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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86화 (186/374)

186화

준비

오크들이 함정에 간신히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때, 마인과 그가 이끄는 고블린 무리들은 막 숲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빠져나오면서도 혹시나 오크들이 쫓아올까 싶어 조심스럽게, 그리고 유난히 함정들을 많이 설치했던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타다닷

숲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마인은 뜀박질을 멈출 수 없었다. 오크들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 함정들을 가동시켰다. 그러면서 오크들이 자신들이 어디로 도주했는지 알려주기 위한 흔적들을 남기면서 움직였다. 언뜻보면 위험해 보이는 방법이었지만, 그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은 그만큼 오크들을 경계하기 때문이었다.

당장 그와 그의 무리들이 오크들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풀어놓을수는 없었다. 고블린들의 영역은 상당히 넓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이곳을 통제한다고 하지만 세세하게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어떤 동물이나 몬스터가 돌아다니는지를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오크들은 매우 위협적인 적이다. 그런 이들이 자유로이 그들의 영역 안을 고블린들의 인지를 벗어나서 활동한다면, 그만큼 골치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마인은 분노에 차있을 그들이 위험하지만 자신들을 쫓아서 오기를 원한 것이다.

오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도망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경계심을 늦출수는 없었다. 언제 오크들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이면서 그들을 상대하기 어려운것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숲의 외곽으로 빠져나온 오크들은 가장 먼저 은신처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가지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얼마 안있으면 그 희망이 현실로 다가올거란 믿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루프스와 원군들이었다. 오크들의 수를 확 줄이지는 못했다. 전력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크들의 정신을 깎아먹는것은 가능했다. 수시로 생겨나는 함정에 예쌍치도 못하게 늪지대에 빠지는 일까지 있었으니 멀쩡하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마을에 설치해둔 그것들까지, 크흐흐. 제정신이면 그게 이상하겠지"

"키익, 킥 그렇습니다. 마인님. 아마 지금쯤이면 정신이 빠져서 어벙해 하고 있을 겁니다"

마인이 마을에 설치해둔 함정을 떠올리면서 웃음짓자, 그의 옆에 있던 그의 보좌역인 한 고블린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마인은 오크들이 자신이 만들도록 지시했던 함정들 중 적어도 하나에는 걸려들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루프스가 그에게 전해주었던 몬스터들을 먹고 있었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식량을 이용한 함정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식량에 심어둔 것은 아주 강력한 몇분만에 죽거나 일정 시간만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그런 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용한 독은 나름 치명적이라면 치명적인 것이었다. 다름아닌 근이완제였다. 그것도 루프스에게도 어느정도 효과가 들을 정도로 강도가 강력한 물건이었다.

"흐흐, 게다가 그걸 알아차릴 때는 이미 대부분의 오크들 입속으로 들어간 뒤겠지"

오크들이 섭취할 근이완제는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 아마 그 효능이 돌기 시작할 무렵이면 이곳으로 이동중이거나, 또 다른 함정에 걸린 뒤일 확률이 높았다.

"경계하고 먹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녀석들이 마을을 빠져나오는것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는 마을 출구 부근에 설치되어있는 끈끈이를 떠올리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다른건 모르더라도 적어도 오크들이 끈끈이에 의해서 발이 묶일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고블린들의 마을에 출입구는 두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오크들이 들어설것이 분명한 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 반대편에 있는 고블린들이 도주하는데 사용한 문이었다.

그리고 수작을 부리기는 마을 전체에 부렸지만, 그 중에서도 집중한것은 출구 부근이었다. 오크들이 올 시간대를 산정해서 그곳에 뿌려둔 끈끈이들을 시간에 맞춰서 끈끈이 함정으로 조절하기까지 손이 많이 간 함정이었다.

"다른건 경계심으로 어떻게든 피한다 치더라도 그것만큼은 걸릴게 분명하지. 거기는 우리를 쫓으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출구니까"

마인에게는 오크들이 그들의 마을을 무시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름아닌 늪지에서 있었던 일들 때문이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오크들을 모두 전멸시킬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크 족장이 늪지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능성이 있다고 떠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오크족장은 죽지 않았고, 오히려 그 때문에 고블린들은 후퇴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도발까지 걸리지 않았다면 억울하지"

그것은 고블린들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오크족장에게는 그들보다도 더욱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부족을 이끄는 족장의 입장에서 그보다 화나는 일은 없을 것이니 만큼 충분한 도발이 되었을거라는 그의 판단은 당연한 것이다.

"다 끝났습니다"

그가 마을에 만들어둔 함정과 그곳에 걸려들었을 오크들을 생각하고 있는 그 때. 어느새 잠시 그의 곁을 떠나있던 보좌를 맡고 있는 고블린이 다가와 은신처의 완성을 알렸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땅을 박차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조잡한 형태의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그리고 동시에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진 은신처였다. 그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형상을 한 은신처가 여럿 지어져 있었으며, 나무들은 하나같이 움푹 파여 그곳에서 수면만큼은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마을의 건물들에 비하면 딱히 우수하지도, 실용적이지도, 편하지도 않았지만 마을을 떠난 그들에게는 그 존재만으로도 감지덕지인 은신처였다.

"경계를 위한 순번들은 정했나?"

"키익. 이미 끝났습니다. 단 한시도 오크들의 접근에 대한 감시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원군에 대한 소식은?"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는것이, 한창 이동중이실거라 생각됩니다"

"음"

고개를 끄덕여 아쉽지만 어쩔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그는 다시 오크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 소식은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원군을 이끌고 올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렇기에 그는 원군에 대한 생각을 끊고, 이제 얼마 안있어 그들을 향해 다가올 오크들을 기다렸다.

///

고블린 마을에서 간신히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그룬돌은 화상을 입은 팔을 내리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바로 뒤에서는 마을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방금까지 엎어져서 이도저도 못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힘이 빠져 허우적대는 오크들이 다수 있었다. 다급함과 생명의 위협이 그들의 힘을 빼앗는 근이완제도 무시하고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생각을 떠올리자 다시 그들의 힘을 빼앗아갔다.

지금 그룬돌의 주변에 있는 오크들 중에서 제대로 서있는 자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크, 크하하하하하하핫"

그런 상황을 확인한 그는 크게 웃고 말았다. 강자 단 하나만을 보고 있던 그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당하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당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로 당했을 때는 화가나기만 하였다. 이런 조잡한 장치에 당했다는 사실에 창피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두번째로 당했다. 그리고 이건 늪지에서 당하면서 그래도 나름 경계라는걸 하다가 아무도 없다는 것에 방심했던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와 동등한 강자에 의해서 죽을뻔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외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놈들은 예상치도 못한 단시간에 그에게 목숨의 위협을 두번이나 준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의 몸은 쓰러지고 있었다. 근이완제가 여전히 그의 몸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지금은 다른것보다도 편히 쉬고 싶어졌다. 그리고 일어나서 자신을 농락한 고블린들을 잡아 족치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수마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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