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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96화 (196/374)

196화

준비

"이런 멍청한!"

속수무책으로 밀리기 시작하는 부하들을 보면서 루칸은 이를 갈았다. 만만치 않을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코볼트들이 제공한 정보들도 있었으며, 이들을 먼저 처리하려던 그룬돌이 대패해서 홀로 몸을 빼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에게 고블린들을 상대하는게 그리 쉽지는 않을거란 예상을 하게 만든 계기는 그룬돌의 패배였다. 사실 그룬돌은 처음부터 고블린들을 치기 위해서 그 자리에 자리잡은것은 아니었다. 이후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실질적으로 받은 임무는 오크들의 수를 보충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룬돌은 군락지에서 일어난 이변으로 피신했던 녀석으로, 우연히 그들 용병대를 만나 투신한 것이다. 그리고 슬슬 안정을 찾아가는 듯 보이자 과거의 부족원들을 수습하라고 돌려보낸 것이었다. 다만, 용병대에서 식량을 공급해준다고 하더라도 각종 몬스터들의 방해를 뚫고 전해주는게 쉽지 않았고, 오크들은 자력으로 식량을 수급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고블린들과의 전투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살피던 것은 마침 고블린들을 처리하려고 진입 할 준비를 하던 루칸 뿐이었다. 루칸은 그러면서 슬쩍 그들을 건드려보길 원했고, 마침 그 부근을 공격해보겠다는 녀석들이 나타나 묵인해준것이 이전 고블린들의 습격에 대한 내막이었다.

결론은 그룬돌의 부족 전체에까지 번졌고, 결국 살아남아 돌아간것은 그 뿐이었다.

연락을 주고 받던 루칸은 그가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온것에 놀라워했다. 특히나 한쪽 팔까지 잘려나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부터 고블린과 같은 이들은 그들 정도의 강자를 배출해내기가 보통 어려운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오크들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그들보다 한단계 높으며,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번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니 유일급의 강자가 소수나마 있으며, 그보다 상위의 존재가 셋이나 있는 막강한 종족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 중에서 그런 유일급의 강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제법 어려운 상대가 될것은 확실하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고블린이라는 종족 자체에 별다른 강자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과거를 확인해보아도 고블린들 중에서 그와 같은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하나같이 직속 부하들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직접 고블린들을 까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바로 밑의 최상급에 달한 이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상급과 중급이 심심치않게 보이며, 대부분이 하급으로 한단계는 올라선 이들이 확인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위에서부터 뛰어들어,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오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저절로 난전으로 상황이 몰아가졌다.

애초부터 오크들의 강점은 단체 훈련과 단단한 신체와 베테랑들을 이용한 굳센 진형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점을 활용하기도 전에 파훼되자 피해는 속절없이 커갔고, 두 대장이 움직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오오오오오!"

가장 먼저 고블린들을 향해서 달려든 것은 루칸이었다.

부웅-

그는 손에 들린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몸체가 두껍고, 날의 두께도 보통보다 몇배는 커다란 대검의 경로에 걸린 고블린과 오크들은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날려지고, 부서지고, 토막이 났다.

"키헥?!"

그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게 고블린이든 오크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을 베고 날리면서 상황을 소강상태로 만들어갔다.

그가 휘두른 대검으로 인해 단번에 많은 고블린들과 오크들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오크와 고블린들은 서로,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바라 볼 뿐이었다.

"뭣들 하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루칸은 쉼없이 대검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고함에 오크와 고블린들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고, 잠깐의 틈 사이로 오크들은 후퇴를 고블린들은 추적을 했지만 그 자리로 덴이 나타나 고블린들의 추적을 저지했다.

"흥, 당연히 지나가게 놔둘리가 없잖아?"

쌍단검을 빠르게 휘두르며 뒤섞여 난전을 벌이는 이들의 틈으로 들어가 정리하면서 전진하던 그는, 루칸에 의해서 저절로 분리되는 아군들을 도왔다.

고블린들은 더 이상 쫓지 못하고 멈춰서 그들이 전열을 가다듬는 것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때, 고블린들 측에서도 그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려 정예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진동에 오크들은 지진인가 하고 일순 당황했지만,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이것이 자연적인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일어나는 진동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들의 근방 바닥에서 갑작스럽게 고블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커헝-

죽여! 이곳을 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주는 거다!

멀리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오크들의 근방에서 튀어나온 고블린들은 곧바로 오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오크들은 아직 전열을 제대로 가다듬지 못했으며, 아직 모든 오크들을 수습한게 아니기에 반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고블린들은 맨몸으로 튀어나오는게 아니었다. 그들은 늑대들의 등에 타고 있었으며, 늑대들도, 고블린들도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전해들은 인간들의 기사들을 흉내내듯이 거대한 원뿔 형태의 창을 들고 있어, 완전히 돌파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병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이 튀어나온 곳은, 다른 고블린들이 숨어있던 장소와 같은 곳이었다. 위치적으로는 차이가 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하나같이 연결되어 있어, 같은 장소라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광산. 이곳은 현재 고블린 부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장소 중 하나이며, 코볼트들의 손에 의해서 광석이 캐지고 있지만 그 관리는 여전히 고블린들이 하고 있는 장소였다.

본래 일자로 뚫려 있기만 하던 광산은 루프스와 고블린들의 손에 의해서 변질되었다. 여전히 광산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여러 일을 겪은 루프스는 이곳을 하나의 비밀 은신처로서 존재하길 원했고, 그의 결심은 광산을 하나의 미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은신처로서 기능하는 미궁은 여차할때 여럿으로 산개해서 도주 할 경우까지 산정해서 만들어졌고, 지금 그 출구를 통해서 고블린 기병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공격은 간신히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한 오크들의 옆구리를 무차별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그들의 돌진 전에 자세를 잡은 이들은 어떻게든 버티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후속타와, 옆쪽이 뚫리면서 같이 무너져 내렸다.

루칸과 덴은 그들의 선두에 나서고 있었기 때문에 측면을 쳐오는 그들을 상대 할 수 없었으며, 그들을 막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었기에 더욱 그쪽으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윽?!"

오크들의 옆구리를 치고 있는 고블린들을 물리치는 것이, 정면의 동족들을 수습하는 것 보다 급하다고 판단한 루칸이 달려가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발목이 붙잡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그의 발은 어느새 땅속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그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바닥의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밀려들어가는 속도가 워낙 느리다보니 미처 눈치채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 중 한 고블린이 이 상황의 원인임을 알아보았다. 그 사실을 알아보기는 쉬웠다. 그와 자신 사이의 오크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닥에 붙잡혀있는 모습이었으니, 그 부자연스러움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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