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준비
루프스와 프리트는 자리를 옮겨가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황이 그의 생각보다도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이 만나기만하면 싸우고 패싸움을 벌이면서 서로 못죽여서 안달일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지만, 그에 근접하고 있었다.
얼토당토 않은 일로 시비를 거는 일은 일상이었으며, 서로 눈빛이 안좋다는 이유로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살해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에 근접하는 사고들도 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군"
엘프들을 중개자로서 코볼트들의 힘을 이용하자는 제안이었다. 루프스는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고민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시찰을 통해서 결국 결심을 마친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멀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와서 해소하기에는 늦은 상황으로 보았다.
고블린들은 코볼트들을 깔보고 있으며, 그런 고블린들의 태도에 코볼트들은 화를 내면서 그들에게 시비를 걸기 바빴다.
"그럼 새롭게 코볼트 마을을 세우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입니까?"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는 그에게 나머지 요구사항도 전달했다.
"너무 떨어진 장소를 잡으면 안된다는건 알고 있겠지? 격리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건 생활상의 격리지, 군사적 격리까지 이어지면 안된다"
"당연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코볼트들을 격리까지 시켜서 그들을 돌봐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결정을 내린 둘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볼트들이 살아갈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것은 전투 이외에는 가장 큰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마을을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 프리트는 인원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코볼트들도 따로 자신들이 살 마을을 짓는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건물을 짓는것은 대부분 코볼트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인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루프스는 스콘드와 함께 다니면서 코볼트들이 새롭게 살아갈 장소를 수색하고 있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으며, 따로 그들이 자급자족이 가능할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찾아나선 것이다.
그들에게 한가지 다행인 점은 이곳 군락지는 바깥과 비교했을 때 그야말로 비할만한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지의 조건은 들어맞는 곳 보다 들어맞지 못한 곳이 더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덕분에 그들은 적당히 숲속 마을에서 떨어진 장소를 선정하는 것으로 부지선정은 쉽게 끝이 났다.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마을이 건설될 부지도 확보되자 실제 건설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부터는 루프스와 프리트의 손을 떠났다. 자재와 필요한 식량과 같은 물자들은 그들이 책임져 주지만 코볼트들이 세워야 할 마을은 그들이 설계부터 노동까지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되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루프스는 새롭게 지어지는 마을에 대해서는 관심을 접었다. 어차피 자리를 옮긴 코볼트들을 전적으로 담당하게 될 것은 그들과 같은 코볼트인 크링크였다. 그리고 코볼트 마을로 파견나갈 엘프는 그들의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고블린들이 주는 의견만을 전달해주는 역할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곳으로 파견보낼 엘프를 누구로 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주기적으로 교체하면서 파견하시는게 어떤가요?"
그에 대해서 상의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만난 엘라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제시한 의견이었다.
"주기적으로?"
"어차피 그곳에서 들어오는 소식들은 들으셔야 할거고, 한 곳에 오래 있게 하는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봐요"
"흐음..."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에 루프스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지?"
"다른 엘프들도 촌장님이랑 저 때문에라도 당신들과 협력은 하고야 있다지만... 아무래도 탐탁치 않아 하는 이들도 있거든요"
"그런 이들이, 엄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건가?"
"그것도 있지요. 그리고 그들을 파견보내려는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코볼트들을 감시하려는 의도시잖아요"
"그렇지"
"그럼 주기적으로 정보를 받으셔야 하는데, 그 때마다 파견나갔던 이들이 돌아오거나, 매번 정보를 듣고 올 이들을 파견하는것도 성가실게 분명하겠죠"
"음"
"그래서 파견을 보내자는 거예요. 특히나 엘프들 중에서도 별로 힘을 지니지 못한 이들을 추천해요. 그들이라면 호위를 위한 고블린들을 소수라도 파견하는게 가능할테니까요"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였다. 엘프들의 신뢰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곳에 고블린들을 전혀 파견하지 않는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워낙 사이가 안좋으니 완전히 떨으트려 놓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컸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 생각했던데로 이루어졌다면, 군사적 협력에서부터 큰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일상에서 반발하는 정도였다. 만일 함께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경우는 별다른 반발 없이 협동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아군이라는 인식이 그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기는 하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두 종족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 증거로 전투만 끝나서 복귀가 이루어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데면데면 하다 보면 전투에 한해서 아군이라는 인식 자체도 사라질 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들이 고블린들에게 익숙해져야 하니 엘프들의 호위로서 소수나마 그곳에 파견되는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교체를 한다면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짐작하는것이 가능하며, 정보를 얻기 위해서 수시로 인원이 빠져나가 일을 늘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네 의견대로 하도록 하지"
엘라의 의견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의사였다.
"그럼, 처음 파견나가는 것은 누구로 할 생각이지?"
"처음에는 제가 신뢰하는 부하를 맡길게요. 그녀라면 충분히 실태를 파악해서 다음 후임에게도 알려주는것은 잘 할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추천하는 것은 과거 그녀와 함께 루프스에게 잡혀온 경험이 있는 한 여성 엘프였다. 엘라가 루프스와 완전히 결합을 하면서 자동적으로 엘프 마을로 돌아갔던 그녀는, 지금은 엘프 마을에서 군사적 부문에서 책임자를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라면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도망쳐서 돌아오는 것도 가능 할 테고, 상황 파악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으니 믿을 수 있을 거예요"
엘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녀를 추천했다. 엘라의 강력한 추천을 루프스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추천했을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루프스는 엘프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숲속 마을을 향해서 올라갔다. 이미 강변 마을은 그의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맡아주고 있는 만큼 굳이 들러야 할 필요를 못 느꼈으며, 여전히 적들이 수시로 침투해오는 숲속 마을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숲속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코볼트들의 이동을 위한 준비가 슬슬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직 새로운 코볼트들만의 마을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그들만의 마을이 생긴다는 소식에 당장 자리를 옮기고 싶어 들썩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급한 이들이 이 시기에 이미 이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코볼트 마을이 완성되자, 이미 준비는 끝마쳐 두었던 코볼트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