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준비
오크들과의 전투가 끝나고, 루프스는 광산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던 동족들과 합류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든 고블린들을 이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크들은 모두 물리쳤지만, 아직 그들의 적이 영역 내부에 남아있었다. 다름아닌 코볼트들이었다.
"설마 우리가 이길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그랬으면 섣불리 그런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겠지요"
루프스의 옆에는 그와 합류한 프리트가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들은 현재 가장 가까운 장소에 위치한 코볼트 마을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
코볼트들의 마을은 영역 내에서도 서남쪽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마을에 비해서 많이 좁은 공간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일만은 넘는 수의 코볼트들이 각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전체적인 수가 수천에서 십만에 달할정도로 늘었던 점을 생각하면 수백에서 일만에 가까운 수를 채웠으니, 제법 빠른 번식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코볼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출진하는 고블린들의 수는 약 삼천에 달한다. 이들 중 약 일천정도는 전투가 끝난 뒤를 보조해줄 최하급과 하급의 고블린들이고, 나머지 이천중 구할은 중급이며 그 외가 상급과 최상급의 인원들이다.
얼마 전이었다면 이들의 전력은 루프스를 제외하고는 최상급 고블린이 최대의 전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직속 부하인 세 고블린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최상급에서도 한단계 올라서서 루프스와 동급의 존재로서 성장했다.
게다가 셋은 그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들, 그들의 성장은 그의 지배를 더욱 더 공고히 다져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그들 사이로 널리 퍼트렸었다면 말이다.
세 고블린이 성장한 사실은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 딱히 코볼트들의 배신을 상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오크들을 물리칠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가 되었다. 오크들의 습격이 있고, 루프스는 그들 용병대에 의한 습격이 있을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야,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던것을 들었으니 모를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는 일단 자신의 성장보다는 그의 밑에 있는 세 고블린들의 성장을 우선시 했다. 일부러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 멀리 강자가 있는 곳 까지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결국 세 고블린이 성장했고, 그렇기 때문에 전력을 분산해서 전체적인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코볼트들이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루프스는 코볼트가 아니더라도 오크들이 미리 정보를 수집하고 올거라 생각했다. 그는 이 군락지의 바깥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그들 부족을 조사하는 것쯤이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만일 셋의 성장을 부족에 대외적으로 알렸다면, 사기는 올랐겠지만 부족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어디서 정보가 세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곧 루프스와 고블린들이 상대해야하는 적들의 전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코볼트 놈들에게만 정보를 얻어가다니, 어찌보면 운이 좋은 편이군"
그는 실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코볼트들과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그렇게 손쉽게 배신할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력을 늘인다고 녀석들을 받아준게 잘못이었던거란 생각이 듭니다"
"흥, 그런 패배자 놈들 족장이 어째서 그런놈들을 살려뒀는지 난 이해를 못하겠다니까요"
프리트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고, 파인피는 글르 향해서 코볼트들을 어째서 받아준거냐고 투덜거렸다.
"후우... 기껏 살려줬더니 돌아온건 이런 배신이군. 그런데 우리가 감쪽같이 몰랐다니"
"그들끼리 마을을 만들도록 놔둔것이 실수였던게 아닐겠습니까?"
"그랬다면, 우리는 내부에서 나타난 적들과 싸워야 했겠지. 이번처럼 손쉽게 적들을 물리치지 못했을 거야"
그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그들은 코볼트 마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셋도, 그들이 이끌던 고블린들도 아무말 없이 묵묵히 섰다. 코 앞에 적을 두고서 더 이상의 대화는 전투에 집중을 방해할 뿐이기 때문이다.
"가지"
루프스는 그런 고블린들을 한번 슥 훑어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전진했고, 그의 뒤를 따라서 그의 부하들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무렵.
코볼트들도 그들의 마을에 근접한 고블린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미 고블린들은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저들과 결별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인지 그들의 반응은 특이했다.
"커...컹?!"
"컹, 어째서 고블린들이?!"
놀란 그들이 단편적으로 흘리는 말 가지고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마을을 통치하는 것은 그를 배신한 코볼트들 중 하나. 자연스럽게 마을 자체도 적이라고 판단한 루프스는 차갑게 그를 따라온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쓸어버려!"
캭! 캬갹- 캭 캭- 캬아아아아악
그의 한마디로 고블린들은 광분하듯이 코볼트들의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코볼트 마을의 근방에는 고블린 마을과 같이 함정이 깔려 있었지만, 그 설치자는 고블린들이었고 당연히 그들은 어디에 어떤 함정이 깔려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딱히 함정을 까는 재주가 없는 코볼트들로서는 추가적으로 함정을 설치하지도 않아, 고블린들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빠르게 접근한 그들은 곧 세워져있는 방벽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코볼트들도 정신이 들었는지 벽을 타고 기어올라오는 고블린들을 밀어냈다. 마치 서쪽 마을에서 벌어지던 전투와 같은 양상이었다.
"방금까지 싸우던 녀석들이랑 역할만 바뀐건가. 크흐흐흐"
루프스는 낮게 웃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뒤에서 보기만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프리트와 파인피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코볼트들의 마을이 완전히 초토화되는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딱히 성장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보유한 전력은 보잘것이 없었다. 마을의 촌장을 필두로 약 둘 정도가 상급에 도달했지만 그 뿐이었다.
고블린들에게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쓸려나갔으며, 그들의 촌장인 한 코볼트는 몇몇 고블린들의 손에 숲속 마을을 향해서 압송당할 뿐이었다.
나머지 두 마을의 결말도 그들이 처음 방문한 곳과 그리 다르지 않은 끝을 걸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당황했고, 그들을 막으려다가 실패했다.
다만 마지막 마을에서는 다른 두 곳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초반까지 저항하던것까지는 같았지만, 그 전투가 끝나자 크링크가 일단의 코볼트들을 데리고 그를 향해 다가간 것이다.
"부디...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쿵 쿵
그는 자신의 이마가 찢어지던지 말던지 상관없다는 듯이 강하게 바닥에 찧었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루프스의 눈빛은 그저 냉랭할 뿐이었다.
그는 크링크도 마찬가지로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그에게서는 배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도 바로 얼마전까지의 코볼트들의 태도를 생각해볼 때 그다지 믿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코볼트들의 존재 자체가 고블린들의 결속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떠올린다. 그러니 그가 다가와 저렇게 용서를 구함에도 그는 그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머리를 바닥에 찧는 크링크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의 뒤로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떠는 코볼트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이 어린 녀석들로, 아마 이 마을에서 태어난 이들로 보였다.
휙 휙
아직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그는 일단 그들을 모두 포박해서 숲속 마을을 향해 가도록 지시했다.
"제발! 제- 발- 용서를!"
그렇게 발길을 돌리는 와중에도 그의 귓가로는 크링크가 외치는 용서를 바라는 외침이 계속해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