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준비
서쪽 마을을 공격하는 오크들을 보자, 루프스와 마인은 무리를 이끄는 몸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크들도 강행군을 펼친듯 온 몸이 먼지 투성이에 영 성치않아 보였다.
'어쩐지, 따라잡지를 못한다 했다!'
오크들을 향해 접근하면서 루프스는 이를 갈았다. 놈들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미 예전에 그들을 포착했어야 했는데 어쩐지 보이지가 않았던 이유가 판명난 것이다.
"놈들을 막아라!"
루프스는 달리면서 부하 고블린들에게 지시했다. 이미 빠르게 달려오면서 지칠대로 지친 그들이었지만, 동족들의 마을이 습격받는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 그들의 몸을 움직였다.
마을의 허술해 보이는 방벽을 공격하던 오크들은 뒤쪽에서 접근하는 고블린들을 눈치챘다. 오크들을 이끌던 로투스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오크들을 절반을 뚝 떼서 후방을 방어하도록 지시했다.
마을의 방벽으로부터 물러난 오크들은 로투스의 지시에 따라 후방으로 이동했다. 과연, 그가 절반이나 후방으로 보낸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을 향해서 몰려오는 고블린들의 수가 만만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쉬지않고 달려든 고블린들은 오크들을 공격해 들어갔다.
"캬앗!"
"으오오오!"
두 종족은 서로를 향해서 무기를 휘둘렀고, 곧 정면으로 부딪혔다.
오크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대체로 대검과 거대한 외날 도끼로,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데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고블린들은 아예 무구를 들고 있지 않거나, 대체로 소형 무구만을 들고있을 뿐이었다. 맨손의 고블린들은 마인의 휘하에 있기 때문인지, 그를 따라서 무구를 들지 않고 적을 상대하던것이 그대로 정착했기 때문이었다. 소형 무구의 경우는 루프스가 훈련에 힘쓰는 고블린들을 보면서, 그들의 체형에 맞춰서 무기를 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당장 다른 고블린들도 그리 큰 무구를 들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있다고 해보았자 기병들이나, 파인피 정도 뿐이었다. 이전에는 종종 큰 무기를 들고 설치던 이들이 많았지만, 그런 이들은 대체로 성장의 과정에서 오히려 무기에 휘둘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점점 커다란 무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루프스도 갓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에게도 소형 무구를 쥐도록 방침을 바꾸면서 그렇게 바뀌게 된 것이다.
커다란 덩치의 오크가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비교적 작은 키의 고블린들은 손에 들린 무기를 조심스레 움직이면서 오크들의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빠르게 달려든 고블린들은 오크들이 휘두르는 무기를 피해서 그들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들이 지닌 무기를 휘둘렀다.
푹-
단검과 소검을 들고 있는 고블린들은 무기를 그들의 복부나 심장 아니면 목울대를 향해서 찔러넣었다.
퍽- 퍼퍽
마인의 부하들은 그들과 달리 접근해서 먼저 무기를 들고 있는 손목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고, 오크들이 통증으로 무기를 놓치는 순간을 노려서 그들의 몸 곳곳으로 강타를 이어갔다.
"꾸욱!"
고블린들이 초근접으로 전투를 이끌어가자, 초반 오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고블린들을 향해 휘두르는 그들의 무기는 고블린들의 민첩성으로 간혹 생채기나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기는 했지만, 대체로 무사히 그들의 무기를 회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도 강행군으로 지치긴 마찬가지였으나, 그렇지 않아도 뒤늦게 출발해서 그들을 따라잡으려던 고블린들의 강행군이 더욱 강도가 높았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고블린들이 오크들보다 더욱 지친 상태라는 뜻이었다.
오크들을 밀어붙이면서 우위를 잡아가던 고블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역공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친 그들의 육신의 문제였다. 강행군으로 녹초에 가까워진 육체로 그들의 몇배에 달하는 오크들을 찌르고 때려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친 그들의 몸은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것이다.
피할수 있었음에도, 순간적인 반응이 늦어져 오크의 손에 목이 달아난 경우나 일순 늦어진 그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반격을 날리는 경우가 생겨나면서, 고블린들의 피해가 누적되어갔다.
점차 피해는 늘어가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오크들이 승기를 잡았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정도의 고블린과 오크들이 희생되었을까. 어느새 서로 전력이 비슷해진 오크와 고블린들은 서로 견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자리에 있는 오크를 지휘하는, 다른 오크들과는 그 복장에서부터 차이가 느껴지는 이가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러고보니, 이 놈들을 이끌고 온 녀석들이?!'
그제서야 그는 자신들과 눈 앞의 고블린들이 어째서 비등한 전력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지를 의심 할 수 있었다.
로투스가 그들을 후방을 지키라는 지시를 하면서 뒤로 돌렸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길거라 생각하고 보낸 것이 아니었다. 양측이 모두 지쳐있는 상태여서 서로 피해가 났지만, 오크들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그 사실은 증명된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전체적인 수는 오크들이 더욱 많았다. 하나의 부대가 약 이천이 되는 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수는 일전 그룬돌이 이끌고 왔던 오크 부족의 부족원들의 수와 비등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수였다.
하지만 수가 많은 오크들에 비해서 이곳에 도달한 고블린들의 수는 반절인 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블린들의 전력이 오크들에 비해서 밀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보다 상위에 올라선 이들의 수가 고블린 측이 더 많았던 것이다.
오크들도 막상 부딪히고 나서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당장 전투를 눈앞에 두고 무작정 놀라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배의 수 차이라지만, 상급의 전력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는 두 종족이 이 때까지 버티던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상급 이상의 전력은 이 군락지에서 뿐만이 아닌, 오히려 외부에서는 더욱 더 중요한 주력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의 최상급과 유일에 해당하는 몬스터들과 그에 근접한 경지에 올라선 인간들은, 조커로서 취급될 정도니 이들의 수가 전투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는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비등하게 싸웠다는건!'
오크 지휘자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는 눈 앞의 적 때문에 눈을 돌릴 생각도 못했지만, 지금 그는 확인하지 않고서는 베길 수 없는 충동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것은 과연 그의 예상에 딱 들어맞는 광경이었다.
"캬앗!"
"끄어어어!"
서걱- 쿵! 와아아아아!
여전히 방벽 위의 고블린들은 오크들을 향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궁병들이 화살을 날리며, 따로 준비된 장창을 이용해서 올라오는 이들을 향해서 찔러 넣으면서 막아섰다.
여기까지는 그가 후방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보았던 광경과는 일치했다. 하지만 그 이외의 광경은 그가 보지 못한, 고블린들이 도착하고 나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오크들의 후방에는 어느새 다가온 고블린들이 뒷치기를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선두에는 고블린들을 이끌고 왔던 루프스와 마인이 자리잡고, 가장 많은 오크들을 죽이고 있었다.
"이... 이런!"
그의 목소리는 주위의 오크들에게로 전해졌고, 저도 모르게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고는 그들도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그리고 그들이 보인 틈을 정면에서 대치중인 고블린들은 놓치지 않았다.
뒷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깜짝 놀란 오크들이 잠시 움찔하면서 움직임을 멈춘 사이, 고블린들은 좀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오크들의 틈 사이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