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준비
두 지휘관들의 싸움도, 어떻게 수습이 되어가는듯 보였던 후방의 오크들의 전투도 그 끝이 보일 무렵. 선두의 싸움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선두만큼은 기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몰려있는 만큼 수가 줄어들어있는 오크들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오크들은 고블린들의 포위망으로 하나씩 목숨을 잃었으며, 간혹 튀듯이 고블린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가는 이들은, 대기 중이던 그룬이 쏜 화살에 의해서 그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모든 전투가 끝났을 때는,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처들어왔던, 그리고 광산까지 이끌려왔던 이들의 전멸로 끝이났다.
"이제, 족장님한테서 오는 연락만 기다리면 되겠군"
모든 전투가 끝나고 대부분의 고블린들이 터를 정리하는 그 때, 문듯 떠오른 프리트가 족장인 루프스가 있다고 짐작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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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들, 특히나 루칸이 적들이 자신들을 유인한다고 짐작하던 그 때. 그는 로투스에게 그와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다른 지역을 치도록 제안을 했었다. 로투스는 떨떠름한 기색이 있었지만 그의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떠난 일이 있었다.
그 뒤 로투스와 그가 이끄는 이들을 제외한 이들은 그들의 유인에 어울렸다가 전멸을 면치 못했다.
그리고 오크들 대부분이 전멸하던 그 시각, 로투스는 그가 노리던 서쪽 마을에 근접해 있었다.
서쪽 마을은 가장 최근에 생긴 마을이고, 현재 오크들을 유인한 함정에 매복한 라둔이 이끌던 마을이었다. 딱히 로투스가 그의 부재를 알고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지도자가 부재하는 마을을 공격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들이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면의 이야기일지라도.
오크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고블린들은 그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흔적을 손쉽게 파악한 것이다.
도주중이던 마인의 무리가 조잡한 함정들을 만들었고, 거기에는 단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는것에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일정 지역에서는 함정들을 골고루 뿌려놓으면서 그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 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그들이 지닌 진짜 의도였다. 오크들에게 근접해서 다닐수는 없기에 이미 지나간 자리를, 소수의 고블린들이 확인하면서 그들의 이동 경로를 확인한 것이다.
오크들도 함정이 여러 장소에 배치되었단걸 알았지만, 어디로 가든 발목을 잡겠다는 의미로 해석했지, 설마하니 자신들의 행동과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게다가 점점 근접해가는듯 하자 그들의 마음도 급해지면서, 자신들이 지나갈 경로에 있는 함정만을 해체한 것이 더욱 고블린들의 의도대로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갈라진 로투스의 부대는 함정에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고, 그것을 오크들을 뒤따라가던 고블린 후속부대가 발견한 것이다.
애초부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만 했던 그들은 이 소식을 최대한 가까운 부대에 전달했고, 마침 그 근처에 도착해있던 루프스가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게 빠져나간 오크들의 뒤를 쫓았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그 무렵, 라둔과 마인이 같이 있었고, 루프스는 그 때 둘을 교대시켜 오크들의 유인은 라둔에게 그리고 마인은 자신을 따라오도록 지시했다.
기동력이 빠른 라둔이 그들을 기습하기에 더욱 적격이며, 이렇다 할 원거리 공격수단을 보유하지 못했으며 동시에 기동성도 떨어지는 그들은 이번 기습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오크 습격에서 떨어진 마인은 지시대로 루프스와 합류했다. 전투에서 빠졌다는데서 그의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무언가 생각하는게 있을거라 믿고 별말없이 그와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본래는 루프스도, 그리고 비록 습격에는 어울리지 않더라도 전력이 되니 마인과 그의 부대도 습격에 참가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오크 부대가 떨어져 나갔음을 알았고, 둘은 그들을 쫓기 위해서 습격부대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이 가는 길에는 딱히 함저을 깔면서 도망칠 이들도 없었으며, 이미 깔려있는 함정들도 드문드문이니, 정확히 그들의 경로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은 고블린들의 영역이다. 고블린들이 식량을 얻기위한 사냥을 하고, 새로 밭에서 가꿀 채집물들을 찾던 그 장소였다.
이곳에 자리잡는 동안 수십 수백번도 넘게, 특히나 루프스와 마인은 적들의 침입을 막기위해서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니 더욱더 많이 돌아다니던, 그런 장소였다.
이곳의 풍경은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깊게 틀어박혀 있었으며, 천에 달하는 오크들의 움직임으로 바뀌게 될 풍경들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정확한 추적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방향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나 이미 루프스는 코볼트들의 배신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그런 반응은 있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대책은 이미 따로 세우고 있으니, 걱정이랄 것은 없었다.
코볼트들은 적어도 오크들에게 고블린들의 거점에 대한 정보들은 넘겼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어디까지 정보를 전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를 진행했을까, 결국 루프스와 마인은 그들의 목적지에 대해서 알아 낼 수 있었다.
"서쪽 마을이라..."
"가장 최근에 생긴 마을이군요. 분명히 라둔 녀석이 담당하던 곳이지요?"
적들의 목적지를 알게 되자, 루프스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가장 최근에 지어진 만큼, 아직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서둘러야겠군"
"예. 전투가 시작된다면,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겁니다"
그에 대해서는 마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특히나 북쪽 마을을 다스린 경험이 있는 그가 그에 대해서 짐작하지 못할리가 없었다.
"빠르게 가지"
그렇게 말한 루프스는 잠시 멈춰섰던 무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부터 서쪽 마을까지는 이렇다할 험지도,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곳에 조성된 숲에 만들어진 아직 조잡하고 소소한 함정만이 오크들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막아 주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서쪽 마을로 들어서는 숲의 초입부에 도착하게 되었다.
과연 숲의 초입부는 그들의 예상대로 제법 많은 수의 인원들이 안으로 들어선 듯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흔적을 발견하자 루프스가 이끄는 무리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미 지금까지의 강행군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휴식을 취할 시간이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초입에서 흔적이 발견되었고, 이 흔적들이 생긴지 얼마 안된듯해 보인다지만 이곳에서 마을까지도 멀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지쳐서 못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늦어서 못도와주는 경우가 발생 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루프스와 마인이 이끄는 무리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늦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은, 지친 몸임에도 더욱더 내딛는 발의 속도가 빨라졌다.
빠르게 걷는 그들은 숲속에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마치 오크들이 내뿜는 존재감을 보듯이 이리저리 파헤쳐지고 파훼된 함정이었던 것들의 흔적과, 더 이상 함정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잔해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 흔적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마을을 가열차게 공격하고 있는 오크들의 무리를 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