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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80화 (180/374)

180화

준비

오크의 포효소리로 짐작되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소리가 들린 직후, 바로 전날까지 마인이 숨어있던, 바로 얼마전 고블린들이 습격받았던 지점 근처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듯 쿵 하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꽥꽥 하는 돼지 멱따는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파괴되고 찌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숲의 선두에 숨어있는 마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마인은 적의 등장에 긴장하였다. 상대는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왔던 이들과는 다른 이였다. 루프스가 떠나면서도 그와 자신이 가진 무력은 비슷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여전히 그의 안에서 충격으로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그와 가까운 곳 까지 도착했으니 그는 긴장 할 수 밖에 없었다.

"오크 녀석들을 물리치는게 목표가 아니다. 족장께서 지원을 데리고 이곳에 도착 할 때까지 버티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마인은 나직히 읊조리듯이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미 마을의 방어를 준비하도록 지시하면서 전달한 사항이기는 했지만, 괜스레 드는 불안감에 그는 주변에 있는 그의 부하들에게 재차 강조하듯이, 그리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듯이 이야기하였다.

그의 의도를 알고 있는지, 혹은 모르는지 아리송한 태도의 고블린들이었지만 그저 묵묵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잠시의 시간동안 각오를 다지는 사이, 어느새 오크들의 무리가 그들의 시야에 들어서는 위치까지 도달했다. 그 때 부터 약간의 긴장감만 유지하면서 느긋한 태도였던 고블린들이 온 몸을 한껏 낮추고, 숨죽여 다가오는 오크들에게 집중했다.

오크들은 여기저기 다치고 온몸에 흙먼지를 묻히고 있는것이 딱 보아도 함정에서 뒹굴다가 나온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우스운 꼴을 하고 있다지만, 그 기세까지 우숩지는 않았다. 싸우러 왔더니 생각지도 못한 방해로 정신 집중이 흐트러진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면서 고블린들의 거주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꿀꺽

오크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거리가 가까워지자 고블린들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오크들은 숲의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고블린들은 오크들이 그들이 대비를 한 영역에 들어섰지만 가만히 숨 죽이고 기다렸다. 목표는 오크들의 발을 묶거나, 지원이 올 때 까지 버티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오크들이 모두 숲 안의 숲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에 진입하고, 어느정도 깊숙이 들어오자 고블린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쿵! 쿵! 쿠구구궁!

함정에 계속 당해버리는 바람에 한껏 열을 내면서 고블린들의 영역으로 짐작되는, 한층 더 울창한 나무로 뺵뺵이 들어차있는 장소로 오크들은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들의 뒷편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자 지금까지 당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길목을 내주고 있던 나무들이 우수수 쓰러지는걸 발견 할 수 있었다. 쓰러진 나무들은 오크들이 들어선 길목을 막아섰다. 그리고 쓰러지는 나무들은 마치 도미노 처럼 그 옆에 있는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졌고, 한동안 계속된 땅울림이 멈춰지자 오크들이 뒤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불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몰랐겠지만, 오크들이 들어온 지점은 고블린들이 들어오는 지점과 같은 곳이었다. 당연히 그곳에는 함정이 설치되어있지 않았으며, 고블린들이 그들을 끌어들이느라 일부러 함정들이 작동되지 않도록 막을 필요도 없었다.

쓰러진 나무에 의해서 길이 완전히 막히자, 오크들은 순간 어리둥절 했지만 애초에 그들은 고블린들에게서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평정심을 되착고는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 고블린들의 방식에 화를 내면서 점점 더 안으로 들어서려하였다.

그렇게 오크들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핑! 핑- 피핑-

오크들에게 화살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나무 때문에 한층 날카롭게 함정을 경계하던 중의 갑작스러운 습격이었다.

"크억!"

"구어억!"

피부를 뚫고 그 안의 살갗으로 찔러들어가는 화살촉들은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어찌나 튼튼한 녀석들인지 그 공격에 죽는 녀석들은 소수였다.

또 당했다는 생각인지 오크들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숲의 안쪽을 향해서 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많은 수의 오크들이 가장 선두에 있던 족장을 추월해서 안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오크 족장은 그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지, 자신을 추월하는 이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면서 호로 천천히 오크들의 뒤를 걸었다.

선두로 뛰어나간 오크들은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헛갈리게 자라나 있는 나무들의 틈 사이로 알맞은 길을 찾는 것은 이곳에서 사는 고블린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처음 이곳에 와본 오크들이 알맞은 길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졸지에 함정지대로 뛰어든 그들은 갑작스레 바닥이 꺼지고, 정면이나 측면에서부터 통나무가 날아들거나, 그물이 덮쳐들기도 했다.

그들이 함정에 허우적거리는 사이에는 숨겨진 은신처에 몸을 숨긴 고블린들이 화살을 쏘아보냈다. 게다가 은신처가 한둘이 아니며, 하나의 화살을 쏘고 옮기고를 반복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오크들이 빠르게 나무를 넘나들며 다가가도, 운 좋게 하나 둘 정도를 잡을 뿐 고블린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오크들에게도 큰 피해는 입힐 수 없었다. 다만 오크들의 수가 고블린 마을 두개에서 세개정도는 합친, 루프스가 짐작하고 정찰로 확인했던 수 보다도 훨씬 많은 수였다. 그리고 함정이나 기습에 수가 줄어드는 것도 중급이나 하급 정도의 전력들, 오크들이 별로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그리고 부족을 이룬 몬스터들 대부분의 중심 전력인 상급 이상의 전력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처참히 당하고 있는 오크들의 사이에서도 그들은 날아오는 화살은 피부를 뚫지도 못하고 튕겨나가며, 덮쳐오는 그물은 들고있던 둔탁한 검을 휘둘러 찢겨버리고, 밑으로 꺼지는 함정은 땅이 무너지기 전에 뛰어넘으며, 갑작스레 닥쳐오는 통나무 함정은 역으로 통나무를 박살내면서 통과했다.

함정지대는 그 이름값을 하겠다는 듯이, 오크들이 하나의 함정을 어떻게든 피하고 세걸음 이전에 새로운 함정이 나타날 정도로 온통 함정 투성이였다.

다만 우격다짐으로 별 피해 없이 뚫어버리는 상급과 최상급 오크들에 의해서 오크들은 파죽지세로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들어 갔다.

원거리에서 오크들의 진입을 저지하려던 마인은 그게 실패할듯이 보이자, 다음 단계의 작전을 실행했다.

함정들을 힘으로, 그리고 단단한 몸통으로 부딪히고 파괴하면서 돌파하고 있는 오크들과, 그들을 쫓아가면서 피해를 입은 오크들로 일직선으로 돌파하면서 그들의 틈바구니는 혼잡한 상황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오크들이 수시로 바뀌며, 앞서나가던 이들도 함정이 아닌 오히려 동족에 의해서 피해를 받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들의 틈 사이로 한줄기의 초록빛 아지랑이가 파고들었다.

푹!

혼란한 상황에서도 선두를 유지하던 한 오크의 목에 작은 단검이 박혀들었다.

그것이 시작이라는 듯이 동시다발적으로 선두를 달리던 오크들의 목에 하나같이 단검이 박혀들어갔다. 하지만 오크들도 그 강건해보이는 신체는 장식이 아니라는 듯이, 오우거들 보다도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갔다.

목에 박힌 단검을 힘으로 뽑아내고는 뒤로 돌은 오크는 자신을 공격한 이들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띄는 것은 오로지 동족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화풀이를 하듯 바로 뒤에 선 오크를 향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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