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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66화 (166/374)

166화

준비

기병으로 이루어진 일단의 고블린 무리들은 오크 부족을 조사하라는 프리트의 지시를 받고 과거 그들의 영역이었던 장소로 스며들었다. 초입 부근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여기저기 나무는 쓰러져있으며 땅은 뒤집히고 바위는 반파되어 있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들이었다. 그리고 간혹 보이는 과거 오크들이 살아가던 마을로 보이는 장소는 이미 무너져내려 폐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이주를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부족에 눌러 앉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은 사실을 자각한 고블린들은 착잡하지만 동시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길을 그대로 통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최초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과거 그들의 동족이 우연히 발견했던, 지금 고블린들의 부족보다도 한층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오크 부족의 터였다. 오크 부족에 도착하자 일단 그들은 먼저 늑대들을 숨겨두었다. 아무래도 부족 안까지 침투하는데 고블린들 보다 한층 덩치가 큰 늑대들과 함께 들어가기는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

고블린들은 오크 부족의 안으로 무사히 침투했다. 침투에 성공한 고블린들은 선두에 있는 그들을 이끄는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선두에 선 고블린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입을 다문 상태로 그의 주변을 둘러싼 고블린들에게 수신호로 흩어질것을 명령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고블린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제히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는 고블린들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오크 부족의 외견부터 지금까지 보아온 다른 오크들의 터와 같이 폐허와 비슷한 모습의 부족을 보았다. 고블린들은 어쩌면 이 안에 오크들이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일단 전체적으로 빠르게 둘러보기를 생각한 그들에게 망설임이 있을리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이 보아오고, 또 예상했던것과는 달리 이곳에는 오크들이 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모습은 고블린들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어딘가의 전쟁에서 패퇴한 패잔병이나, 전쟁을 피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난민과 같은 그들의 모습은 확실히 그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수도 애초 정찰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수에 미치지 못했다. 이 넓은 오크 부족에서 거주지를 채우고 있는 오크들의 수는 절반의 건물도 채우지 못 할 정도였다.

그 후 그들은 오크 부족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는 그들의 영역을 빠져나갔다. 이 이후의 땅은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질되어 있으니 그런 땅에서 살아갈 오크들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

고블린 정찰병들은 수일에 걸쳐 오크들의 부족을 둘러보고는 새롭게 지어진 거점으로 돌아왔다.

과거의 부족을 다시 재건해서 만들어진 거점은 그리 큰 크기는 아니었다. 기껏해야 천에 가까운 수의 고블린들을 수용하는 정도의 크기였다. 그것 때문에 수가 늘어나면서 부족의 위치를 옮긴것이기도 했었다.

새롭게 지어진 거점의 중심부, 유난히 커다란 움막으로 정찰병들의 대장이 들어섰다. 오크 부족의 정찰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미리 거점으로 자리를 옮겼던 루프스는 눈앞에 있는 고블린의 보고를 듣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 자리잡고 있는 프리트를 향해서 이야기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말이지... 그 쪽이 중심부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남아있는 오크들이 그렇게 적을 줄은 몰랐는데"

"아마 지금 모여있는 이들도 그 때의 이변 이후 다시 돌아온 이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남아있는 이들의 수가 그렇게 적을리가 없을테지요"

"으음"

루프스로서는 고블린들의 증가를 위한 수단으로 오크들을 납치하는 것을 기반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까보니 아무래도 그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오크들의 잔당이 나타날때부터 이런 사실을 짐작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것에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정찰병들이 가져온 이야기에 따르면 오크들의 수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전혀 그들의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 이자리에 있는 고블린들과 상대라도 가능했다면 코볼트들 처럼 하나의 전력으로서 이용하는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니 루프스가 골치아파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쨋든 상황이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신경은 전혀 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쯧,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만 않았어도 그들은 우리에게 하나의 좋은 도구가 되거나 전력이 되어줄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

그렇게 루프스가 가진 오크들에 대한 관심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다만 새롭게 만든 거점만은 그 너머 검은 대지에서 혹시나 언데드들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을 들어, 그대로 남겨두고 몇 고블린들만을 배치해놓아 감시하도록 명령했다.

///

그렇게 고블린 정찰병들이 돌아가고 그 결과 보고로 그들이 가지는 오크들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을 무렵. 그곳에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시 귀환한 한 오크에 의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는 한 때 오크들 중 최강이었던 자의 첫째 아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죽은 오크 족장을 제외한다면 가장 오랜시간 살아남은 오크였다.

하급과 중급 오크의 중간 정도되는 키를 가지고 있는 온몸의 피부가 붉게 물든 그가 무기력함으로 물들어있는 과거 그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몸에 이미 아물었지만 징그러워 보이는 흉터로 가득했다.

무기력한 모습을 유지하는 오크들 중 한 오크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들어오는 발소리에 단순히 반사적으로 움직인것 뿐이었다. 오크는 입구를 통해서 터덜터덜 들어오는 한 오크를 볼 수 있었다. 죽은 동태와 같은 눈알을 하고 있던 오크는 그 오크를 바라보자 눈동자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오크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이곳에 온 패배자와도 같은 오크들과는 비교하기 힘든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크기는 다른 오크들에 비해서 특출나게 큰 덩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붉게 물든 피부와 생기있는 눈동자, 단단하게 뭉쳐있는 근육이 이곳에 모여든 오크들과는 근본부터 달라보였다.

그가 부족의 안으로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자 그를 보는 시선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이곳에 모여있는 오크들도 이미 외부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족 중앙의 부족장의 거처를 중심으로 모여있었기에 그 수는 늘어만 갔다.

점점 중심에 다가간 오크. 그리고 그가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그를 바라보는 오크들은 늘어만 갔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도 슬금슬금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크는 자신을 향해서 모여드는 다른 오크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였던 오크가 살아갔던, 그리고 오크들을 통치했던 부족장의 거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목적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저기가 헤지고 먼지가 앉아있었지만,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가 얼마전의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그의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을 장소였다.

펄럭

오크는 거대한 가죽을 잇고 이어서 만들어진 움막에 다가가 그 입구를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있는것은 과거와 비슷하지만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말 그가 불쾌하게 여길만한 이물질과 같은것이 보였다.

이런 패배자와도 같은 무리에도 우두머리는 있었는지 다른 녀석들에 비해서 한층 큰 덩치를 가진 녀석이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다. 그 오크는 그가 이전에도 본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저 불쾌하게만 여겨지는 녀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기분을 만끽하려던 오크는 기분나쁜 무언가를 보면서 녀석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퍼석

바닥에 누워 코를 골면서 골아떨어져있던 오크의 머리가 박살이 났다. 그리고 머리가 터진 시체를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 발로 찬 그는 움막의 안에 놓인 계단을 올라가 의자에 앉았다. 이전까지 그의 아버지가 앉아 있던, 그리고 오크 족장임을 증명하는 자리에 그는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저도 모르게 그를 뒤따라 온 오크들이 바라보았다.

오크는 움막 입구로 보이는 오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렁차게 포효했다.

"우워어어어어어!!"

한번 무너져내렸던 오크들의 부활을 알리는 그만이 표하는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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