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준비
더 이상 살아있는 포레스트 앤트들이 눈에 띄지 않자 회복을 마치고 부하들이 전투를 이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루프스는 그들을 이끌고 이곳에 온 목적지를 향했다.
저벅 저벅
나직이 걸은 그는 고블린 서넛은 여유롭게 들어갈수 있을 듯한 넓이를 가진 제법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다름아닌 포레스트 앤트들의 본거지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하지만 루프스는 입구의 앞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시작하지"
구멍의 안쪽을 지긋이 처다보면서 그는 뒤쪽에서 대기중인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일부 고블린들이 들어왔던 통로를 다시 들어가 통로의 반대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 통로를 통해서 짐들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덜그럭 덜그럭
바퀴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나면서 나무의 통로를 통해서 짐을 한가득 실은 수레가 나오기 시작했다. 통로의 앞에서 대기중이던 고블린들이 통로와 연결된 끈을 끌어당기면서 통로의 건너편에서 부터 수레를 끌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곳에 건너오기 직전 간단한 실험을 몇가지 실행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일단 통과만 한다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든 그저 물건이든 통로를 건너는 것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동시에 그렇다면 하나의 밧줄을 이용해서 한쪽 끝은 건너가기 전의 지점에 두고 반대쪽은 건너간 지점에 두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결론적으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한쪽에서 당기면 반대쪽 밧줄도 당겨졌으며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알아낸 고블린들은 짐을 직접 이고 넘어가기 보다는 혹시나 싶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수레와 밧줄을 이용해서 통로의 반대편으로 보내는 작업이 이어지면서 무사히 짐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이용되어 묵직한 짐들이 나무의 통로를 통해서 넘어오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짐을 끌어내자 그 때 부터 코볼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레에 쌓여 있던 짐들은 일부 식량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건축자재들이었다. 그런 자재들을 이용해서 포레스트 앤트들의 굴의 입구 부근에 벽을 두르기 시작 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사이 홀로 남은 늑대들은 포레스트 앤트들의 시체를 물어서 한쪽으로 치워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루프스는 애당초 포레스트 앤트들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굴의 안으로 직접 들어가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여왕이라면 그를 한단계 위로 끌어올려주는데 도움이 좀 되겠지만 애초에 그가 지금 원하는것은 그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이 아니었다. 마땅히 실전상대가 없는 최하급 몬스터들의 실전을 위한 제물들이 필요한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다. 포레스트 앤트들의 굴을 점거해서 그의 부족에 있는 최하급 몬스터들과 하급 몬스터들의 성장을 위한 제물로 삼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가장 먼저 그는 이 포레스트 앤트들의 구덩이의 주변을 석벽으로 감싸고 하나의 건축물을 만들어 그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적당한 수의 최하급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에 소수의 하급 몬스터들을 섞어서 이 안을 돌아다니면서 포레스트 앤트들을 상대로 경험을 쌓게 하는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가 이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떠나기 얼마전 엘라에게서 한가지 정보를 얻은것에서 기인했다. 포레스트 앤트들은 도저히 상대하기 불가능한 상대가 그들의 굴 근처에 자리잡거나 더 이상 식량을 기대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어지간해서는 굴의 위치를 옮기지 않는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어떻게든 굴의 위치를 바꾸려 한다고 하더라도 입구로 나오지 못한다면 그저 굴의 연장선으로 늘어날 뿐이기에 입구만 확보해둔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이곳은 완전히 우리의 손아귀에 넣어두어야만 해'
루프스는 벽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개미굴 입구 부근을 보면서 생각했다.
벽을 쌓아 올리면서 무거운 돌덩이를 옮기고 쌓고를 반복하다보니 땅이 울려서 그런지 어느 시점부터 포레스트 앤트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루프스도 이미 짐작했기 때문에 일손이 남는 고블린들을 투입시켜서 굴의 입구로 나타나는 포레스트 앤트들을 막도록 지시해두었었다.
그렇게 루프스가 이끄는 몬스터의 무리는 그렇게 자리를 잡고 제법 긴 시간동안 머물러 작업을 이어갔다.
///
임시 건축물이 만들어지고 루프스와 고위 고블린들은 단 하나의 상급 고블린만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하고 다시 부족으로 돌아갔다.
"한번쯤 그 여왕이라는 녀석을 상대 해보고싶었는데 말이지..."
"캬캭, 그러면 우리가 곤란해집니다. 마주치면 어찌되었든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울게 뻔한데 그 여왕이 죽으면 우리 어린 것들이 성장하지를 못하잖습니까"
부족으로 되돌아가는 길에서 루프스와 파인피는 굴 안쪽에 있을것으로 짐작되는 여왕을 떠올리면서 이야기했다.
"음... 식량을 넣어주도록 지시해두는건 잊지 않았겠지"
파인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루프스는 그에게 이야기해두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물었다.
"잘 전달했습니다. 아마 지금도 쉬지 않고 굴의 안쪽으로 식량을 들이밀고 있겠지요"
루프스는 포레스트 앤트들이 먹어치울 식량들을 생각하니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포레스트 앤트들을 떠올리니 고생할 부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좀 들었다.
"거기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장소다. 제일 밑에 있는 어린 고블린과 코볼트, 그리고 늑대들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전력의 증강은 어렵다고 봐야하니 말이야"
그렇게 포레스트 앤트들에 대한 일처리를 대략적으로나마 끝낸 그는 마침 도착한 부족의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제 다음단계의 작업을 실행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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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으로 돌아온 루프스는 가장 먼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의 한쪽 벽 부근에는 그동안 그가 수집한 각종 정보들이 적힌 가죽 두루마리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그는 그 중에서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는 두루마리를 들어올렸다. 그렇게 펼쳐진 두루마리에 새겨져 있는 것은 과거 그와 그의 부족이 자리잡았던 장소 부근의 몬스터들 세력 분포도가 적혀있었다. 모두 전에 사로잡았던 스스로들을 조사대라고 칭하는 인간들로부터 얻어낸 정보들이었다.
각자 떨어트려 놓고 개개인에게 얻은 정보들을 교차검증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이기 때문에 제법 신뢰도는 높을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개중에 일부는 그가 시간을 내서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경우도 있었다.
'밖으로 나갈려면 길을 미리 확보해 놓아야만 해'
조사대에게서 얻은 정보중에는 인간들이 고블린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준비에 들어섰다는 것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사기의 발생이 야기한 혼란이 아니었다면 이미 처들어와서 그의 부족을 들쑤시고 갔을거라는 점은 예상이 갔다.
'그러니 그 혼란은 사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군'
당시를 떠올린 루프스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지도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의 사건으로 숲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가장 큰 것은 숲의 초입 부근을 차지하던 약한 몬스터들이 대부분 전멸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몬스터들도 안쪽으로 들어와 조금씩 부족의 틀을 닦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렇게 비어버린 숲의 초입 부근을 비교적 강력한 몬스터들이 자리잡으면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거나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데 매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들과 싸우려면 먼저 초입 부근을 차지한 녀석들을 쓸어버려야만 해'
지도를 둘러보던 그는 각각의 경로들과 그곳에 자리잡은 몬스터들을 확인하면서 생각했다. 그는 어차피 인간들과 싸우게 될거라면 먼저 자신이 그들을 공격해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 엉성한 지도에 적혀있는 몬스터의 영역들을 표기한 두루마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두루마리로 부터 필요한 정보들을 기억해 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토대로 그는 숲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길목을 확보하고자하는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