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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90화 (190/374)

190화

준비

몸을 제어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그룬돌은 그 원인을 찾아야했다.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적들뿐만 아니라, 어떤 적들이라도 지금 상태로는 죽기 딱 좋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능력은 상대방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리는 기운을 볼 수 있는 것과, 그렇게 확인한 기운들을 흡수 하는 것이다. 처음, 능력을 얻었을 떄는 단순히 잔류하는 잔재만을 흡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흡수만 할 뿐, 아무런 효능도 없는 찌꺼기와 같은 능력이었다.

그는 별 볼일 없는 능력만을 가지고 오로지 투쟁에 투쟁만을 거듭했다. 그가 딱히 처음부터 투쟁을 원한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아비를 존경했고, 그를 따라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투쟁에 발을 들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미약한 능력으로 동급의 적을 상대로도 피투성이가 되면서 간신히 승리를 취하던 그는 어느새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운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어냈으며, 퍼져있는 기운들을 흡수하여 그의 신체능력으로 전환하는 방식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흩뿌려져있는 기운을 흡수합으로서 적의 몸 속에 있는 기운마저 뽑아내 적을 약화시키는 것 마저 가능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런 일을 겪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상대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흡수하는데 문제점이 있었다. 간혹 직접 접촉을 해야만 능력이 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가 기운을 흡수 할 경우 그것만으로 접촉하고 있음으로 판명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이질적인 능력을 지닌 이에게는, 신체에서부터 그 영향이 나타나고는 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 꺼림칙한 사기마저도 흡수하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본래라면 하나 하나 구분해서 방출해내는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눈도 보이지 않으며, 귀도 들리지 않고, 하다못해 피부로 느끼는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어떤 자세로 있는지, 서있기는 한지, 아니면 주저앉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며, 팔과 다리에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정도쯤 되면, 딱히 강적이 아니더라도 그를 죽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는 적을 상대하는 것 만큼 쉬운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무감각하다는 것이 그에게 일말의 공포를 안겨주었다. 단 한번도 경험해본적 없는 일이며, 자신이 살아있는지, 어쩌면 이미 죽은것은 아닌지, 각종 상상이 들게 만드는 이 상황은 그의 정신을 파먹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구분하기 보다는 체내에 들어온 모든 기운을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결정적으로 그를 살렸다.

스스스스-

그에게만 느껴지는, 그리고 그에게만 보이는 기운들이 그를 빠져나갔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감각이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다시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후웅- 후웅-

간신히 감각을 찾아가는 그에게, 언뜻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때서야 어느정도 돌아온 시야로 확인해보니 다름아닌 하나의 도끼가 그를 향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감각을 찾자마자 나타난 위협에 깜짝 놀란 그룬돌은 몸을 던져서 공격을 피하려하였다. 하지만 이제 막 감각을 찾기 시작한 몸뚱이가 그가 원하는데로 움직일리가 없었다. 간신히 몸을 비트는데는 성공했지만 도끼의 경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것에는 실패했다.

콰지직! 툭

"그으읍!"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던 도끼는, 그가 몸을 비틀면서 그의 오른팔을 절단시키는데서 그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부상. 당연히 그룬돌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오는 듯 했다.

하지만 그도 지금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신음성은 물론 비명까지 튀어나올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면서 팔이 하나 절단된 상태로 이들을 상대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일단 주변상황부터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그가 상대했던 고블린과, 그의 부하인 세 고블린들이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고블린들과 오크들의 상황은 그의 생각보다도 심각했다. 그가 부상을 당하기 전에, 그의 방패가 되어 줄 부하들도 거의 전멸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이미 고블린들과의 싸움은 거의 끝나가고, 소수만이 남아 대항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대로 버틸 수 없다고 본 그룬돌은 자신을 막아선 네 고블린들을 노려보았다. 고블린들의 족장이자 자신과 비등한 힘을 보유한 적과 그의 측근들로 보이는 세 고블린들이었다. 하나는 불을 내뿜으며, 하나는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그 사기를 내뿜으며, 마지막 하나는 짜증날정도로 지겨운 늪지를 소환해내는 적이었다.

움찔

그룬돌을 단번에 절명시키려고 날렸던 도끼가 그 의도와는 다르게 팔을 하나 날려버리는 피해로 끝나자, 잠시 그를 살펴보던 루프스와 세 고블린들은 그가 노려보기 시작하자 오싹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움직였다.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던 고블린들과 오크의 대치는 오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끝을 맺었다.

"...!"

두 눈을 부릅 뜨고 달려든 그룬돌은 단번에 고블린들의 머리를 부셔버릴 듯한 기백을 내뿜었다. 다만 루프스와 세 고블린들은 그들 나름대로 험난한 전투를 이어가던 이들이었다. 단순한 기백에 밀릴리가 없었다. 달려드는 그를 정확하게 노려보며 그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룬돌의 주먹이 날아올 타이밍에 몸을 돌려 회피해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듯이 오크, 그룬돌은 그저 그들을 피해서 계속해서 달릴 뿐이었다. 당연히 공격해올거라는 생각에 피하는데 집중했던 고블린들은 순간적으로 그를 쫓지 못했다. 직후 그를 쫓기 위해 달렸지만, 막 가속을 시작한 고블린들이 충분히 달리고 달려 가속을 끝낸 오크를 잡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분명히 순간적인 속력은 고블린들이 빠르며, 전투중에도 확실히 속도라는 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있다. 하지만 오크의 힘은 무시 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번 언급된 사실이며, 그 힘은 적어도 일직선으로 달리는 순간에 한해서, 충분한 가속이 붙는다면 고블린보다도 빠르며, 더욱 오래 지속되기까지 한다.

당연히 어느정도 거리가 벌려진 시점에서, 아무리 빠르게 달려서 그를 따라잡으려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고블린들이 그를 잡을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좋았다.

함정의 유무를 무시하고, 정면을 막아서는 고블린들과 동족인 오크까지도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일직선으로 달리는 그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쉬웠지만, 쫓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의 도주를 끝으로 고블린들과 오크들의 전투는 끝을 맺었다.

애초 대부분이 절명하거나 붙잡힌 상태에서 족장까지 도주하자, 더 이상 저항할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오크들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며, 자식을 만들 수 있는 오크들만이 간신히 그 목숨만을 이승에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크 족장을 놓친 루프스와 세 고블린들은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위압을 부리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에게 자비 한점 보이지 않던 오크가 설마하니 도주할지는 그들로서도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를 생각한 루프스의 표정은 절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오크들의 영역을 살피면서 얻은 결론은 이대로 오크를 놓친 것이 큰 실책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의 그런 생각은 얼마 후 새롭게 영역에 침공을 당하면서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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