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준비
고블린들의 습격. 그것은 한참 오크들이 수색을 위해 일시적으로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고블린들의 기습은 시기적절했지만, 안타까운 점은 오크들도 이미 이렇게 된다는 예상을 했다는 것이다.
흩어져서 고블린들을 찾던 오크들이 다시 뭉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리 어떻게 모여야 하는지 이야기가 되어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과연 훈련받은 병사와도 같이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고블린들의 기습은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결국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그나마 기습의 성공으로 피해를 주기는 했으나, 유의미한 피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한자리에 뭉친 오크들은 사방을 경계했다. 비교적 안쪽에 자리잡은 오크들도 긴장을 풀지 않고 주변을 경계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코볼트들에게 받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코볼트들과 접촉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는것이 아니었다. 과거 코볼트들은 인간 도적들과 연을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소수나마 있었다. 당시의 도적들은 망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밥줄중 하나였던 광산을 관리하던 코볼트들을 고블린들에게 빼앗기면서 전체적인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 과정에서 코볼트들과 선이 이어진 이들 중에서 쓸모가 없어진 이들이 내쳐졌다. 그리고 그 중에는 소수나마 코볼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섞여 있었다.
그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는지 오크 용병단의 고용주가 그 중 하나를 스카웃 했고, 그를 통해서 고블린 부족 안의 코볼트들과 오크 용병단을 연결시켜준 것이다.
그 시기는 마침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의 갈등이 점점 심해지면서 루프스가 특단의 조치로, 따로 그들의 마을을 만들어서 내보내던 그 시기였다. 당연히 코볼트들은 오랜시간 동안 이어진 거래자의 등장을 반겼다.
과거 코볼트들의 영역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 루프스는 코볼트 왕의 심복들을 전부 처형시켰었다. 전쟁의 과정에서부터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코볼트들도 하나 하나 찾아서 처형을 시켰던 것이다. 루프스는 코볼트가 정확히 어떤 이들인지는 모르지만, 인간들과 교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에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라고 모든 코볼트들의 관계를 알아낼수는 없었다. 게다가 설마하니 밑바닥의 최하급 코볼트 중에서 인간들과 직접 마주대하고, 거래까지 성사시킨 경험이 있는 이가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후, 코볼트는 죽어라 노력해서 결국 하나의 마을을 이끄는 입장까지 올라섰고 그는 오크들과의 연결을 통해서 고블린들을 배신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오크들에게 고블린들의 영역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전달했으며, 그 중에는 이 장소 광산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이곳은 코볼트들에게도 밥줄이면서 목숨줄과도 같기 때문에 상세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오크들은 정확히 광산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몰랐으며, 코볼트들도 모르게 루프스가 개조까지 했으니 기습하는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크들도 고블린들이 이렇게 기습을 가할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기민하게 움직여 다시 뭉칠 수 있었다.
오크들이 뭉쳐서 전열을 정비하는 그 순간, 고블린들은 각자의 손에 쥔 물체를 집어 던졌다.
휙- 휙-
가볍게 날아가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주머니는 오크들의 근방에 도달해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지자 주머니는 헐겁게 묶여있는 입구가 풀어헤쳐졌고, 그곳에서는 가루가 튀어나와 오크들의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윽?!"
"모두 입을 막아라!"
빠르게 공기중으로 흩날리는 가루가 오크들의 호흡기로 들어가려 하자, 루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고블린들이 던진 물체가 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독은 오크들에게 다가갔다. 오크들은 입과 코를 막아 최대한 차단 시켰지만 흩날리는 가루는 호흡기 뿐만이 아닌, 귀와 눈, 그리고 피부를 통해서도 조금씩 그들의 체내로 흡입되었다.
"끄으으으"
던져진 독은 고블린들이 준비한 수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오크들의 전열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오크들은 상대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병들이었다. 그들은 오크 용병단에서도 정예들이었고 그렇기에 독에 영향을 받을지언정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열에 있는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방패에 지켜지는 그들은 대체로 갓 훈련을 끝내고 전선에 참여한 이들인 경우가 많았다. 방패 뒤에서 공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베테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오크를 옆에 배치해둬서 그들의 실수를 매꿔주었다. 간단한 임무라고 판단한 용병대에서 실전을 겪게 하기 위해서 훈련병들을 섞었던 것이 이런 피해를 만들었다.
하지만 과연 허투루 조직된 용병단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듯이, 쓰러진 오크들은 그런 신참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오크들도 독이 몸 속으로 흡수되었지만 그들은 미리 대비를 해두었던 대로, 재빨리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서 하나의 알약을 꺼내더니 그대로 깨물어 삼켜버렸다. 그러자 오크들의 체내로 흡수된 독은 치유되었고 슬금슬금 그들의 몸을 옥죄던 독은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직후, 고블린들은 오크들을 향해서 돌격을 감행했다.
"캬아악!"
그런 고블린들의 돌진을 보면서 선두를 막아선 오크 방패병들은 굳건히 방패를 세웠다. 적들이 그들의 뒤를 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오크들의 방패를 향해 몸을 들이밀지 않았다. 저렇게 굳건히 막힌 벽에 당연히 몸으로 들이받을 생각을 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방패에 근접한 오크들은 그대로 뛰어 올랐다. 이곳은 나무가 우거져 있었으며, 당연히 방패병들이 굳건히 막아섰다고 하더라도 단숨에 나무를 밀어버리고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고블린들은 나무와 오크들의 방패를 발판으로 삼아 그들의 뒤로 뛰어넘었다. 애초부터 난전을 원했기에 하나같이 그들의 틈바구니로 들어선 것이다.
반면 선과 선으로 전선을 만들어 차근차근 대응하기를 좋아하던 오크들은 그런 고블린들에게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 중에는 당연히 지금의 고블린들처럼 난전으로 유도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크들이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들과 고블린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다름아닌 고블린들 또한 여러번의 실전을 거친 이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을 상대로 난전을 유도하던 이들은 마법사들을 동원해 그들의 전열을 흐트러트리거나 정면에서부터 비집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크들은 그 모든 경우 마법이든 아니면 틈을 비집으려는 이들이든 뒤로 보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정면은 물샐틈이 없었으며, 얼결에 지나친다 하더라도 그들의 뒤를 지키는 오크들의 손에 순식간에 처리된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정면이 아닌 뛰어서 위쪽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그렇게 고블린들이 침입하는 틈은 신입들이 차지하는 장소였고, 그곳은 다름아닌 독으로 인해서 생긴 빈틈이었다.
뛰어든 고블린들을 막을 오크들은 이미 진작에 독으로 죽었으며, 그 빈자리를 미처 매꿀 시간적 틈도 없었다.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고자 나서는 오크들도 있었지만 그들을 향해서는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후 그들보다 후열에 있는 오크 궁병들이 고블린 궁병들을 견제하면서 화살이 더 이상 날아들지 못했지만, 그 때는 이미 침투한 고블린들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고블린들을 정리하지 못하자 그들의 뒷쪽에서 짐짓 버티고 서있던 루칸과, 그를 따라온 또다른 부대장 덴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