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탈주자들
"위장마을?"
"그러니까... 가짜 마을로 우리를 추적할 인간들을 속이자고?"
드란의 이야기는 쿠알론과 트레이도 한번쯤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런데 그 위장 마을을 기점으로, 우리 본거지를 추적해올수 있지 않나?"
그리고 이들이 위장 마을을 만들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곳이 온전한 본거지라고 짐작된다면 그걸로 좋다. 그럼 다음의 기회가 있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곳을 기점으로 고블린들의 본거지가 발각된다면, 그보다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낸 방도가, 그들을 전멸로 이끈다면 그것은 본말전도 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위장 마을이라고 했지만 하나의 거점을 만드는 겁니다. 지하로 통하는 통로야 숨기는게 당연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마을을 통치하는 녀석이 하나정도 기세등등하게 있는게 좋을겁니다. 그러면 인간들에게 발각된다고 하더라도 녀석이 족장이니 마을을 완전히 토벌했다고 판단할거란게 제 생각입니다"
딱딱한 표정과 딱딱한 어투로 말을 잇는 드란의 모습은 매우 사무적이었지만, 그의 형들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고블린은 신경쓰지 않고 그의 말에 고민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어차피 성장이 간절한 녀석들이야 최하급이나, 하급 정도 되는 녀석들 뿐이고... 그럼 족장으로는 적당히 중급 녀석 하나 박아놓으면 되겠군"
그들 부족에서 셋을 제외하고는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급 고블린이었지만, 쿠알론은 별 고민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필요성을 느꼈다기 보다는, 그저 무감각하게 일단 해보자 하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결정을 내린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위장용의 마을을 만들자는 셋의 결정은, 바로 다음날부터 실천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시작된 것은 다름아닌 지하에 새로운 굴을 뚫는 것이었다. 마을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본거지와는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진 장소에다가 만들려는 의도였다.
중간 거점들을 두개 정도 만들면서 계속해서 굴을 파던 그들은 상당한 거리를 움직였다. 손으로 굴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니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온종일 한계까지 끌어서 능력을 몇일 째 사용한 다섯 고블린들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굴을 판 것은 이전 도주에 사용하던 굴을 제외하면 처음이라면서 거의 기절직전까지 가있었다.
중간 중간 바깥으로 빠져나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인간들이 있는 장소와 근접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까지 했으니 그들이 기절하지 않은게 기적이라고 할 만 했다.
수일에 걸쳐서 그들은 본래 있던 장소에서, 인간들의 성 두개는 지나친 거리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이전의 경험을 살려서, 수원이 근처에 있는 장소이면서 최대한 산 속에 있는 장소를 찾아서 마을을 조성했다.
아무래도 지하에 만들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기에 여러모로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성장이 필요한 고블린들이 머물기에 충분한 마을이 만들어졌다.
마을이 만들어지자 고블린들은 자리를 옮겨갔다. 성장의 기회이기 때문인가. 여기저기서 자기도 가고싶다고 자원해 왔지만, 실제로 그곳에 가는 것은 전체인원의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인원제한에서 반발을 예상했지만, 여기서 또 위장 마을을 만들기를 결정한 셋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인원제한을 만든 가장 큰 이유인, 최하급 고블린들이 그들의 생각보다도 의욕이 없어 억지로 보내는 일이 생겼는가 하면, 족장의 역할로 단 한개체만 보낼 예정이었던 중급 고블린들이 나서서 서로가 가겠다고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일이었다.
결국 성장을 완료하면 교대하기로 결정하고, 성장에 가장 가까운 이들을 위주로 보내기로 결정되었다. 다만 상급까지 성장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어, 될지 안될지는 모르기 때문에 기한을 두고 교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마을은 안정되었고, 고블린들은 당초의 목적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푸확-
"커헉!"
"캬갹, 죽여라!"
"꺄, 꺄아악!"
"암컷들은 포획해라!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가는 놈들도 없게 해야 한다! 캬아앗!"
퍼억!
한 마을. 고블린들이 날뛰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마을이 아님을 알려주듯 평균적으로 그들 보다 월등히 큰 문과 집의 크기, 그리고 지금의 고블린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수레와 쟁기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곳에서 본래 마을의 주민이었던 인간들을 사냥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고블린들은 젊은, 가임기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포획하고 있었으며, 그들에 대항하는 남성들을 하나같이 머리를 부수거나 베고, 손에 쥔 칼로 복부를 쑤시면서 그 목숨을 빼앗고 있었다.
고블린들은 일상을 겪듯이 태연한 모습으로 무기를 휘두르지만, 인간들은 전투에 대해서 처음이거나 경험이 적은지 무기를 내리치다가도 움찔하면서 멈칫거린다. 어떻게든 하나를 물리치더라도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속에서 게워내듯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토해내는 인간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고블린들은 인간들을 더욱 더 몰아치고, 그들에게 저항하지 못하도록 그 목숨을 뺴앗는데 가속을 붙여갔다. 하지만 하나의 마을, 그것도 수백은 모여있는 이곳에 전투를 모르는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 열명, 소수였지만 전투에 대해서 익숙한 듯, 다른 인간들과 달리 제대로 고블린들에게 대적했다.
"키...킷!"
대부분이 최하급의 고블린들. 그에 반면 인간들은 하급에 버금가는 무력을 지닌 듯, 선두에 섰던 고블린들 대부분이 제대로된 대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나가고 있었다.
도주하던 인간들은 고블린들을 도륙하는 그들의 모습에 희망을 가지는 듯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부하들이 제대로 당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하급 고블린들이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일회용 방패와 같아진 부하들을 이용해서 뒤에서 습격하고, 일부러 끌어와서 방패로 써먹고는 무기를 못쓰는 일순간에 습격을 가해 고블린들을 헤치는 이들을 하나 씩 정리해 갔다.
마을에서 그나마 전투가 가능한 이들이 그렇게 생각보다도 허무하게 나가떨어지자, 그나마 살아있던 이들도 의욕을 잃었다. 결국 남은 이들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남성이라면 그 목을 쳐냈고, 여성이라면 포박해 허리춤에 매고 다니던 가죽 끈으로 손발을 묶어 제압했다.
그렇게 하나의 마을이 사라졌고, 이번 전투에 참가한 고블린들 중 둘이 하급으로 성장했으니 고블린들 입장에서는 첫 습격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포로로 잡은 소수의 인간 여성들을 붙잡은 고블린들은 그들을 이끌고 새롭게 지어진 마을로 돌아갔고, 따로 지어진 땅굴의 안으로 그들을 집어넣었다.
습격을 끝내고 돌아온 고블린들을 맞이하는 것은 새롭게 지어진 마을 뿐이 아니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수장격인 세 고블린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졌는지, 인간들을 얼마나 잡아들였는지, 그리고 인간들을 죽이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효용은 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이었다.
"좋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쿠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 둘뿐인 진화였지만, 이미 그들은 성장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전 부족을 떠나기 전, 그들의 아버지 루프스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진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이해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마을에서부터 빠져나오는 동안 충분히 많은 수의 몬스터들을 죽이기도 했으며, 우연이고 큰 피해없이 도주에 성공했다지만, 위험한 전투를 경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 중 진화하는 이들은 나오지 않았고, 그것은 그들의 부족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이었는지를 암시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것 보다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론을 보여주듯이 보란듯이 두 고블린이 성장을 이루어냈다. 게다가 이번이 처음임을 고려해 전투 경험자와 비경험자를 반반 섞었던 것을 떠올리면, 비경험자에 속하는 둘이 진화한 것은 그만큼 인간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그들을 성장시켜 주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객체차가 심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은 셋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첫 습격은 고블린들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면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