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188화 (188/374)

188화

준비

루프스는 그룬돌을 향해서 도끼를 내려 찍으면서 달려들었다. 그의 공격에 그룬돌은 역시나 어디로 공격해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도끼의 경로를 막아냈다. 제대로 힘이 실리지 못한 도끼는 대검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나간다.

하지만 루프스도 이미 그가 자신의 도끼를 처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공격을 강행한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이 튕겨나가는 도끼를 따라서 몸을 띄워 뒤쪽으로 덤블링을 하듯이 착지했다. 착지한 그는 곧바로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루프스의 태도에 진중히 견제하던 그룬돌은 돌연 대검을 뒤쪽을 향해서 휘둘렀다.

부웅 탓-

휘둘러진 대검은 그의 뒤를 노려오던 한 고블린을 베려했고, 달려들던 이는 침착하게 뒤로 물러섰다. 그룬돌의 뒤를 치고자 했던 것은 또 다른 루프스였다.

"...!"

애초에 루프스가 그룬돌에게 제대로 공격하지 못 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달려든 것은, 분신을 이용한 기습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수도 그룬돌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대처했다. 연이어 달려드는 루프스에게는 순간적으로 발을 차면서 그가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렇지만 루프스는 그를 상대하는 방법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룬돌, 오크 족장이 어떤 방법으로 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읽어내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손으로 열손막기는 힘들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실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룬돌도 자연스럽게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갑작스럽게 또다른 루프스가 그의 등 뒤에 나타난것에는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의 양상으로 그는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앞 뒤로 포위한 루프스는 연달아서 그룹돌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를 막아내려 뒤를 돌 때 마다 후방을 점하려 했으며, 그런 루프스의 의도를 알기 때문인지 그룬돌도 양쪽의 루프스를 견제하기 위해서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공격이 들어갔다.

챙-!

"그읏!"

새로운 루프스의 분신이 또 다시 뒤치기를 한 것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태도로 막아냈다. 다만 동시에 또 달려드는 나머지 두 루프스를 견제하면서 셋과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스스스

거리가 벌려지자 루프스는 하나는 그의 정면에서 나머지 둘은 후방의 양 측면으로 돌아가 다시 그를 포위했다.

그룬돌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지금까지처럼 여유로운 대처를 할 수 없었다. 다만 그에게도 한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루프스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지만 그는 정확히 어떤 놈이 본체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거리를 벌려서 루프스와 그 분신들이 연이어 달려드는 공격들을 순차적으로 침착히 쳐내서 자신의 몸을 지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룬돌은 돌연 좌측 후방에서 견제하던 루프스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다름아닌 그가 본체로 점찍어둔 이였고, 실제로 그것이 루프스의 본체였다.

루프스는 갑자기 그가 자신을 향해서 달려들자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아무래도 녀석이 본체가 누구인지를 알고 일부러 달려드는것 같은 모습이 그를 더 놀라게 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루프스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갑작스럽게 루프스를 향해서 저돌적으로 달려들다보니, 빈틈이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천만 다행이게도 그는 그룬돌보다도 민첩했다.

미리 움직였다가는 분명히 그대로 끝까지 쫓아올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그는 일부러 그룬돌이 자신의 바로 앞까지 돌진해 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정면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그는 곧바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퍽!

당연히 아무리 힘이 좋더라도 힘껏 내리친 대검을 회수하기란 요원한 일이었으며, 연이어 빈틈이 생긴 그 등으로 루프스의 분신들이 도끼를 내리찍었다.

쩍!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는지 도끼가 그룬돌의 등에 박혀들어갔다.

"크륵! 이 놈!"

그룬돌이 빠르게 끝내려 다급하게 움직였던 것이 루프스에게는 호재가 된 것이다.

등에 도끼가 박힌 그룬돌은 대검을 뒤로 휘둘렀다. 그나마 정면의 루프스는 그의 공격을 피해서 구른 덕분에 아직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룬돌은 오크들 중에서 가장 좋은 장비를 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에 보호구는 물론이고 약식이지만 급소를 감춰주는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무기는 제대로된 대장장이가 최선을 다해서 만든 듯한 대검으로 충분히 루프스의 도끼를 막아내는게 가능한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급소만을 가려주는 갑옷 덕분에 등은 훤히 열려있었고, 충분히 루프스의 공격이 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각자 도끼를 하나씩 박아넣은 둘은 빠르게 도끼에서 손을 놓고 뒤로 뛰었다. 곧 그룬돌의 등에 박혀있던 도끼는 사라지고, 거리를 벌린 루프스들의 손에는 다시 도끼가 들려져 있었다.

그렇게 그룬돌이 둘을 쫓아내는 순간 구르던 몸을 일으킨 루프스가 다시 그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동시에 거리를 벌렸던 나머지 둘도 그를 향해서 도끼를 휘둘러갔다.

셋의 루프스는 연달아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셋의 합공에도 그룬돌은 자잘한 상처는 생길지언정, 치명상만큼은 계속해서 피해냈다.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결국 루프스는 다시 하나의 분신을 불러냈다.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한 세번째 분신이었다.

분신이 추가로 합류하자, 전투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모두 루프스의 본체에서 파생된 분신이기 때문인지, 그 협동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루프스는 도끼를 휘둘러 일차적으로는 오크의 대검을 봉쇄했다. 그리고 그 틈에 루프스의 분신이 도끼를 휘둘렀고 이번에는 팔로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힘으로 둘을 떨쳐냈지만, 힘을 사용한 그 짧은 순간을 노려서 다른 하나의 분신이 그를 노렸고, 오크는 힘을 회수해서 자세를 잡지 않고, 마구잡이로 떨쳐낸 힘에 몸을 실어서 고블린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마지막 남은 분신이 그의 등 뒤로 돌아가 갑옷을 도끼로 쳐내서 그 몸으로부터 떨어트렸다. 자잘하게 상처만 입히려 하다가는 이기기 전에 체력이 떨어질것 같았기 때문에, 갑옷을 노린 것이다.

그 뒤로는 비슷한 양상이 연속되었다. 갑옷의 부위를 하나씩 떨궈냈고, 오크는 거진 맨몸으로 루프스의 공격을 막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상황은 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듯이 그룬돌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층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갑옷의 무게가 몸에서 덜어졌기 때문일까, 그의 움직임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동시에 루프스는 기이한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그룬돌의 움직임이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어딘가 힘이 빠지는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착각만은 아니라는 듯이, 그의 분신들도 이상 증상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지지- 직-

형상이 한차례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는 듯한 모습에 루프스는 저절로 잡음이 들리는 듯 하였다. 그리고 분신이 분출하는 힘이 약해진 것인지, 그만큼 그룬돌의 힘이 늘어난 것인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그와 분신의 공격을 막아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은 계속해서 빠져나갔으며, 분신을 유지하기도 벅차져 하나씩 줄어들어갔다.

콰앙!

"커헉!"

결국 분신은 모두 사라졌으며, 루프스는 힘이 약 절반으로 줄어든것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 그룬돌의 대검에 날려보내졌다.

그룬돌은 고통에 정신을 못차리는 그를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향해서 대검을 내리쳤다. 끝을 내기 위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