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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212화 (212/374)

212화

탈주자들

잠시 정신의 안정을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하다 판단한 셋은 일단 마을의 바깥으로 나갔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여러모로 피폐해진 정신을 달래는것을 우선시 한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들은 마을의 외곽을 전체적으로 한바퀴 둘러보았다. 이미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나 떠나면서 흔적을 지운 것인지 고블린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것은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예상대로라면 예상대로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다.

허탕을 쳤지만 셋은 일단 마을의 중앙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마을에서도 가장 격정적인 전투가 벌어졌었는지, 여기저기 베이고 찔린 상처는 물론이고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을정도로 여기저기 잘린 신체부위가 흩어져 있는 끔찍한 장소였다.

간신히 정신을 바로잡았던 셋에게 이곳의 광경은 다시 셋의 정신을 크게 흔들었지만, 표정을 굳히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나선 헤론은 작은 목소리로 영창을 하기 시작했다.

"----"

분명히 소리는 들리고 있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창은 짧게 이어졌고, 곧 그는 의도한 마법을 발휘했다.

"ㅡㅡㅡ!"

그가 마법을 외치는 순간. 그의 시야가 변하기 시작했다. 한가닥 푸른 선이 그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또 하나의 선이, 다시 하나가, 그리고 또 하나가 다가오고 끝에는 수십을 넘고 백을 넘는 수가 그의 앞에서 뭉쳐서 하나의 길을 표시했다.

그가 사용 한 것은 추적의 마법. 그것도 단일개체가 아닌 백 이상으로 추정되는 다수를 추적 할 때 사용되는 마법이었다. 그 이용 원리는 제법 복잡하지만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룬돌이 지닌 강자 추적 능력의 하위호환과도 같은 마법이었다.

하나의 밧줄과도 같은 그것은 마을 곳곳을 휘감으면서 뻗어나가고 있었다. 제법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마법의 시전자, 헤론 뿐이었다.

그에게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었지만, 그의 동료 둘의 시야에는 일절 변한점도 없었다.

"저쪽이네. 가자"

스스로도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헤론은 평소와 달리 앞장을 섰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선의 묶음 다발이 뻗어있는 방향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들이 들어섰던 장소와는 반대되는 마을의 입구에 도착한 헤론은 묵묵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일단 알고 있는것이 좋다고 판단, 그의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을 둘에게 설명했다.

"이거... 마을에 처들어왔던 몬스터들이 같은 편인것은 맞는것 같은데... 좀 이상한 점이 있어"

"응?"

"이녀석들, 마을을 나서고 향한 방향은 모두 일치하고 있는데, 마을로 들어오는 부분이 띄엄띄엄 보이는데?"

"그 말은"

"어, 아무래도 이놈들 분산해서 들어왔었던거 같은데? 놈들을 추적하는데 문제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좀 걸리네"

헤론의 이야기는 한스에게도 월터에게도 어딘가 꺼림칙함을 느끼게 했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것은 이 꺼림칙함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블린들의 본거지를 추적하는것을 우선시했다.

헤론은 앞장섰고, 그의 뒤를 한스와 월터가 따라갔다.

///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와중에 비교적 한가한 트레이가 이번 습격의 수확을 확인하고 있었다.

쿠알론은 지하부족에서 전체적인 정비를 하고 있었고, 드란은 진행중인 공사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된 인선이었다.

"음..."

그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위장 마을과 지하부족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중간 거점 중 하나였다. 지금쯤 위장 마을에는 말 그대로 위장을 위해서 머물도록 만든 최하급 고블린들 수백 정도에 하급 고블린 열 정도, 그리고 우두머리를 중급 고블린 하나로 잡아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습격을 진행한 이들은 이미 중간 거점을 지났으니, 지금쯤이면 지하부족 근방까지 도착 했을 것이다.

"포로로는 대략 30명 정도. 그리고 축복을 받은 이들이 다섯이라... 이번 수확은 이전보다 좋은 편이군"

흡족한 결과물에 그는 미소지었다. 생각보다도 이번에 벌이는 작업이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니 만족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드란 그 녀석의 제의로 나온거라는게 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뭐, 별다른 일은 없겠지"

그 자신이 낸 의견이 아니라는 사실이 좀 불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신뢰 하고 있는 동생인 드란의 결과물이니 별다른 사감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중간 거점에서 필요한 나머지 업무를 확인했다.

///

드란은 눈 앞의 독지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만큼, 미로의 곳곳에는 이런 독지가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었다. 만일 알맞은 길을 찾지 못한다면 침입자들은 이 독지에 발을 들이게 될 것이다.

"안으로 직접 들어서지 않아도 결국은 죽겠지. 이곳에 퍼져있는 독기를 이견지 못한다면 말이야"

본래 있던 부족을 뛰쳐 나왔지만, 여전히 그때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독의 연구와 함정의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독은 그 유용성으로 드란이 나서서라도 연구를 중지하지 못하도록 했었다. 그 과정에서 고블린들은 절로 독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있었고, 이곳에 퍼져있는 독기 정도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이야기지"

드란은 독지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붓고 있는 부하 고블린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경험으로는 그 허약한 인간들이 이곳에서 무사히 돌아갈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뭐, 그래도 도주할 염려는 있으니 이렇게 하고 있는 거지만"

드란은 독지가 만들어지는 주변을 주욱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올바르지 못한 길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이곳은 일종의 함정으로서 동작하는 장소였다.

고블린들의 독에 대한 내성 뿐만이 아닌, 어두운 장소에서도 잘 볼 수 있는 그들의 특징을 이용한 함정이다. 독지라고 하더라도, 빛 한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이 밀폐된 공간을 잘 볼 수 있어야만 이 독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만일 횃불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대략 가시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제대로 함정에 걸렸다고 할 수 있었다.

독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함정 발동을 위한 트리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트리거가 발동한다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무너져 내려 안에 들어선 이들을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

지반은 또 나름대로의 방법을 이용했기 때문에, 함정이 만들어진 지역을 제외한 곳이 무너질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그야말로 만족스러운 함정의 완성이었다.

게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다면 굴파기에 전문인 녀석들을 불러서 보수 할 수 있게, 독지 근방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었으니 재활용도 가능한 함정이었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함정을 마지막으로, 그가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고블린들이 습격을 위해 이용할 통로는 모두 완성된지 오래였으며, 이곳이 마지막으로 만들어야 하는 함정이 있는 자리였으니 모든 작업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드란도 트레이도 그리고 쿠알론도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벌써 위장 마을이 인간들에 의해서 발각되고 있었다.

"저기가..."

수풀에 엎드린 한스는 조용하지만 이글거리는 듯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몇몇 고블린들이 돌아다니면서 마을을 보수하고, 주변에 사냥을 나섰다가 들어오는 듯한 고블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완전히 지친 것인지 바닥에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헤론이 있었으며, 그의 곁을 월터가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셋은 고블린들이 만든 하나의 마을을 발견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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