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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89화 (189/374)

189화

준비

부웅-

대검은 정확히 루프스의 목을 노리고 내리쳐졌다. 그리고 날려보내졌던 루프스는 고통으로 멈칫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루프스는 목이 달아나고 그룬돌의 승리로 끝이 나는 듯 했다.

탱!

하지만 결국 루프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리쳐오던 그룬돌의 대검을 향해서 불타는 창이 날아와 쳐낸 것이다. 족장인 둘의 전투 이전에 다른 고블린과 오크의 전투에 참전했던 루프스의 세 측근이 참전함으로서 벌어진 일이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그룬돌은 멈칫했다가 재빨리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공격을 시도했지만, 그때는 이미 루프스가 정신을 차리고 그로부터 거리를 벌린 뒤였다.

"으윽..."

"족장!"

간신히 거리를 벌리는데 성공했지만, 날려진 충격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루프스는 순간 비틀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프리트가 비틀거리는 그를 비축했다.

그 사이 어느새 그룬돌에게 근접한 파인피가 여분의 창을 쥐고 휘두르고 있었다. 불에 감싸인 창은 정확히 그룬돌의 급소를 노리고 찔러들어갔고, 그룬돌은 여유롭게 공격을 막아냈다. 동시에 마지막 일격을 방해한데 대한 화풀이인지 힘을 실어서 대검을 휘둘렀다.

콰앙!

"꺼헉...!"

강하게 튕겨진 탱탱볼 마냥 튕겨나간 파인피는 나무에 몸을 박고는 좀전의 루프스보다 심한 상태로 쓰러졌다. 동료의 그런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스콘드는 깜짝 놀라 그룬돌을 향해 사기를 날렸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듯이 재빨리 프리트도 그의 발 아래를 늪지로 만들었다.

스콘드의 사기가 그룬돌의 체내로 침입했고, 프리트가 만든 늪지는 그의 발을 붙들었다. 일단 직접적인 전투원이라고 할 수 있는 루프스와 파인피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의도다.

그룬돌은 체내로 자꾸 침투해서 통증을 유발하는 사기에 식겁했지만, 그보다 그의 발 아래 만들어진 늪에 더욱 식겁하면서 놀라 빠져나가려 하였다.

하지만 바로 얼마전에 있었던 늪의 악몽이 떠오르게도 발은 빠지지 않았으며, 체내로 스며드는 사기와 미약하게 남아있는 근이완제의 효능이 그가 늪에서 또 빠져나오려는 발버둥도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이번 늪지는 프리트가 직접 능력을 이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인지, 이전의 늪과는 그를 잡고있는 힘 자체가 달랐다. 아니, 정확히 이것이 늪이 맞는지부터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룬돌을 붙잡는 힘은 단순히 붙잡는것을 넘어서 그를 조이고 있었다. 그였기에 아직 다리가 무사한 것이지, 그가아닌 다른 오크들이었다면 조금씩 조금씩 조여드는 힘으로 찌부러졌을 법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룬돌도 그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사기가 그의 힘을 빼고, 늪지가 그의 발목을 잡더라도 온전히 그를 붙잡기는 어려웠다.

비록 잡을것도, 바닥에 발이 닿지도 않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휘두르면서 고블린들의 접근을 막았던 대검을 자신의 발 아래로 옮긴 것이다. 대검을 늪지 속에서 움직이는것도 그리 편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역시나랄까 대검을 아래로 내리자 칼 끝이 바닥에 닿았다.

손잡이에 발을 올린 그는 강하게 땅을 박찼다.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푸확!

이전 늪에서 빠져나올때 보다는 높지도 않았으며, 늪지가 튀는 모습도 미약했지만 빠져나오기에는 충분했다.

쿵-

바닥에 내려앉은 그는 자신을 다시 늪에 빠트린 프리트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손에 더 이상 무기는 없었지만 그는 없는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프리트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주먹을 피해냈다. 다행히 높은곳에서 떨어져내린 직후 내지른 주먹이기 때문인지 정확히 그를 노리지 못한 덕분이었다.

그가 피해내자 그룬돌을 향해서 다시 공격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그가 잠시 잡혀있는 사이 정신을 차린 루프스였다. 루프스는 여전히 기운이 빠져있지만 그의 수하가 목숨걸고 그를 구하러 와주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루프스는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연이어 파인피가 그룬돌의 발밑을 다시 늪으로 만들어 발목을 잡고, 스콘드가 사기로 그룬돌의 힘을 빼앗았다.

그룬돌은 발이 잡히고 몸에 힘이 빠지자 순간 휘청거리기 까지 했다. 그리고 그 사이 도끼는 그를 향해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으득-

이를 악물더니 이내 루프스를 향해서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사용했다.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의 기운을 들이키기 시작한 것이다.

"흡?!"

"크흡?!"

루프스는 도끼를 내리 찍던 와중에도 몸에서부터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감각과 손아귀의 힘이 일시적으로 빠지는 것을 느껴 절로 잇소리가 세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프리트도 마찬가지였다. 휘두른 무기의 위력은 내려가고 그의 발목을 붙잡던 늪이 점점 줄어들어 종래에는 사라져버렸다.

다만 스콘드의 사기는 흡수하는데 문제가 있었는지 힘이 빠지면서 놀란 루프스들과 마찬가지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저 힘만 빼앗던 사기가 직접 그의 체내로 들어가자 온몸이 부패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눈 앞에서 그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던 루프스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이 공격은 별 피해를 못입히겠지, 그렇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도끼질이 그에게 피해를 주기에는 너무 미비한 위력이라는 자각을 하였다. 그러는 와중, 그를 향해 능력을 사용하고 공격하던 그와 다른 두 고블린의 힘이 빠지자, 그룬돌의 몸이 미약하지만 부분적으로 부패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룬돌은 몸이 썩어드는 감각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그건 실제로도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루프스는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한 순간에 능력을 사용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자 바로 반응이 왔다. 그룬돌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눈 앞까지 무기가 다가와도, 실제로 그 몸에 무기가 박혀도 꿈쩍도 하지 않던 그의 눈빛이 흔들린 것이다.

눈동자의 빛이 사그라드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프스의 예상과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도끼로 하는 공격을 일시적으로 그만둔 그는 그를 향해서 더욱 더 능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때 마다 그룬돌의 반응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자세히 티가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주변의 적들을 명확히 경계하던 그의 행동과는 달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리 티 나는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응은 커져만 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이 허공에 헛손질을 하기 시작했으며, 어느 순간 그는 허물어져 내리듯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허공을 향해서 꺽꺽 거리기만 했다.

순간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던 루프스는 다급히 움직였다. 지금이야말로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이 기회는 그가 문제를 알아차리는 순간 날아갈 것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그를 향해서 직접 도끼를 내리치기 보다는 도끼를 투척하는 것을 선택했다.

훙 훙 훙

재빨리 루프스가 도끼를 투척하자, 도끼는 빙글빙글 돌면서 그룬돌을 향해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여전히 미동도 보이지 못하고 꺽꺽거리기만 했지만, 순간 그의 눈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도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를 눈치챈 것이다. 몸이 부패하는 것은 사기를 다루는 스콘드의 기운을 흡수하다보니 직접적으로 그의 사기에 중독되어 버렸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몸의 이상, 하나씩 하나씩 그의 감각이 사라져가는 것 또한 그룬돌은 이 사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일단 아무것도 못보는 이 사태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그는, 본래라면 순차적으로 스콘드의 사기만을 흡수하는것을 그만뒀겠지만 다급한 상황에 적들의 기운을 흡수하던 능력을 그만뒀다. 일단은 몸의 감각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 한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간신히 그를 살릴 수 있었다.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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