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준비
잠시 고심하던 루프스는 눈을 뜨고는 바로 그의 앞에 앉아있는 프리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좀 더 고민해 봐야겠군. 일단 먼저 분위기나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고"
결국 그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둘을 갈라놓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지를 그는 아직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 두 종족의 사이가 어떤지를 확인하고자 그는 프리트와 함께 밖으로 나가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금 그들이 고민하는 의제는,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운 사항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고 결정하기 어려운것도 사실이다.
프리트의 움막을 벗어난 둘은 숲속 마을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루프스와 프리트의 생김새는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루프스의 능력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꿔놓은채였다.
일반 고블린들처럼 모습을 바꾼 그들은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이 자주 마주치는 길목으로 들어섰다. 다름아닌 대장간 거리로 진입하는 진입로였다. 무기의 수리와, 새로 지급된 무기를 받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농사일에 쓰이는 쟁기나 낫과 같은 농기구를 주문하고 수리하기 위해서 이곳을 지나기도 한다.
루프스와 프리트도 비교적 잘 아는 거리였다. 무기를 직접 받으러가는 일은 없었지만 프리트는 만들어지는 물건들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서, 루프스는 혹시나 무슨 문제는 없는지 혹은 딸인 시에란을 만나기 위해서 들르고는 하였다.
둘은 다른 곳에 비해서 잘 알고 있는 장소인만큼 이곳에서는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확인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곳은 없으니, 위장해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캬아악! 이 망할 놈이!"
"컹,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멍청하고 허약한 놈들 답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구나, 컹!"
별 문제는 없겠지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목에 접어든 둘은 그들의 생각을 꺠부수듯 한참 다투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어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확인해 보니 한 코볼트와 고블린이 서로 말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좀 떨어진 거리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나머지 고블린들과 코볼트, 그리고 또 저런다는 듯이 익숙하게 슬쩍 ㅂ고는 그대로 지나치는 이들까지 있었다.
지나다니는 이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곳에서 이런 일이 비교적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본 루프스는 이번에는 싸우는 고블린과 코볼트를 살펴보았다. 고블린의 허리춤에는 갓 새로 만들어진듯 때도 안 탄 무기를 차고 있었다. 그에 반면 코볼트가 지니고 있는 무기는 오랜시간 사용했었는지 아직 쓸만은 해 보이지만 손잡이가 헤져 있었다. 그리고 원형을 이루었던듯이 보이는 코등이도 파손되있는것이 별로 상태가 좋아보이는 검은 아니었다.
눈에 띄는것만 보자면 무기로 인해 다툼이 벌어진것 같았다. 하지만 보다 확실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 루프스는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았다.
"키익, 내 무기 내가 받아가겠다는데 왜 자꾸 시비를 거는거냐!"
"컹컹! 네놈 같은 녀석들이 무기란 무기는 다 가져가니까, 우리들이 가져갈 무기가 없다! 그러니 네 무기를 받아가야겠다!"
"캬아악! 이 망할 개새끼! 왜 아까부터 개소리만 하는거야아아!"
"컹! 봐라. 이런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싸우라는 거냐! 그러니까 네 무기를 내놔라!"
"크아아아! 이 멍청한 개대가리야! 그럼 정식으로 절차 밟아서 받으라고! 아까부터! 이야기! 하고! 있는데! 왜 자꾸 딴소리야!"
고블린은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코볼트를 향해서 짜증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주위의 반응도 좀 이상했다. 다툼은 자주 있었던듯 지나가는 이들은 표정만 좀 찌푸릴뿐 태연한 모습이었다. 다만 그것은 고블린들에 한정되었다. 코볼트들은 몇몇은 남아서 잘한다고 응원하고 있었으며, 또 몇몇은 저런 모습이 창피하다고 고개를 돌려서 모른척 빠르게 갈길을 가고 있었다.
고블린과 코볼트의 싸움을 보면서, 루프스는 옆에있는 프리트에게 물었다.
"... 코볼트와 고블린들에게 무기지급 건에서도 문제가 있었나?"
그가 기억하는 바로는 그런 점은 전혀 없었다. 함께 전투에 나서는데 약간의 차별이 있기는 했지만, 무기와 같은 장비의 지급에는 일말의 차별도 주지 않도록 엄히 지시해 두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하는 것은 각각 고블린은 고블린들의 대장에게 코볼트는 코볼트의 대장에게 요청을 넣도록 되어있었다. 그리고 각각 요청을 듣고 그것을 대장장이에게 전달한다. 물론 대장장이들은 인간이기에 똑같이 이종족인 고블린과 코볼트들을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그럴일은 없을겁니다. 아마 저 코볼트는 단순히 시비가 걸고 싶은 거겠죠"
프리트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결론을 내릴 수 있던 것은 시비를 걸고 있는 코볼트가 단순히 그러고 싶어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렇더라도, 저건 좀 심할정도군요. 동족들조차 창피하다는 듯이 떠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말이죠"
"음..."
루프스는 그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고블린들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 할 뿐인 단순한 녀석들은 그런 코볼트의 모습에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코볼트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부끄러움은 오로지 그들만의 몫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행동들이 하나같이 너무 자연스럽군. 봐라, 보통 이런 싸움이 벌어지면 구경하기 바쁜 법인데 발을 멈추는 이들이 너무 드물다. 게다가 구경꾼들도 잘 보면 동족이라고 응원하는 놈들만 남아있다. 편가르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냥 구경하는 이들이 없는게 영 이상하군"
루프스는 눈을 게슴츠레 뜬채로 응원하고 있는 코볼트들을 바라보았다. 응당 싸움이 벌어지면 구경꾼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들이 어느 한쪽편을 드는것도 흔한 일일 것이다. 실제로 루프스가 고블린으로서 살아가면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족장으로서 자리잡은 이후로는 없었지만, 그 전에는 할 일 없는 동굴 안에서 자주 아무 이유 없이 싸움이 일어나곤 했었다.
"딱, 그때 싸움을 하도 많이 봐서 무덤덤해지는 표정이 저기 지나가는 놈들 표정이랑 똑같았지"
그때를 떠올리면서 그는 지나가는 고블린들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사이 고블린과 코볼트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단순한 말싸움에서 슬금슬금 주먹질을 동반한 싸움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퍽! 퍽!
"캬악!"
"컥, 컹!"
서로를 향해서 계속 주먹질을 하던 둘은 점점 힘이 들어갔지만 다툼은 금방 끝을 맺어야했다. 점점 격해지던 그들은 각자가 지니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한순간에 목숨이 달린 생사투로 이어질듯 하자 어느새 그들의 근처로 다가온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이 둘을 떼어내고는 각각 거주지를 향해서 끌고 갔다.
루프스와 프리트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싸움을 멈추는 모습도 어째 익숙해 보이는군"
루프스는 끌려가는 와중에도 버둥거리는 둘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내고 상대를 죽이고 말겠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악을 쓰는 그들에 비해서, 그들을 끌고가고 있는 이들은 무덤덤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먼저 들고 있던 검을 빼앗고, 팔을 단단히 잡고, 재빠르게 발을 묶고 있는 모습들이 한두번 벌어진 일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 했다.
"여기서 다툼이 얼마나 일어났었는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혀를 끌끌 차고 루프스를 봄녀서 프리트는 한번 조사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다른곳도 한번 살펴보지"
루프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곳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