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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69화 (169/374)

169화

준비

파인피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방어구와 그가 들고 있는 창 모두 불타오르는 모습이 그가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력을 다하는 그에게 루프스는 그저 순수한 육체가 지닌 힘만으로 대항하려니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파인피는 그의 족장인 루프스를 제한시간 내로 쓰러트리지 못했다. 시간은 지나갔고, 그 순간부터 루프스는 자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간단한 눈속임이었다.

탱-

한차례 창을 크게 쳐낸 루프스는 빠르게 도끼를 휘둘렀다. 파인피의 눈은 최초 그의 도끼가 손목을 노리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설명하는것 같았다.

루프스의 손에서 휘둘러진 도끼가 셋으로 갈라졌다. 도끼를 쥐고 있던 루프스의 팔과 손은 여섯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도끼는 여전히 손목을 노리고 있는 것이 하나, 그대로 위로 솟구쳐 올라 목을 노리고 있는것이 하나, 옆으로 빠지면서 허리를 노리는것이 하나. 세 도끼는 제각각의 목표를 가지고 휘둘러졌다.

파인피는 어느 하나를 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삼분지 일의 확률로 올바른 공격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삼분지 이는 허상을 치고 그의 공격을 허용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막는다 치더라도 다음 공격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게 반복되고 반복된다면 결국 그에 말려서 지고 마는것은 그 자신이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대련에서 같은 방식으로 패배한 경우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인피는 그 공격을 직접 막으려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그리고 발바닥으로부터 그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열기를 분사해 생긴 열팽창에 의한 충격파로 빠르게, 그리고 멀리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루프스는 멀리 떨어진 파인피를 보면서 분신을 불러냈다. 그의 후방에서 불러낸 그의 분신은 날이 뭉툭한 도끼를 휘둘러왔다. 그리고 파인피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한순간에 뒤로 돌아 그의 도끼를 쳐내고는 마찬가지로 발바닥에서 열기를 뿜어내 빠른 속도로 옆으로 빠졌다.

루프스는 다시 한번 그의 후방에 분신을 불러냈고, 옆으로 빠지던 파인피는 다시 뒤돌아 그렇게 들어오는 루프스의 분신이 주는 공격을 쳐냈다. 이 또한 이전에 당한 바 있는 방식이었기에 가능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를 이기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소용 없었는지 다음의 일격으로 그는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후방을 공격하면서 일순 드러난 빈틈을 향해 미리 출현한 분신과 본체가 다가가 그의 후방을 공격했고 여전히 파인피의 앞을 막고 있는 분신이 그를 붙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뒤로 접근한 분신과 본체의 공격은 결국 파인피를 직격했고, 그는 패배를 시인 할 수밖에 없었다.

"크으으, 졌습니다"

저번과 비교해서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결과에 파인피는 신음성을 흘렸다.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패배했다는것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음... 역시 힘조절이 어렵나?"

루프스는 안타까움에 신음하고 있는 파인피를 보면서 한마디를 흘렸다. 그의 제안으로 파인피가 사용하고 있는 열에 의한 열팽창을 이용한 가속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순간 힘을 집중하다보니 다른 곳의 열도 약해지긴 한다. 하지만 그만큼 속도가 기존의 수배에 가깝게 늘어난다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본래의 그가 제어하던 속도가 아닌 인위적으로 그리고 억지로 한 가속이기 때문에 파인피는 매번 가속을 조절하기를 힘들어했다.

지금도 처음 능력을 발동하면서 사용하고도, 어느정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것이 그 증거였다.

"예, 게다가 일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움직이거나 한번 꺾어서 공격하거나 포물선을 그리는 방법들을 시도해봤습니다만... 불가능했습니디"

파인피는 그의 물음에 안타깝게도 불가능했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에 끄덕인 루프스는 어느새 주저앉아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마찬가지로 주저앉았다.

"계속 훈련하다 보면, 그리고 계속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변칙적으로 쓰는것도 가능하겠지. 그럼 오늘 훈련은 이정도로 하지"

오늘 하루의 훈련을 끝낸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한 루프스는 그대로 자신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그런 루프스의 뒷모습을 보던 파인피는 대련으로 엉망이된 훈련장을 한차례 정리하고는 다른 고블린 병사들이 자고 있는 자신의 숙소로 걸어들어갔다.

///

오두막으로 돌아온 루프스는 그곳에 마련된 나무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한차례 오두막의 안을 훑어본 그는 얼떨떨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두막은 일시적으로 식량의 생산을 위한 조치를 취하러 올라왔던 엘프들이 지어주었다. 그가 기억하는 이야기들 중에서는 엘프들이 숲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 중에는 나무를 베는것조차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이들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지 그들이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나무도 벨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베어내는 나무의 수만큼 새롭게 나무를 심을 뿐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오두막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처음 엘프들을 조우했을 때가 떠올랐다. 처음 그들은 트롤의 영역에서 트롤들을 사냥하던 루프스들을 위협으로 보았다. 특히나 트롤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일종의 변수로서 그들에 의해서 트롤들이 크게 움직이는 것을 경계 한 것이다.

그 때문에 공격까지 했던 엘프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들을 위해서 식량 생산을 담당해주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신기하게도 생각이 되었다.

엘프들은 그 수가 고블린이나 코볼트들에 비하면 극히 적기 때문에 루프스는 그들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이외의 방면으로 그들에게 크게 공헌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의 수에 맞춰서 식량을 구한다는것은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나 숲이 한바탕 뒤집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전히 식량으로 취급 할 수 있는 풀과 과일, 그리고 동물들의 개체수가 크게 줄어들은 지금은 더욱 그러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그들의 합류는 정말 큰 힘이 되주고 있군'

최초 이리저리 삐걱이던 불안정했던 신뢰관계도 오랜 시간 이어가니, 확실히 굳어져 확고한 신뢰로 변화되어 있었다. 만일 지금에 와서 온전히 식량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이 변절한다면, 고블린들도 그리고 코볼트들에게도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엘라가 나와 함께하고 있으니 그럴일은 어지간해서는 없겠지'

처음 서로 험악한 관계였던 엘라와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서로 의지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하는것도 가능했다. 다만 그의 자식들 중 몇이 이탈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들을 찾을 의지가 없는 루프스를 보고 실망하는 눈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를 의지하고 있기도 하다.

사이가 좋았던 시기와 같은 관계는 힘들겠지만, 서로 배신하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루프스는 현재 엘프들을 보호하고 있으며, 아직 그녀와 그 사이의 자식들도 여럿 남아있다. 남아있는 자식들은 모두 그녀와 특히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기도 하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엘라는 현재, 새로운 엘프 마을 촌장의 후보자로서 지식과 경험을 쌓고 있었다. 엘프 마을 내에서도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를 가지고 있으니 엘프들이 그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엘프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그에게 수마가 찾아오고 있었다. 점점 눈이 감기고 생각이 끊어지기 시작한 루프스는 어느새 피곤한 몸을 찾아오는 수면에 맡기고 하루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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