성임을 단번에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험가들은?"
그녀의 앞에는 열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에서 안면 곳곳에 자상이 나있는 한 남성이 그녀를 향해서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한명은 죽고, 두명은 고블린들에게 잡혀갔어요"
"잡아갔다고...?"
잡아갔다는 이야기에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지금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이제 고블린들의 소굴이 있는 위치를 전달 할 수 있는건 우리 뿐이라는 이야기군"
이자리에 모여있는 이들은, 한스 일행과 마찬가지로 성주에 의해서 고용된 모험가들 중 하나로, 실력적으로는 어지간한 용병들 이상이었다. 다만 워낙 제멋대로인 성격 탓에 용병이 아닌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닌, 두번째 습격을 받은 마을을 조사하던 중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이는 한스의 일행을 이상하게 본 것이 그 계기였다. 마을 중앙에서부터 움직이던 그들이 곧 마을 밖을 벗어나는 모습을 확인하자, 그들이 뭔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혹시나 무언가를 건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너무 가까이 간다면 그들이 경계해서 아무런 정보도 캐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따라간 것이다.
그들의 감시는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던 자이린이 사용한 원견의 마법을 이용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의 실력이 더 높았기 때문인지, 헤론도 별달리 이상을 눈치채지 못하고 제 갈길을 알아서 찾아갔었다. 계속해서 쫓던 그들은, 셋이 어느순간 경계를 다지면서 움직이자 조심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혹시나 그들이 찾았던 것을 자신들의 몫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그대로 이루어져버렸다.
여차하면 직접 나서서 공적을 가로챌 생각도 하고 있던 그들에게 이미 발견자들이 고블린들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은 충분히 희소식이라고 할만했다.
"그럼 서둘러 움직이자고"
"옛, 대장!"
그의 말은 모여있는 동료들에게 전달되었고, 그들은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거리가 상당하긴 하지만, 만에 하나를 걱정한 그들이 재빨리 고블린들의 영역에서부터 멀어지려고 한 것이다.
마법을 이용하느라 무방비 상태였던 자이린을 지키고 있던 그들은 머문 흔적들을 지웠고, 그 사이 다시 마법을 이용해서 주변을 확인한 자이린에 의해서 적들이 없다는 확신을 얻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떠나갔고, 과연 그 걱정이 기우는 아니었다는 듯 순찰을 돌던 고블린들이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들이 흔적을 지웠다지만, 대부분의 경험을 전투나, 모략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거의 일생 모두를 흔적을 숨기고 찾는데 쏟아부었던 고블린들을 속이기에는 미숙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그 꼬리를 붙잡았지만, 결국 먼저 마을로 들어선 이들을 잡을 수는 없어 놓치게 되었다.
그 소식은, 간신히 침입자들을 잡아 이른 시간에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데 성공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쿠알론들의 귀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