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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98화 (198/374)

198화

준비

오크와 고블린 두 종족의 지휘관과 부지휘관이 서로를 적대하면서 발이 묶여 있는 그 때, 아직 수습되지 못한 오크들과 고블린들의 전투는 이어지고 있었다.

전열을 지켰어야 하는, 중갑으로 무장하고 방패를 들고 있던 오크들은 반절 이상이 후방으로 빠져나가, 새로운 전열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는 절반의 오크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고블린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두꺼운 갑주와 방패는 그들이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상처를 입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만큼 체력을 빼앗아갔다. 고블린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격필살이 아닌, 차륜전을 통해 상대방의 체력을 빼앗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기본적으로 민첩한 몸이면서, 무수한 나무가 솟아있는 숲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 일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한 고블린은 오크의 공격이 다가오자 후방의 나무를 향해서 뛰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발판삼아 다른 나무로 날아가고 다시 뛰어서, 오크의 후방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오크에 집중하지 않았다. 기회가 생긴다면 공격을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무를 타고 이리저리 나다니며 그 중 무방비한 상태의 오크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루칸과 덴, 두 오크가 프리트와 파인피에 의해서 발목이 잡힌 이 순간에도 진행되었고, 이것은 곧 오크들의 수를 줄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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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와 고블린들도, 그리고 덴과 파인피도 격렬하게 싸울 때, 프리트와 루칸의 싸움은 비교적 조용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프리트가 그저 상대방을 잡아두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며, 루칸의 공격으로 인한 충격을 바닥이 흡수하면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칸의 상체는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였지만, 발이 묶여 이동을 못하고, 그렇다고 거리가 살짝 떨어져 있는 프리트를 공격하지도 못했다. 그의 무기인 대검은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으로 바닥에 박혀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결국 그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지금과 같이 상대방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에게도 아주 나쁜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천천히 바닥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고, 지금 그의 무릎은 바닥에 잠겨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그그긍

어느순간 부터 대검을 손에 쥐고 묵묵히 서있기만 하던 그. 그에 프리트가 이상함을 느낄 무렵, 바닥에서부터 진동이 시작되었다.

프리트는 자신이 지배하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루칸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의 주변까지 퍼져있던 늪의 영역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루칸의 발 밑. 여전히 늪으로서 그를 빨아들이고 있었지만, 그 흡입력은 크게 줄었으며 끈적히 질척거리던 늪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굳어진 바닥은 여전히 그의 다리를 구속하고 있었지만, 그리 유효하지는 않았다.

"흡!"

푸확

다리에 힘을 주자 돌가루가 휘날리고, 진흙인지 녹은 돌덩이들인지 알 수 없는 질척거리는 회색빛의 젤과 같은 물체가 공중으로 튀어오른다. 그리고 여전히 밑이 불안정한 발판이지만, 그 위쪽 만큼은 온전히 굳은 오크 하나가 버티고 서는데는 충분했다.

드디어 두 발이 자유로워진 그는 곧장 프리트를 향해서 달려들것만 같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를 노려보면서 루칸은 자신이 지닌 능력을 전력을 다해서 사용해야만 했다.

그때즈음, 프리트 또한 그가 지닌 능력에 대해서 충분히 눈치챌수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밀린적이 없었던, 아니 피하면 피했지, 걸렸음에도 그의 의지가 아닌 상태로 풀린적이 없었던 늪지대가 일시적이나마 풀렸을 때 눈치챌 수 밖에 없었다.

'땅을 직접 다루는건가!'

굳이 따지자면 그의 능력의 상위호환으로도 보이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다루는 힘이 생각보다는 약하군. 그 범용성 때문인가?'

늪지대를 굳게 만들었지만, 그가 느낀바에 의하면 오크 대장, 루칸의 능력은 직접 땅을 변형하여 뾰족한 침으로 만들어 그를 찌를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의 발 밑의 땅에서는 그런 기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땅을 자유자제로 바꿀 수 있는 능력. 다른 이였다면 성가셨겠지만, 그에게는 상대하기 손쉬운 능력이었다.

프리트의 늪지화를, 억지로 땅으로 되돌려 놓아서 탈출했다지만 아직 프리트가 우위에 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늪지대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의 늪지가 점점 영역을 넓히려고 할 때, 루칸의 능력은 간신히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아서는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그의 다리 밑에서 거대한 송곳을 솟구치게 하려하면, 공격은 무효되고 그의 발은 다시 바닥으로 스며들려하고 있었다.

프리트는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이유를 집중도의 차이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루칸은 그랬던 적이 없는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가 다루는 대지가 늪지로 바뀌는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집중도, 땅을 조종하는 능력의 밀도에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루칸은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그제야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땅을 조종해 그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것이 소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딛는 땅만을 굳건하게 만들어 발판으로서 기능하도록 하고 그 자신은 정면에서 땅을 늪지로 만들고 있는 프리트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와 프리트 사이의 일직선으로 굳어있던 오크들은 완전히 땅에 발이 박혔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부웅-

루칸의 대검이 휘둘러졌고, 그 공격은 일순 프리트의 목에 가까이 근접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프리트도 상대가 직접 공격하는데 여전히 땅을 늪지로 만드는데만 집중할리가 없었다.

촤악-

루칸의 대검은 프리트의 목을 베었다.

후두둑

목이 잘려 쓰러지는 프리트였던 신체는 쓰러졌다. 하지만 곧 루칸은 황급히 뒤로 뛰어서 물러나야만 했다.

"다리가...!"

늪지에 빨려들어갔을 때였는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이었는지, 자각하고 보니 그의 다리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일견 강철로 이루어진 그리브와 사바튼으로 감싸여져 멀쩡해 보였지만, 그 내부는 그렇지 못했다.

순간 인식하지 못해 늪지에 빠졌을 때, 그리고 간신히 발을 빼내는데 성공했을 때, 그의 정신이 다른데로 집중되어있다보니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발은 겉부분에서부터 천천히 썩어들고 있었다.

황급히 물러나면서 다리의 이상을 알아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뛴 자리는 눈에 띄게 파동을 그려내면서 그 자리가 굳건한 땅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그가 목을 베었던 프리트의 시체를 확인했고, 그것이 그가 상대하던 자의 본체가 아님을 그제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처음부터 프리트는 그의 앞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루칸이 마주했던것은 늪으로 만들어진 그의 분신, 프리트의 본체는 고블린의 형상이 아닌 이미 늪으로 녹아내려, 늪 자체가 그였던 것이다.

그리고 루칸의 다리가 부패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가 늪지로 변하면서 늪지에 스콘드가 다루는 시체에서 뽑아낸 시독을 뿌려둔 것이다. 부패시키는 성질이 있는 시독이 녹아내린 그의 늪지에 루칸이 발을 내딛느 순간부터 이미 갑주의 틈새로 들어간 독이 그를 부패시킨 것이다.

절뚝이며 일어났지만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에게 시간만 있다면 그의 발과 다리를 침식한 시독을 해독하고 회복하는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을 노리는 적과 싸우는 상태. 당연히 회복은 커녕, 해독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다시 프리트의 늪지에 다시 발부터 집어삼켜지기 시작했고, 끝내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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