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탈주자들
과연 고블린들도 이 상황은 생각지도 못 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추적에는 최대한 신경을 써왔지만, 설마하니 단번에 발각되는 일이 있을것이라고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셋의 모험가들이 바라보는 고블린들의 마을은 비교적 매우 무방비한 상황이었다. 몇몇 고블린들이 마을 주변을 돌면서 순찰을 하고 있을 뿐이고, 경비 병력도 입구에 둘이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 들어가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하느라 잠시 지쳐서 헉헉대던 헤론이,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묵묵히 고블린들을 노려보는 한스를 향해서 물었다.
한스도 본래의 계획을 계속해서 관철할 생각이었지만, 이곳에 도착하고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중이었다. 마을의 크기가 그리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습격을 자행한 이들 치고는 그 전력이 전체적으로 약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고블린들이 그들 셋이 수월하게 상대가 가능해 보였다. 간혹 조금 버거워 보이는 고블린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수에서도 매우 극소수였다. 다만 마을을 만들 때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제법 높은 담으로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전력적인 의미에서는 셋의 자신감을 키워주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돌진 할수도 없었고 애초에 한스에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은 계획대로 행동하자고. 괜히 위험을 자초했다가는 우리의 목숨은 물론이고, 이곳에 잡혀있는 사람들을 구할 일말의 가능성도 사라지는 거니까"
애초에 다른 이들이 이곳을 찾지 못하는것은 딱히 헤론이 뛰어난 마법사여서도, 그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없어서인것도 아니다. 단순히 모집자 중에서 추적 마법을 지니고 있는 이가 그 뿐이기 때문이다. 추적 마법 자체는 그리 어려운 마법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공격마법과 전투시 사용되는 보조마법을 위주로 배우기 때문에 사용자가 극소수인 것이다. 게다가 단 하나를 추적할때는 정확도도 떨어지며, 시간이 지났다면 남아있던 흔적들도 모조리 증발하기 때문에 그 효용가치가 비교적 낮은 마법이다.
이런 마법을 배운 헤론이 상당히 이질적인 편이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그들만이 이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추적 방법을 사용하려 해도, 고블린들이 사냥으로 먹고살던 시절이 있기 때문인지 생물이 움직이면서 남기는 흔적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도주중에 그들이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이 남긴 흔적을 지우면서 움직였기에 유능한 사냥꾼이나 추적자를 붙여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셋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을이 이것 뿐인지도 모르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라도 다양한 조사는 필요하지만, 정면 돌파는 하지 않을 거야"
한스는 다른 둘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고, 둘도 그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뭐, 네가 그러겠다면야"
"알겠네"
둘의 대답에 만족한 한스는 일단 마을에 침투할 경로를 살펴보았다.
'후방도 정면도 기본적인 경계는 하고 있고... 울타리를 타고 넘자니, 정찰병들이 지나가는 주기가 상당히 빠른데'
어떻게 침투하는게 좋을지 고민하던 그는 허술하게도 보이는 고블린들의 경계가 생각보다 견고하다는 사실은 그들을 감시한지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게다가 따로 잠시 자리 비우는 순간도 없다니... 교대하는 주기도 비교적 짧은 편이고'
써먹을 인력이 많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저렇게 보여도 상당히 경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건지 셋이 반나절은 지켜보는 동안 벌써 두번이나 교대하고 있었다.
'역시 방법은 측면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나?'
그나마 경계가 소흘한 것은 측면 부분 이었는데, 한번씩 순찰하면서 확인하긴 하지만 비교적 그 주기가 긴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다름아닌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높이 세운 나무들을 엮어서 만들었을 뿐인 단순한 장벽이지만, 신경써서 만들어서 잘 무너지지도 않으며 그 크기 때문에라도 누군가 일시로 무너트린다고 하더라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있다.
'내부를 정찰하는건 그만둬야 하는건가?'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생각을 이어가던 한스는 아쉽지만 일단 물러나서 고블린들의 마을의 위치만을 알려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그는 반나절이나 기다린 시간이 아쉽기는 했지만, 신속하게 움직였다. 끝까지 공격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에 헤론은 살짝 마음에 들지 않은듯 투덜거렸지만, 월터는 만족스러워하면서 그의 지시를 따랐다.
하지만 역시나라고 할까, 뒤로 물러나려던 그들에게 한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텁-
조심스레 물러나던 그들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고, 그 순간 그들의 후방에서 거대한 통나무가 그들을 덮쳐왔다.
"우왓?!"
특히나 가운데에 있어 통나무의 정면으로 포착된 한스가 화들짝 놀랐고, 구르면서 그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쿠웅-!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셋 모두 어떻게든 통나무의 돌진은 피해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주변에 있는 함정들은 적을 죽이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만일 적을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를 알려주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모험자 셋을 지나친 통나무는 그대로 정면에 있는 나무에 들이받았고,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함정이 발동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키잇?!"
한스의 비명소리는 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져 있어 들리지 않았지만, 통나무의 소리는 그러지 못했다. 육중하게 울리는 타격음은 고블린들의 귀까지 고스란히 들어갔고, 그것은 침입자의 존재를 알리는 하나의 신호음이 되었다.
"캬앗! 적이다!"
가장 먼저 적의 존재를 외친것은 경비를 서던 고블린 중 하나였다. 그의 외침은 마을 전체에 울려퍼졌다.
적의 존재를 알아차린 고블린들은 제법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비록 이곳에 있는 이들이 쿠알론의 부족에서 전체적으로 전력이 떨어지는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능하기만 한 이들은 아니었다.
빠르게 작게 지어진 움집에서 튀어나온 고블린들은 그대로 퍼져나갔다. 목표지점은 통나무와 나무가 부딪힌 지점의 부근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들의 모습은 간신히 함정을 피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일행들의 눈에도 들어왔다.
이곳을 목적으로 달려오는 고블린들의 모습은 이곳까지 처들어왔던 셋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느긋하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 그들은 일단 다급히 자리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반응은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키잇,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 주변이다! 캬걋, 얼른 찾아!"
마침 그들이 멈춰서서 고블린들의 부족을 감시하던 위치에 도착한 이들이 나타났고, 그들에 의해서 그들의 존재는 더욱 확실시 되었다.
"저기다! 키깃"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친 고블린들의 모습에 셋은 더욱 더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은 고블린들이 그들의 모습을 찾는 시간을 단축 해 주었다. 결국 고블린들과의 전투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전투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읍!"
가장 전면으로 나선 것은 등에서부터 육중한 방패를 풀어낸 월터였다. 그리고 그 뒤에서 장검을 들고 있는 한스가 그의 뒤를 받쳐주었고, 둘의 보호를 받은 헤론이 자신들을 향해서 돌진해오는 고블린들을 향해서 마법을 준비했다.
그렇게 전투태세를 갖춘 그들을 향해서 고블린으로 이루어진 물결이 부딪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