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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77화 (177/374)

177화

준비

오크 부족에 도착한 루프스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투명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루프스가 숨어든 부족은 과거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보고로도 들었었지만 그가 직접 확인했던 오크들이 지내던 움막들이 하나같이 당시와 다른 점이 없었다.

오크 부족은 이전에 있던 곳에 비해서는 전체적으로 축소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수 없다고 보았다. 그간 그들이 수를 늘렸다고 하더라도, 그에도 한계가 있다. 루프스와 고블린 정찰병들이 확인한 그들의 부족에는 예전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 없을 정도로 오크들의 전체적인 수가 줄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루프스가 그들을 공격하기를 포기한 이유였었다.

그 이후에는 활동하는것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주기적으로 감시했을 때 그들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비록 정찰병들이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것에는 실패했다지만, 수가 크게 늘어났었다면 그 영향이 외부로 보이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크 부족의 크기가 작은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루프스는 이정도 크기의 오크 부족을 보면서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오크들의 수와 시간의 경과를 고려하더라도 그들의 수가 계산과 너무 차이난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 의문은 생각보다 빠르게 풀렸다. 활발한 오크들의 활동들을 보면서 그들의 동태를 살피던 그는 어느 오크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르륵, 돌아온 오크. 족장한테 또 도전?"

"크킁 반항도 못하고, 오크 졌다. 족장 천막 장식 한다"

'돌아온 오크? 그럼, 흩어졌던 녀석들이 다시 모이고 있는건가?'

루프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 어째서 이들의 수가 이렇게 늘어 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루프스의 부족에서는 오크들이 사라진 뒤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크들이 어디에 새로 부족을 세웠는지, 흩어졌던 오크들이 어디에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끊은 사이에, 이녀석들은 흩어졌던 동족들을 모으고 있었다는 거군'

게다가 오크들의 부족은 루프스의 영역과 그렇게 떨어져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흔적을 잘못 보고 살짝 해매긴 하였지만, 제대로 위치만 안다면 북쪽 마을에서 이곳까지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그것도, 기병들이 늑대들을 타고 이동한다면 더욱 빠르게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는 일단 오크 부족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일단 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이곳에 자리잡은것은 알았으니, 그에 대한 대처가 시급했다. 특히나 이전과 같은 기습이 벌어 질 수 있다는걸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루프스는 과거 코볼트들과의 전투를 기억하고는 더욱 열심히 오크 부족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하자 그는 이들이 어째서 잠복을 해서까지 그의 부하들을 공격했는지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우드득- 그드득-

처음엔 생각보다 큰 오크 부족의 모습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세세히 살피고자 하니 바로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크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를 먹는 모습이었다. 다른 색들이 섞여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녹색이 바탕이 된 피부색을 가진 살점들이 오크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외에도 튼실해 보이는 어떤 몬스터의 뒷다리로 추정되는 부위를 물어뜯는 오크도 있었으며, 가장 많은 오크들이 먹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랫맨들이었다.

그걸 알 수 있었던 것은 머리는 먹지 않는 오크들이 각종 몬스터들의 머리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듯이 버려, 그것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랫맨들의 머리였다. 그 다음은 코볼트들의 머리였는데, 그는 딱히 그쪽에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으므로 아마 떠돌이들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다음은 놀랍게도 그들의 동족인 오크의 머리였다.

죽어 머리만 남은 이들을 살피니 대부분 양 눈이나 귀가 없는 이들이 있었으며, 드문드문 보이는 그들의 신체는 하나같이 멀쩡한 것이 없었다. 사지가 떨어져 나갔거나 곳곳에 이미 아물었지만 크게 찔렸었던 듯한 자국들이 있는 시체들 뿐이었다.

'전력이 되지 못하는 녀석들은 먹이로 써먹은건가?'

루프스는 찌푸려지는 표정을 제어 할 수 없었다. 동족들을 쓸모없다는 이유로 먹이로 사용한다는 것에 혐오감을 느낀 것이다.

그는 과거 동굴에서 살아가던 시절, 동족들을 죽여서 잡아먹어야만 할 뻔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동족포식으로 수를 불렸던 랫맨들을 보기도 했었다.

함께 생활하던 이들을 잡아먹을수도 있다는 것은 그에게 스트레스로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랫맨들이 떠올랐던 그는 더욱 혐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억지로 생각을 끊은 그는 자리를 옮겼다. 그자리에 있다가는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며, 더 이상 그곳에서 알아 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뜬 그는 오크들의 부족을 외곽을 따라서 주욱 한바퀴를 둘러보았다. 오크들의 생활은 고블린들의 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밥을 먹으며, 산책하듯이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고, 필요한 물건들은 교환하고는 했다.

다만 한가지, 루프스는 그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고블린들이 훈련장에서 매번 돌아가면서 주기적으로 반드시 훈련을 했다면, 오크들은 부족 어디서도 훈련을 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것은 더욱 깊숙이 들어가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싸움이 붙어 죽일듯이 싸우는 경우는 보여도, 훈련을 하고 있는 이들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어느새 오크 족장의 움막으로 추정되는 장소와 가까운 곳 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비쩍마른 오크들이 천막에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니 그는 처음 이곳에 발을 딛었을 때 지나가던 오크들의 대화가 떠올랐다.

'장식품이 되었다는게... 말 그대로의 의미였군'

루프스는 천막에 매달려있는 오크들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오크들의 족장이란 자는 어딘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는 광경이었다.

동시에 적은 만만한 자도 아닌듯이 보였다. 한발 더 앞으로 내딛어 적의 수장이라는 자를 한번 살펴보고 갈까 싶었지만, 한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그의 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이 이상 들어간다면 그의 존재를 누군가가 확실히 알아차릴 것이라는 감각이었다.

그게 오크 족장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지는 그는 몰랐다. 하지만 루프스는 굳이 자신의 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굳이 오크 족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필요가 없으며, 이 상태라면 언젠가는 그와 마주하게 될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리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 깊숙히 들어가지 않고 그는 몸을 돌려서 오크 부족을 빠져나갔다.

'어쩌면 녀석은 이미 내가 자기 부족 안을 염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군'

이미 자기가 불길한 감각을 느꼈을 때 적인 오크도 비슷한 감각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과거 그들의 내부를 염탐하려 했던 고블린들이 실패했었다는걸 떠올리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일로 고블린들이 오크들을 주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임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잠겼던 그는 밖으로 몸을 빼내자마자 오크 부족을 중심으로 한차례 정찰을 하고는, 더 이상 다른 오크 부족은 없다는 확신을 얻고는 다시 마을을 향해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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