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준비
스콘드와 한차례 순찰을 돌고, 파인피와 대련으로 하루를 보낸 루프스였다. 그리고 다음날은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프리트를 만나기 위해서 그의 움막을 향했다.
프리트의 움막은 그냥 여러 장식만 덕지덕지 달려있는 그의 오두막과는 달랐다. 지금 그가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는 좁은 구역을 제외하고는, 온통 글이 적힌 나무판자와 가죽 쪼가리 그리고 두루말이 들이 나무 탁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가 하면, 바닥에 이리저리 흐트러져 어지럽혀져 있었다.
무덤덤하고 거침없이, 프리트의 움막으로 발을 들이민 그는 배 위에 한 목판을 얹어둔채로 코를 골며 자고 있는 프리트를 향해 다가갔다.
전날까지 뭔가를 고민하고 있었는지 그의 주변에는 배 위에 올려진것과 같은 목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두 동강이 나있는 목판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변을 스윽 둘러보던 그는 이내 발 앞에 있는 프리트를 발로 툭툭 차기 시작했다.
툭 툭
아무말 없이 발로 툭툭 밀던 그는 그가 별 반응을 보이지를 않자 점점 발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툭- 툭- 퍽!
"케헥?!"
이내 발로 차는것과 같은 일격에 수면을 취하고 있던 프리트는 강제로 꺠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얕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던 그는 발로 차인 옆구리를 감싸 끙끙 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족장, 언제 온겁니까?"
고통에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는 눈앞에 무표정으로 서있는 그의 상사를 보면서 물었다.
"방금 왔다. 또 뭘 하다가, 이제서야 일어나는 거냐"
그를 깨우려 발로 차던 것은 족장인 루프스였지만, 그는 그런적 없다는 듯이 왜 이제서야 일어났냐고 타박했다.
"끄응, 아시지 않습니까? 아직 우리의 부족은 성장하는데, 부족한건 많으니 그걸 충족시키려면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하지 않습니까?"
멍이든것 같은 통증에 숨이 껄떡이면서 옆구리를 문지르는 프리트가 루프스에게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루프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발로 바닥을 대충 치우면서 앉았다.
"앉지"
그가 앉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프리트도 마지못해 그처럼 발로 바닥을 대충 치우더니 그대로 주저 앉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온겁니까?"
프리트는 여전히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현황 보고를 들으러 왔다"
프리트는 부족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 사고를 통괄하는가 하면, 식량, 무기, 거주지까지 그의 손에 분배될 자원을 조절하고 완성품들이 다른 이들에게 분배하는 것 모두 그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력을 움직이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실무를 그가 처리하고 있다고 봐도 좋았다.
실제로는 루프스가 해야만 할 일을 그에게 미뤄둔 것이다.
루프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프리트는 그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식량 상황부터 이야기 드리죠. 식량들은 여전히 대부분은 강변 마을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그 양은 늘어만 가는 고블린들과 코볼트들보다 훨씬 많은 양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여기 숲속 마을에서도 마찬가지로 식량이 생산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이곳에 머무는 이들을 모두 먹이기에는 부족해 한동안은 계속 강변 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야 할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강변과는 달리 여기서는 충분한 수의 동물들이 있어 본격적인 사육에 들어가고 있으니 시간이 지난다면 충분한 양의 고기도 확보 할 수 있을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프리트의 이야기에 루프스는 수긍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프리트는 이어서 다른 것들에 대해 보고를 했다.
식량의 다음은 광산에 대한 이야기였다. 광산을 맡아 광석들을 채광하고 있는것은 여전히 광부 코볼트들이었다. 오우거들의 밑에서 험하게 굴려지기도 했지만, 이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광산을 좋아하는 별종들이었다.
루프스가 한번 어째서 계속해서 광산에 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원한다면 그들을 광산에서 빼내 다른 코볼트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히 광산에서 채굴을 위해서 곡괭이를 휘두르는것이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그 뒤로 루프스는 오우거들의 손에 희생된 수만큼 보충을 해주기만 했을 뿐 식량을 전달하고 광석을 받아오는 작업에 한번씩 함께 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본 적도 없다.
광산에서 채굴되는 광석들은 항상 일정하며 대부분이 철광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간혹 구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광석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양은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광산에서 채굴해오는 광석들은 모두 숲속 마을로 들어온다. 그리고 강변 마을로는 꼭 필요한 일부만이 이곳에서부터 출발해서 전달이 된다. 대부분의 대장장이들이 숲속 마을로 이주했으며, 강변 마을에는 소수의 대장장이들만이 남아있기에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숲속 마을로 도착한 광석들은 대장장이들의 손에 의해서 고블린과 코볼트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사용할 무구들로 바뀐다. 프리트의 보고는 그렇게 들어오는 광석의 양과 만들어지는 무구, 그리고 무구가 어떤 이들에게 돌아갔는지를 설명했다.
다음으로는 거주지에 대해서였다. 거주지의 경우는 별달리 추가로 지어지는 건물은 없었다. 하지만 오우거들과 오크들에 의해서 무너진 건물들이 많았고, 현재 이루어지는 공사는 대부분 이 무너진 건물들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었다. 현재 무너진 건물들의 대부분이 원상복구가 된 상태이며, 그 외에 스콘드가 사용할 연구실용 건물이 하나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는 보고였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프리트는 다음 주제로 넘겼다. 다름아닌 숲속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변 마을의 경우에는 그곳에 머무는 최상급 고블린, 루프스의 자식 중 하나가 맡고 있어 그의 관할은 아니기에 오로지 숲속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을 다루고 있었다.
"한 고블린 기병의 파트너 늑대가 코볼트 하나를 물어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작은 코볼트가 시비를 걸었던게 문제였습니다만..."
"그런데?"
"그 코볼트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일부 코볼트들이 들고 일어나서 고블린의 처벌을 원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당사자 고블린은 코볼트가 시비만 걸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거라 주장하고 있었죠"
"결론은?"
루프스가 그래서 결과가 어찌되었는지를 묻자 프리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굳이, 분쟁의 씨앗을 남겨둘 이유가 있나요? 쌍방 과실로 고블린이랑 나대던 코볼트들 모두 목을 베어버렸죠. 이것도 그들이 그렇게 정예들은 아니라서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지만요"
"그래도 기병은 죽이기 껄끄러웠을건데?"
고블린 기병은 태어나서부터 늑대와 함께 자란 이들만이 될 수 있는 병종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병력 하나 하나가 중요한 병종이다. 특히나 코볼트들의 경우 늑대들과 상성이 좋지 않은지 함께 두면 둘 중 하나가 죽을때까지 싸우려 들기 때문에 그들은 불가능한 병종이었다.
그 떄문에 루프스는 프리트에게 그가 아깝지 않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껄끄러웠고 아깝기야 합니다만... 분쟁이 일어나서 문제가 더 커지는게 훨씬 껄끄럽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그들 대부분이 숲속 마을로 간신히 올라올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라서 망설일 일은 없었습니다"
"으음... 그런데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
루프스도 그와 같은 일이 예전에는 비교적 자주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대부분 프리트에게 맡겼기에 지금도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간혹 일어나는 수준입니다. 그나마 구역을 나눠서 각자 생활에는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정도로 그치는거지만요"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도 한번 둘을 섞어줄 방법이라도 생각해 보는게 좋겠군. 이 건은 나도 함께 할테니 고민 좀 해보자고"
루프스는 프리트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런 그의 말에 프리트는 그저 알겠다는 대답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