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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87화 (187/374)

187화

준비

원군을 이끌고 북쪽 마을을 향해서 출발한 루프스는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다.

"저기군. 빨리 움직여라!"

숲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는 초입. 루프스는 그곳에 은신처를 만들어 진을 치고 있는 마인과 고블린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흘깃 보아서는 알 수 없도록 나뭇잎과 가지의 틈 사이로 감춰진 은신처에 숨어 있었지만, 그가 동족이 만드는 은신처에 대해서 모를리가 없었다. 주로 만들어지는 장소를 위주로 확인하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인도 멀리서 다가오는 루프스와 그가 이끄는 원군들을 확인하였다. 그 수가 제법 많은 덕분에 멀리서부터 그의 눈에 잘 띄인 것이다.

은신처들이 마련된 숲의 초입에 다가가자 루프스는 마인에게 다가갔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고 해도 좋을 세 고블린들이 있었다. 그들도 이번에 원군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오크들은?"

마인에게 다가온 루프스가 물었다. 이들이 이곳까지 나와있는 것을 보니 마을을 버리고 이곳까지 왔다는것은, 오크들의 진격이 생각보다도 빠르다는 증명이었다.

"곧 당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가운 표정으로 루프스를 반기던 그는, 그가 한 질문에 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한창 긴장하는 와중에 그가 도착해서 잊었지만, 이제 얼마 안있으면 전투가 시작한다는 자각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표정은 굳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얼마전에 들어온 정찰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크들의 전력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놈들이 가지고 있는 분노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겁니다"

정찰의 결과는 그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발목만 잡기를 바라며 만들어두었던 함정에 제대로 걸려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크들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특히나 생각보다도 많은 수의 오크들이 온몸에 불이 붙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떠나면서 식량에 포함된 근위완제로 비교적 허약한 오크들에게 심부전 증상을 일으켜 그 목숨을 뺴앗기까지 했다.

루프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흡족해하였다. 상황은 그의 생각보다도 훨씬 수월해져 있다는게 마음에 든 것이다.

그는 이제 곧 도착한다는 오크들을 맞이 할 준비를 시작했다. 마인을 따르던, 원래 북쪽 마을에 머물던 고블린들은 은신처에 숨어서 제자리를 사수하도록 했다. 그리고 루프스를 비롯한 원군으로 도착한 고블린들은 숲 안으로 들어가, 수풀의 사이나 나무의 뒤로 돌아가 그 몸을 숨겼다.

도착하자마자 전투를 치뤄야 하지만 루프스가 이끌고 온 고블린들은 한마디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루프스의 강행군으로 이미 지친 몸이긴 했지만, 적당히 조절을 했기 때문에 전투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평소보다 힘이 좀 빠져있기는 하지만 크게 지장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곧 적이 도착하는데 느긋하게 휴식이나 취하고 있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이들도 아니었다.

몸을 어느정도 은폐하기를 끝내고, 잠시 기다리자 멀리서부터 오크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크들을 바라본 루프스는, 과연 마인의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함정에 빠졌음을 증명하듯이 온몸이 그을음이 묻어있는 오크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서 움직이고 있는 오크는 화재에서도 선두에 섰었는지, 양팔은 물론 몸 곳곳에도 다른 오크들보다 심한 화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름 휴식을 취하긴 했는지, 그들의 움직임에서 통증에 의해서 행동이 늦어지는 모습은 보였지만, 정신적 스트레스와 피곤함으로 몸이 무뎌져 보이지는 않았다.

오크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길 얼마, 오크들은 고블린들의 포위망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그 걸음을 멈췄다. 정확히는 오크 족장의 발걸음이 멈추자 다른 오크들이 따라서 멈춘 것이다.

'들켰나?'

루프스는 오크의 행동에 움찔했다. 오크 족장이 추적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마인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이 기우였다는 듯이 잠시 멈칫했던 오크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탓- 부웅!

오크들이 다시 다가오는 모습에 안도했던 루프스는 저도 모르게 빈틈을 만들어냈다. 오크들이 그의 모습을 보는것도 아니었으니 실수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몇걸음 걷던 오크 족장이 뜬금없이 루프스가 자리한 장소를 향해서 대검을 휘두르면서 다가왔다. 오크 족장, 그룬돌이 양손으로 붙잡은 대검을 루프스가 숨어있는 나무와 함께 베어버리겠다는 듯이 강하게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칼날은 매우 빨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방심했던 루프스가 온전히 피하기에도 너무 빠른 공격이었다. 다급히 도끼를 들어올려 막아냈지만, 오크와 고블린의 근력차이는 어지간한 수준으로 극복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크윽!"

과연 루프스는 오크 족장의 공격에 버티지 못했다.

역으로 기습을 당하면서 당황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오크 족장, 그룬돌의 공격에 뒤로 몸이 날려져버렸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오크와 고블린들이 충돌했다. 고블린들은 갑자기 족장이 날려지자 당황했지만 눈앞까지 다가온 오크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챙- 챙- 캉!

오크가 고블린을 향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고블린들도 오크들을 향해서 마주 무기를 휘둘렀다. 고블린들이 역으로 기습을 당하는 형세였다. 그 때문에 당황한 오크들이 초반에는 밀리는 형세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백중세로 바뀌었다.

오크들이 사전에 기습을 알고, 먼저 들이친 공격은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그 순간에 목숨을 잃거나 다친 고블린들이 지금도 입은 피해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오크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바로 직전에 고블린들이 친 함정에 제대로 빠지면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있는 이들이 다수였으며, 여전히 그들의 몸에는 근이완제의 효과가 돌고 있었다.

고블린들을 상대하던 그들은 점차 밀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은신처에 숨어서 지켜보던 고블린들이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고블린들에게 기세가 돌아갔다. 오크들이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밀리는건 아니지만, 고블린들이 질만한 요소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반면 초반 예상치도 못하게 기습을 받은 루프스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기세를 빼앗긴 그는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그룬돌의 공격으로부터 피하기가 바빴다.

루프스는 그룬돌에게 맥도 못추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왔던 적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동급이더라도 대부분 속도와 민첩함에서 우위를 잡고 시작했었다. 오우거도 그룬돌처럼 힘에서는 그보다 월등했지만, 그의 느린 속도를 이용해서 승리를 따냈었다. 그리고 대체로 힘 위주의 적들을 상대할때는 비슷한 양상이 펼쳐졌었다. 힘이 떨어지더라도 맞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점을 이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첫방을 생각지도 못하게 맞은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정도는 어느정도 정신을 차린 이후로 대처하는게 가능했다. 힘은 어쨌든 속도만큼은 다른 힘 위주의 몬스터들과 그리 차이가 없는 덕분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그의 생각대로 따라주지를 못했다. 그룬돌은 비록 무기를 휘두르고 움직이는 속도는 느렸지만, 루프스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다는 듯이 공격은 사전에 차단하며, 그가 피하려는 위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쫓아서 공격을 맞추고 있었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루프스는 이를 꽉 깨물더니, 거리를 벌려 태세를 정비하고 다시 그를 향해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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