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준비
지금은 한 부족을 이루고 있지만, 고블린과 코볼트의 갈등은 계속 있어왔다. 무력적 통합에 의한 폐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병합되고 한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다. 바로 얼마전까지 코볼트 전사들이 고블린들에게 참살을 당했으며, 그들의 지도자인 코볼트 왕은 처들어온 고블린들을 피해서 마을에 있는 나머지 코볼트들을 버리고 도주하던 중, 고블린 족장인 루프스에 의해서 참수당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코볼트들이 고블린들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하지만 빠르게 다음 세대가 태어나는 코볼트와 고블린들의 특성이 문제였다. 당시에 살고 있던 코볼트들은 앞서 말했듯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코볼트들은 그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들이 보고 따르던 어른들이 고블린들에게 쥐죽은듯이 지내는 모습은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들어도 별로 실감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고블린들도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고블린들은 고블린대로 코볼트들을 우습게 보는 성향이 있었다. 과거 이겼던 적이기도 했으며, 그 후에도 별다른 저항 없이 고블린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그들을 얕보게 만들었다.
어린 고블린과 코볼트들을 처음에는 함께 자라도록 놔두었었다. 두 종족이 화합하기를 바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키우는 이들의 사상과 감정들은 어린 두 종족에게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빨려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함께 자라는 두 종족의 갈등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작은 단순한 주먹질의 싸움이었다. 아직 어린 그들이기에 주먹에 실린 힘은 얼마 되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다행히 다툼으로 크게 다치기 전에 말릴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자 단순한 맨손 주먹질에서, 나뭇가지나 목각과 같은 도구를 들게 했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던 그들이 한꺼번에, 단체로 싸우게 된 것이다.
그 이후 그들을 키우던 이들에 의해서 고블린과 코볼트들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화합을 시키려 했던 것이 다툼의 화근을 낳았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외부의 적이 드문 시기에 일어났던 일들이기에 몇몇 어린 고블린과 코볼트가 목숨을 잃었지만, 그 수가 소수라는 점이었다.
갈등이 한껏 깊어진 상태에서의 격리는 이후 그들의 사이를 더욱 험악하게 만들었다. 그 단적인 예가 프리트가 이야기했던 고블린 기병과 코볼트들의 다툼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루프스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이미 어린시절부터 다투면서 자라나 사이가 험악한 고블린과 코볼트들이었다. 그런데 루프스는 그 중에서도 주로 고블린들과 함께 출전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코볼트들 보다 고블린들의 성장이 더 가팔랐다. 고블린들이 중급에 도달하고 있을 때 코볼트들은 간신히 괴어들로 최하급을 벗어나 하급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로 차이가 커졌다.
"다 족장 때문 아닙니까?"
"저렇게 다투게 될 줄을 내가 알았겠나"
프리트의 타박에 루프스는 머리를 긁적여 난감함을 표했다.
"어떻게든 사이를 진전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저력 증강을 위해서 흡수한 코볼트들이, 오히려 내부의 적으로 변질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딘지 모르게 태평한듯 보이는 루프스를 보면서, 프리트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동족을 두둔하지 않을 수 없다. 동족이라서 마음이 가는것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지닌 특성중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있기도 하고"
"이상번식 말씀이시군요"
프리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는 말을 이었다.
"게다가 상급 이상의 주력들은 대부분 고블린들이니 그러지 않을수가 없더군"
그의 말에 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닌 특성 이상번식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루프스의 특이성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몬스터로 제한되지만, 이종족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이질적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그가 지닌 다양한 능력들은 별다른 제한도 없이 마찬가지로 아군이라고 인식되는 이종족에게 적용되기까지 한다.
최초에는 그들도 그런 이질성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렴, 오랜시간 고립되어 지니고 있던 지식들도 다수 손실한 고블린들이 그것을 알아채는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루프스가 지닌 능력 중 이상번식은 그나마 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상급으로 올라서서 비슷한 능력을 개화한 이들이 소수나마 있었다.
상급에 올라서면 종족특성을 개화한다. 이 종족특성은 해당 종족에게 부여되는 일종의 버프효과다. 그렇기 때문에 큰 부족이면 큰 부족일수록 보다 상위의 몬스터들이 이룬 부족보다도 더욱 강력하다. 지금 루프스의 부족으로는 동급의 오우거를 상대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처음 루프스가 상급에 올라섰을 때 오우거들과 싸울 생각도 못했던 때에 비하면 크게 발전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종족특성에 의한 버프는 동족에게만 한정된다. 상급 고블린의 종족특성은 같은 고블린들에게 적용되며, 상급 코볼트의 종족특성은 같은 코볼트에게 적용된다.
그렇게 볼 때 보다 우세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고블린들을 루프스가 우선시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밝혀지지 않은 점이 여럿 남아있지만 그건 또 나중의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서로를 격리시키는 겁니다"
프리트는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는지 망설임 없이 루프스를 향해서 입을 떼었다.
"그건 이미 시도해본 방법 아닌가? 그게 결국 지금 이 상황까지 온것 같다만은..."
프리트의 의견에 루프스는 효과가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떨칠 수 없었다. 고블린과 코볼트의 격리는 이미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이야기 드리고 싶은건 그것이 아닙니다. 그건 어린시절 두 종족들을 서로 떨어트려 놓는거죠. 자라난 이후에는 다시 마주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방치해두고 말이죠"
"그럼 뭘 생각하고 있는거지?"
"완전한 격리입니다"
"...?"
고블린과 코볼트들을 완전히 격리시킨다는 프리트의 말에 루프스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린 고블린과 코볼트를 격리시키는건 실패였습니다. 이미 깊어진 감정의 골은 지울 수 없었죠. 특히나 성체로 자라난 이후에는 다시 만나기까지 하니, 감정이 희석되길 바라는것도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그러니 완전히 격리를 시키는 겁니다. 담당하는 구역도 바꾸는 거구요"
"아예 둘을 나누자는 건가?"
"그렇지요. 예전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고블린들만이 부족을 이루고 코볼트들만이 부족을 이루고 있었을 때로요"
"그럼 완전히 남남이 될텐데? 그렇다면 그들을 받아들인 의미도 사라지는 거고"
루프스의 대답에 프리트는 씨익 웃었다. 그도 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대책을 이미 생각해두고 있었다.
"지금 우리를 이루고 있는것은 고블린과 코볼트들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프리트의 대답에 루프스는 생각에 잠겼다. 프리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본래 고블린들 뿐이던 부족에는 세 종족이 더 자리를 잡았다. 하나는 일부 고블린들과 함께 기병을 구성하고 있는 세 눈 늑대들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코볼트들, 마지막 하나는 고블린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엘프들이었다.
"엘프를 이용하자라..."
프리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일반 늑대와 지능이 비슷한 세 눈 늑대들은 고블린과 코볼트들 사이에서 중재를 할 수 없다. 애초에 그들은 코볼트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으니 절대 불가능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니 자동으로 남는것은 엘프들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루프스는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프리트를 두고는 생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