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185화 (185/374)

185화

준비

잠에서 깨어난 그룬돌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전날, 잠들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일어나려하니 몸이 움직이지가 않았다. 아니, 몸은 움직였지만 무언가가 붙들고 있는 듯이 힘을 주어도 떨리기만 할 뿐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은것은 무언가에 붙들려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몸에 활력이 없는것이 작용한 것이다. 그가 느끼기로 자신의 몸을 붙잡고 있는 것에 어느정도만 힘을 써도 충분히 뜯어낼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없이 여전히 그의 몸을 바닥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그그극"

간신히 고개를 돌리는데 성공한 그는 어떻게든 주변을 살폈다.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면, 그의 부하인 오크들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거라는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돌아간 고개는 드디어 그와 함께 이곳까지 온 다른 오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룬돌보다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가 느끼는 몸의 이상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것 뿐이지만, 다른 오크들 중에서 대다수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각혈까지 하는 이들이 있었다. 특히나 약한측에 속하는 이들은 아예 절명했는지 몸을 빼내려 부들부들 떠는 이들과도 지쳐서 숨만 쉬고 있는 이들과도 달리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죽었군'

움직이지 않는이들을 세심히 살피던 그룬돌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오크들을 살피다보니 자신이 무엇에 잡혀서 움직이질 못하는지도 절로 알 수 있었다. 다름아닌 바닥이 전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몰랐지만 모두 고블린들이 부린 수작들이었다. 마인을 비롯한 고블린들은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적들을 막을 방도를 생각해야만 했다. 게다가 오크 족장이 올바른 길을 찾아서 오는것에서 위기감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한가지 착안점을 떠올렸다. 오크족장은 분명히 처음 오는곳이 분명함에도 함정들을 피하는 길목들을 정확히 파악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로가 다름아닌 고블린들이 자주 사용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그는 오크 족장이 지닌 능력이 추적과 연관이 있을거라는 추측을 내렸다. 그렇다면 오크 족장이 그들의 마을을 찾는것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마을에다양한 함정들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떠난다면 이제 더이상 지낼 장소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과감한 함정들을 만들 수 있기까지 했다.

첫번째 함정은 걸리면 좋고, 안걸리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졌다. 다름아닌 오크들이 집어먹기 바빴던 식량들이었다. 고블린들은 일부러 도주에 사용될 식량들을 제외한 모든 식량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식량들의 겉부분을 차지하는 식량들은 고블린들의 실험에 이용된 것으로, 완전히 독에 절여저있는 것들이었다. 오크들의 입에 섭취되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대부분의 식량들에 독이 전달되어 퍼져있는 상황이었다.

두번째 함정은 다름아닌 그들의 몸을 붙들고 있는 바닥이었다. 오크들은 내내 몰랐지만 그들이 딛고 있는 바닥은 고블린들이 개발한 물건으로 뒤덮여 있었다. 액체상태로 바닥에 뿌리면 일단 한번 굳는다. 그리고 굳은체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절로 녹아내린다. 그렇게 녹아내린 물체는 끈적거리게 바뀌는데, 이것에 닿았을 때 다시 떼어내기란 붙어있는 면을 완전히 뜯어내지 않는한 절대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세번째 함정과도 연관이 있다.

그룬돌이 간신히 상황을 파악할 무렵, 고블린들이 설치해놓은 세번째 함정이 아직 바닥에서 몸을 떼어놓지도 못한 오크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화륵, 화르륵-

그룬돌을 비롯한 많은 수의 오크들은 현재 식량창고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모두 고블린들의 식량을 강탈해 먹고는, 그자리에 누워서 수면까지 취했기 때문이다. 비좁아서 밖으로 나가서 수면을 취한 오크들을 제외한 모든 오크들은 이곳에 있다고 해도 좋았다. 특히나 적의나 위기를 느끼면 절로 눈을 뜨는 그들의 특성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불침번을 안세우기 때문에, 현재 오크들 중 멀쩡한 이들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오크들이 갇혀있다고 해도 좋을 창고의 안으로 슬금 슬금 불이 그 끄트머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창고의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던것과는 다르게, 한번 그 모습이 보이고 창고 전체를 불태우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이 이렇게 빠르게 번지는것은 다름아닌 그들을 붙잡고 있는 것들에 비밀이 있었다. 고블린들이 개발 혹은 발견했다고 해도 좋을 이것은, 한번 붙든것은 놓치지 않는다는 강력한 점성이 강점이었지만 또 한가지, 강력한 가연성 물질이라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어느정도 불이 붙는 다면 모두 소모되어 사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증명하듯이 죽은듯이 누워있던 오크들을 제외한 오크들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곳이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장소라는 점이었다. 이미 바깥은 온통 불에 휩싸여 있었으며, 이미 안에서부터 불을 온몸에 휘감게 된 오크들로서는 이곳에서 탈출하기까지 살아있기도 힘들어 보였다.

본래 고블린들도 오크들이 이렇게 단번에 걸려줄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다만 오크들의 이동경로를 보면 어떤식으로 이동할지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출구 부근을 오크들이 마을에 도착하는 시점에 맞춰서 끈적이는 상태로 만들어지게 장치해 놓고, 다른 장소는 조금씩 순차적으로 작용하도록 장치해놓고는, 나머진 운에 맡겨두었다. 최악의 상황에는 어느정도라도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만든 함졍들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정도 잡아두는 것이 아닌 하루 온종일을 잡아두고 있게된 셈이었다. 고블린들이 끈적이라고 부르는 이 물질은, 절대 떨어지지 않지만 그것도 유효시간이 있었다. 하루가 넘어가는 시점이면 그 효능이 다해 다시 굳어서는 몸에 붙어있다면 툭툭 떨어져 내리고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에서도 따로 떨어져 말려들어가선 구체로 변한다. 타는 성질은 여전하기에 그 이후는 불에 태우는 연료로서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불이 난 시점은 출구 부근에 설치되어있는 끈적이가 슬슬 그 효력을 다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발을 잡아둔뒤 마지막에는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고자 시간에 맞춰서 불이 일어나도록 장치해놓은 것이다.

불로 간신히 움직이는게 가능해진 오크들은 빠르게 출구를 향해서 달려갔다. 다만 오크들이 하나같이 몸상태가 좋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그나마 그들이 도망이라도 칠 수 있는 것은 그룬돌의 덕분이었다.

불이 스며들어 화르륵 타오를 무렵, 그룬돌은 움직이지 못하는 몸에 불까지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라면 가죽과 피부가 불에 버틸 수 있지만 무한정 버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타 죽는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자 그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오크들이 슬슬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이 물질이 열에 의해서 타올라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사이 불은 어느새 그를 향해 다가왔고, 그는 몸이 불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도 신음하나 내뱉지 않고 버텼다. 희망이 보이기 때문인지 그러는 그에게는 웃음기까지 보였었다. 몸에 달라붙은 불을 이용해서 그의 몸을 붙들고 있던 물질을 불태운 그는 이미 도주하기 시작한 오크들의 틈바구니로 들어가, 가장 앞으로 치고 나갔다.

마침 오크들은 길이 가로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두를 빠르게 차지 할 수 있었다. 그는 막고있는 장애물마다 온몸으로 부딪쳐서 불길과 함께 걷어냈다. 그렇게 오크들이 지나갈 크기의 통로가 마련되었으며,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룬돌이 그대로 온몸으로 돌진해서 똑같이 길을 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룬돌을 선두로 일단의 오크들이 불타는 고블린들의 마을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탈출한 오크들은 간신히 그 몸을 바닥에 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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