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준비
퍽- 콰직!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오크를 후려친 녀석은 이어서 닥치는데로 근처에 있는 오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목에 단검이 박혔던 오크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간신히 주먹을 휘두르는걸 억누른 오크들도 없는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최소한 움직임이 매우 굼떠졌다.
은신처에 숨어서 화살을 날리던 고블린들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오크들의 진격이 멈칫하자 은신처를 뛰쳐나간 그들은 갑작스레 공격해오는 아군의 모습에 허둥지둥하는 오크들을 공격했다.
고블린들이 직접적으로 시야에 들어오자 오크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도 그들을 노리고 무기와 주먹을 휘둘렀다. 이전에 고블린들이 만났던 오크들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오우거들의 밑에서 무력하게 시키는 일만 반복해왔던 오크들을 생각하면서 얕보던 고블린들은 그들의 공격에 당했으며, 만일에 대비해 방심하고 있지 않던 이들은 혼란을 틈타 오크들의 목을 따는데 성공했다.
"후퇴!"
오크들의 혼란이 어느정도 진정되며, 동족을 공격하고 괴로움에 주저 앉았던 상급 이상의 오크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 할 무렵이었다. 고블린들을 이끌던 한 고블린이 한창 오크들과 싸우던 고블린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싸우는 와중에도 시야를 넓혀 오크들의 전체적인 동태를 살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명령이 떨어지자 오크들과 죽고 죽이던 고블린들은 방어 일변도의 태세로 바뀌더니, 틈을 만들어내고는 다시 나무를 타고 오크들에게서 멀어졌다.
재빠른 고블린들의 움직임은 오크들이 쫓기 힘들 정도였다. 간신히 혼란이 수습되고 반격하려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오크들은 닭 쫓던 개 처럼 도주하는 고블린들을 놓아 줄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부하들인 오크들이 어떤 상황이던 상관하지 않고 멈추는 일 없이 계속 발걸음을 옮기던 오크 족장에게는 모두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고블린들이 도망치던지 말던지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은 그는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애초에 고블린들도 일부러 그는 피해서 오크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발걸음이 잠시라도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는 부하들이 길을 잘못 들던지 말던지 묵묵히 눈앞에 보이는 흔적을 따라갈 뿐이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에는 여전히 강자의 흔적이 보이고 있었다. 그 밖에도 다양한 흔적들이 보이기도 했으며, 제법 강한 녀석까지 있음을 파악했지만 그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느긋한 발걸음으로 오크들이 갔던 길과는 다른, 정확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사라지고 혼란이 어느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린 오크들은 어느새 그들을 앞서가기 시작한 족장을 쫓아갔다.
첫 습격이 생각보다도 무사히 끝난 직후, 마인은 고블린들의 상태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이번 습격으로 생겨난 사망자가 5체, 부상자가 58체로 피해는 예상보다 미미한 수준입니다"
마인은 보고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북쪽 마을에는 오크들과의 싸움을 겪었던 이들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중 절반정도가 그 전, 루프스와 함께 부족을 짓는데 함께했던 이들이었던 것이 피해를 줄이는데 주효했다.
오크들은 오우거와의 전투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아니, 성질은 비슷했으나 보유한 힘에서 오는 차이가 컸다. 오우거들의 힘에 굴복했던 오크들은 그들에게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마 말을 듣지 않자 오우거들이 잡아먹었거나, 별다른 저항조차 못 할 정도로 힘에서 차이가 나니 반항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 나타난 고블린들은 왜소한 몸도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약해보이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오우거들에게 쌓인 분풀이를 하는듯이 보였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우거들에게 대항도 못하던 오크들. 오우거들을 상대하려던 고블린들이 오우거에게 굴복한 오크들에게 질리가 없었다. 오크들은 무모하게 고블린들에게 달려들었고, 고블린들은 간단히 그들을 처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오크들은 그들과는 매우 달랐다. 고블린들을 향해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점은 똑같았지만, 오우거에게 굴복했던 오크들이 악에 받쳐 분풀이를 하듯이 덤벼들었다면, 지금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오크들은 투지를 불태우며 충분한 힘을 가지고 덤벼들었다.
자포자기한 이들과 승리를 목표로한 이들의 차이는 상당했다. 힘에서부터 차이가 났지만 혼란속에서 회복하는 속도도 상당한 차이가 났으며, 서로 협공을 하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났다.
다행히 오크들을 얕보던 이들이 초반에 죽어버리면서 아직 오크들을 얕보던 고블린들의 긴장을 쭉 당겨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피해량을 줄이는데 큰 역할이 되어 준 것이다.
"오크 족장의 발을 잡지는 못했지만... 다른 오크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있어서 다행이군"
마인이 보기에도 녀석들이 진격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크 족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오크들이 그저 묵묵히 오크 족장을 따라 나서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르다가도 감정에 맡겨 몸을 움직이거나, 오크 족장의 앞길을 막는 것은 그들이 알아서 치워버리고는 했다.
특히나 곳곳에 깔려있는 함정은 그가 움직이기 힘들도록 만들어주는 주범이었다. 당연히 오크들은 앞으로 나서서 함정들을 미리 작동 시키거나, 파괴하면서 그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화살이 날아올때도 일부러 앞으로 나서서 그에게 화살이 닿는것 조차도 막아서기도 했다.
"그런데... 저 오크는 어떻게 이곳의 길을 알고 있는 거지?"
마인은 그의 앞길을 치워주는 고블린들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라도 막았다는 사실에 흡족해 하기도 전에, 오크 족장이 어떻게 정확한 길을 찾아 발걸음을 내딪는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곳곳에 함정이 마련되어 있는 숲 속에서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함정을 피하면서 전진했다. 간혹 함정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도 그를 막아서지는 못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듯 보이지만, 마인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 오크가 정확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그의 불안감을 재촉했다.
"어쩌면, 족장께서 원군을 끌고 올 때 까지 이 북쪽 마을은 버티지 못 할 수도 있겠군"
어두운 안색을한 마인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떠나간 루프스가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원군을 데리러 본진으로 돌아간 것이기 때문에 대략적인 시간을 계산 할 수 있었다. 지금쯤 그는 한창 원군을 모집 중일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원군을 이끌고 이곳에 도착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눈 앞에 있는 오크의 모습을 보니, 언제까지고 이곳에서 버티는것은 불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인은 어떻게든 그의 진격을 막기 위해서 다시 한번 움직이기로 하였다.
그 동안 휴식을 취하며 몸을 가다듬고 있던 그의 부하들도,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도 오크들이 더 이상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꺼림칙함을 느꼈다. 특히나 잘못 하면 그들에 의해서 이 북쪽 마을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쓸려버릴 수 도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을 따로 빼놓는 역할을 가진 이들을 제외한 고블린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부터는 영역을 침투한 오크들을 다시 밖으로 내쫓아낼 작업을 이어야 했다.
마인을 선두로 그들은 숲의 최전선을 물리고는 바로 뒤쪽 두번째 방어선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조금이라도 오크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