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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82화 (182/374)

182화

준비

오크들은 계속해서 진격했다. 초반에 있었던 방해가 마치 거짓이었던것 같이 길을 걷는 그들에게 방해는 거의 없었다. 여전히 점점 빽뺵해지는 나무들로 길이 햇갈리도록 되었지만 오크 족장 덕분에 그다지 방해라고 할만한 것도 못되었다.

어떻게 길을 정확히 찾는것인지 그들은 더 이상 함정의 방해도 받지 못하였다. 다만 오크 족장은 여전히 느긋했다. 일절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었다.

오크들은 시시각각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침투해들어갔다. 그리고 당연히 고블린들은 그들을 두고 보고만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함정과 화살로 구성되어 첫번째 방어선으로 삼았다면, 두번째 방어선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곳 만큼은 길을 제대로 찾아왔던 오크 족장의 방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쫓아온것은 다름아닌 루프스가 남긴 흔적. 그것도 그가 보는것은 하나의 선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선은 그가 지나간 경로를 보여주지만 그가 지나가면서 밟았던 지점들을 보여주는것은 아니었다.

한참 나무들의 틈 사이를 지나가던 오크들은 드물게 나무가 적은 지점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크들은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굳건하게 그들의 몸을 받쳐주던 잡초들이 자라나고 흙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점점 축축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흙에 물기가 살짝 뜨는 정도였다. 딱히 걸음을 방해 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길을 가다보니 살짝 물기만 있떤 흙은 어느새 축축해 졌으며, 점점 갈수록 축축함이 질척거림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종래에는 늪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구욱?!"

철퍽 철퍽

"그그읏!"

오크들이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선두에 있던 오크들이 이미 늪에 발을 디딘 후였다. 그리고 동시에 늪은 오크 족장의 발마저 잡아챘다.

오크 족장도 바닥이 늪으로 바뀐것을 알아차리는게 늦은 것이다. 홀린듯이 눈 앞의 흔적만을 쫓던 그는 어느새 방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격하는 동안 오크 족장은 직접적으로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가 보는 것은 버릇적으로 함정이 있는 장소는 피해서 다니던 루프스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동안 부족을 키우면서, 항상 함정을 거주지역의 주변에 깔아놓았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그가 만들었던 함정들 중 자잘한 함정에 걸리는 일도 비교적 자주 있었다.

함정을 자주 설치하면서, 평소에는 자잘한 함정들은 작동되지 않도록 하면서 그런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루프스로서는 부족 바깥으로 돌다가 느닷없이, 그것도 자신이 만들었던 함정에 빠져버리는 것은 트라우마와 같이 남아있었다. 더구나 대부분 혼자 있을 때라 다행이었지만 간혹, 부하들이 옆에 있을 때 그런일이 벌어지면 한동안 창피함 때문에 눈도 못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함정지역을 일일이 다 떠올리고 다니면서 피해다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흔적을 따라온 오크 족장이 그동안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한 일등 공신이었다. 바로 옆에서 함정에 빠지는 동족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그 몰골은 함정에 빠졌던 다른 오크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늪지대에서는 그런 요행을 기대 할 수 없었다. 이곳은 각 마을마다 루프스와 프리트가 함께 돌면서 만들어낸 일종의 함정지대다. 그의 능력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땅과 동화되어가는 이곳은 천연의 늪지대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수제작으로 만들어진 돌다리를 밟아서 건너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돌다리는 늪지대의 수생식물들과, 마치 젤과같이 흐물흐물하게 녹색으로 변질되어 식물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바닥이 돌다리를 가려주고 있었다.

당연히 돌다리는 보이지 않았으며, 그 위치를 짐작도 못하던 오크들은 늪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루프스가 지나던 경로만을 보던 오크 족장도 피해갈수 없었다. 특히나 그는 그가 지나는 경로의 초반에는 제법 많은 수의 돌기둥이 다리의 하나로서 박혀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깊숙이 들어가 있었으며 그가 다리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발은 늪지에 박혀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발을 빼려고 힘을 주는 순간 반대쪽 발이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양쪽 발을 띄우려고 하니 박찰 땅이 없어 점점 깊이 바닥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나마 운이 좋아 얼결에 뻗은 손이 돌기둥에 닿아 그곳을 기점으로 바깥으로 몸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한참의 시간동안 모습조차 보이지 않던 고블린들이 그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쐐액- 퍼석!

오크 족장은 물론, 몇몇의 돌기둥을 잡는데 성공한 오크들이 늪지에서 몸을 빼내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화살이 날아들어 그들이 짚고있는 돌기둥을 때려부숴 버렸다. 그나마 그들의 자유롭던 손마저 늪지로 가라앉았으며,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느라 이미 힘이 빠져있던 몇몇 오크들은 그대로 늪지의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건 오크 족장도 마찬가지의 처지였다. 만일 화살이 그를 노리고 쏘아졌다면 그 피부를 뚫지 못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가장 약한 부위인 눈을 맞았다고 하더라도 상처입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기둥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고블린 하나의 무게만 버티면 되는 돌기둥은 평범했다. 제법 힘을 쌓은 고블린들이 쏘는 그들이 한껏 힘을 실은 화살을 버틸 방도가 없었다.

결국 오크 족장마저 늪에 가라앉으면서 오크들은 늪지대에 가로막혀 허둥지둥 하기만 할 뿐이었다.

족장이 사라지면서 오크들은 사분오열 되었다. 다시 되돌아가는 오크가 있는가 하면, 허둥대다가 마찬가지로 늪지에 빠져버린 오크들, 늪지를 피해서 돌아가려다가 함정에 빠져 목숨을 잃는 오크들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에 멍하니 있던 이들은 늪의 건너에서 쏘아지는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고블린들은 무사히 오크들을 막아내는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안도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텁-

늪지의 끝에 수생식물들을 온몸에 휘감은 팔이 나타나 땅을 짚은 것이다. 팔이 하나가 나타나고 곧 이어 반대쪽으로 추정되는 팔이 나타나더니 그 몸을 바깥으로 끌어 올렸다.

"푸헉- 크허헉! 그오오오오오오!"

입안에 머금고 있던 녹색빛을 띄는 물과 흙이 섞인 무언가를 토하듯이 뱉어내더니 포효성을 내질렀다.

다름아닌 지금까지 숨을 참고 밑바닥에서부터 걸어 이곳까지 도착 한 오크 족장이었다. 늪지가 비록 프리트에게서 나타난 것이라지만, 그도 사용할수 있는 힘에 한계까 있었기 때문에 그 깊이가 오우거들이 바닥에 잠기는 정도의 깊이였다. 그가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끝이 없는 깊이로 느껴졌겠지만 그저 늪으로 바꾸는 정도로만 사용했기에 그 깊이가 비교적 얕았던 것이다.

얕았다고 하더라도, 오크 족장이 그곳으로부터 몸을 끌어올리는데는 힘겨운 과정을 겪어야 했다. 늪에 들어와 있는것은, 물에 빠진것과는 달랐다. 마치 물 속에 빠져있는 것과 같은 느낌 때문에 거동에 불편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익숙치 않은 늪의 안이다 보니 오크 족장의 생각보다도 몸을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단단히 휘어잡고 있는 늪의 안에서부터 힘으로 한걸음씩 걷기도 힘들었다. 어떻게든 걷고, 힘겹게 숨을 참으면서, 건너편의 흙속에 팔을 파묻고는 몸을 조금씩 끌어올려 건너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는 아직 자신이 목표로 한 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자신이 얕보던 이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했다는것에 화가났는지 눈앞의 고블린들을 보면서 거친 포효성을 내뱉었다.

직후 그는 주변에서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는 고블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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