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탈주자들
한스를 포함한 세명은 마을의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현장을 보존하려던 흔적은 보였지만, 역시 다수가 한번에 들어갔기 때문인지 발자국을 비롯한 흔적들은 여기저기 훼손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훼손되었어도, 머문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있는 법. 과연 이곳에 다녀간 이들이 고블린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이, 마을 주민들의 시체 사이에 간혹 떨어져나간듯 녹색빛을 띄는 살점이 찢겨져 흩어져 있었다.
다만 전투에서 발생한 시체들은 모두 가지고 돌아갔는지, 마을 주민들의 시체들 뿐으로 덕분에 그 사이 사이 있는 흔적이 더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흔적을 조사했지만, 오랜 시간 있자 그와 동료 셋은 속이 뒤집어지는것 같았다. 조사를 위해서라지만 지속적으로 시체를 살피는 것이 그들의 정신을 마모시켰던 것이다.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 아니다. 용병을 꿈꾸는 만큼 실적을 위해서도 성주간의 전쟁에 불려가기도 했고, 나라와 나라간의 국지전에도 한번씩 참전하기도 했었다. 모두 의미라고는 조금도 있지 않은 거의 의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전쟁이었지만, 항상 모든 전쟁에서는 시체가 만들어지는 법이고 그가 직접 살아있는 자를 시체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달랐다. 별 생각없이 들어섰던 그들은 이리저리 조사하러 돌아다니면서 머리가 어질해지고,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전투중에 벌어지는, 목숨과 목숨이 오가는 그 혼란의 와중에 벌어지는 살인과 시체들의 끔찍함은 그들의 정신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오로지 목숨을 챙기고자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그 괴악한 현장에서는 끔찍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목숨을 빼앗는것도, 경각에 달려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미 죽어있는 사람들의 시체를 살피면서 남겨진 흔적들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일이 지나 부패가 시작된 시체들이었고, 몬스터들에 의해서 살해되었기 때문인지 종종 보기만해도 끔찍한 종류의 시체가 있기까지 했다.
장시간 시체를 조사하기 위해서 달라 붙어 있으니 셋에게 이상이 생기고 정신이 깎여나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시간 동안 전투가 벌어진 장소, 그리고 쓰러져있는 사람들의 시체, 전투로 훼손된 건물들을 각자 흩어져서 살펴보던 셋은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한데 뭉쳤다.
"뭐 중요한거라도 건진건 있어?"
눈두덩을 문지르면서 피곤한 기색으로 한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으윽, 일단 분명히 고블린이라는 놈들인건 분명한것 같아. 녹색의 가죽조각도 그렇지만, 발자국을 발견했어. 크기는 기껏해야 성인 남성 키의 절반이 조금 넘는 정도니 아마 분명할거야"
헤론도 어지간히 속을 게워낸듯, 헬쓱한 얼굴로 입가에 남은 흔적을 흝으면서 쓰린 속을 쓰다듬고 있었다.
"후... 그 뿐만이 아니다. 남아있는 주민들의 시체. 이상한점이 있지 않았나?"
"으음..."
본인이 할 말을 마친 헤론이 축처져있는 사이에 월터는 창백하게 굳은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상할게 있었나?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은 마을이니 시체가 있는건 당연하겠고. 집이 무너져 있긴 했지만, 딱히 뭔가 털어간 흔적도... 어?"
"그래"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린 듯, 한스는 머리를 화들짝 치켜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던 월터도 그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들이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몬스터들의 영역이 늘어났을 때,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경우. 그게 아니면 식량이 부족한 경우 두가지다"
"어느정도 지능이 있는 녀석들은 그 외의 목적으로 처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전자의 경우라면 이곳이나 이전의 마을 모두 그들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다. 이곳에서 거기까지 거리만 생각해도 이틀은 걸리는데, 한 몬스터가 차지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넓어"
월터의 이야기에 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또 다른 이상한 점을 들려주었다.
"억지로라도 이 범위를 그들의 영역이라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점은 더 있다"
"다른 마을들인가"
"그래, 습격당한 두 마을을 기준으로 영역을 설정하면, 그 안에 들어가는 마을들이 하나 둘이 아니야. 그리고 그 경우 보통은 순차적으로 공격을 이어서 하나씩 영역 안에서 배제했겠지. 그리고 그 경우는 이렇게 퇴치가 먼저가 아니라 짐작되는 영역 안에서 사람들부터 퇴거시켰겠지"
"하기야... 그럼 전자는 아니겠고 후자는?"
"그건 더 이상하지. 그렇다면 녀석들의 목적은 식량이 분명한데, 마을의 식량창고는 물론이고 각 집안에 조금씩 있는 식량에 손도대지 않았더군"
"그럼 식량도 놈들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네"
"음, 아마도 자네가 말했던 그 외가 녀석들의 목적이라는 이야기가 되겠지"
"그렇다는건... 이놈들이 지능이 있다는 이야기네"
한스의 결론에 월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와 같은 결론을 이미 내렸기 때문이다.
"참, 한가지 더"
"응?"
"의외로 알아차리지 못한거 같네만... 젊은 여성들의 시체는 거의 안보이더군"
눈살을 찌푸린 그의 말에 한스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곧 그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야기는..."
"소문의 그것이 아마 사실이었던 모양이네"
고블린들을 멸종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고블린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은 모르지만, 그들을 안다면 절로 알게되는 이야기다.
"타종족. 그들과 크기가 비슷하고 이족보행을 한다면 새끼를 낳게 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고블린들 고유의 특성"
"그리고 그 피해자들의 분노로 결국 고블린들은 멸종 직전까지 몰렸었지. 아니 정확히는 멸종했었다고 해야하나?"
"이번에 나타나기 전까지 완전히 멸종된지 알았으니 말이지. 하기야 이번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랜시간 그 누구의 눈에도 띄이지 않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겠지"
"어쩌면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월터도 한스의 생각에는 동의했다. 아마 그들의 짐작이 맞다면, 지금 이 자리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살아있기야 하겠지만 그들의 정신이 온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초췌한 안색으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헤론은 말이 끝나가는 듯 하자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안전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근거지만 조사하고 빠져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들어야 하는지는 이제 그들이 결정해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의 방침은 바뀌지 않아"
한스는 단호하게 이야기했고, 그의 대답에 헤론도 월터도 놀라야만했다.
"구하지 않겠다고?"
"그거 진심인가?"
둘이 나무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그들을 이끌던 리더라는 것을 표출하듯이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진심이야. 우리가 그렇게 무리 할 수는 없어"
"어째서?"
"애초에 숫자부터 중과부적이야. 마을 두개를 완전히 궤멸시킨 놈들이야. 그런데 그런 놈들을 우리가 이길 수 있겠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서 알려주는거야. 그리고 애초부터 그게 우리의 임무였고"
잠시 말을 끊은 그는 호흡을 크게 한번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놈들의 본거지를 알면 성주께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으시겠지. 애초부터 놈들을 토벌할 전력은 있었을 거야. 다만 지금 같은 시기에 인력을 낭비 할 수 없으니 고블린들의 은신처를 찾으려는 시도를 우리에게 밀은거겠지. 찾을수만 있으면 토벌을 진행할거로 생각되"
단호한 그의 말에 여전히 마음에 들지는 않은것 같지만 수긍한 것인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