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준비
루프스는 한껏 긴장감을 품은 상태로 녹색의 빛의 가루가 떠다니는 칠흑으로 덧칠된 구멍 속으로 그 몸을 던졌다. 발부터 미끄러지듯이 구멍의 안쪽으로 파고들은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가리던 암흑이 가시고 한 우거진 풀숲의 한가운데로 덩그러니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크윽"
익숙치 않은 이동방법이기 때문인지 시야를 찾은 직후 극심한 어지럼증이 그를 괴롭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일대에 혹시나 하고 예상했던 포레스트 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었다.
이동에 대한 후유증으로 잠시 멈칫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기는..."
주변을 둘러본 루프스는 가장 먼저 키의 반만큼 오는 수풀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풀을 헤쳐 그 바깥을 보니 넓게 펼쳐진 푸른 초목의 모습이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에 표정을 찡그렸지만 그것은 이내 펴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포레스트 앤트의 본거지로 향하는게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스슥- 스슥-
보이지 않는다 싶었던 포레스트 앤트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포착 한 것이다.
루프스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의 포레스트 앤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몸을 수풀 속에 숨겼다.
'이 주변으로는 안오는 건가?'
처음 포레스트 앤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정말 천운이라고 할 정도로 무수한 수의 포레스트 앤트들이 나무에서 나무로 이동하는 모습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상황을 봐서 부하들을 불러오려던 루프스는 잠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는지 포레스트 앤트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그는 생각보다 큰 수확이 그의 앞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건...!'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눈은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포레스트 앤트들을 쏟아내고 있는 한 나무를 발견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포레스트 앤트들이 일사분란하게 각각이 목적으로 하는 나무의 구멍을 통과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루프스는 운이 좋다고 느끼면서 포레스트 앤트들의 움직임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기를 기다렸다.
포레스트 앤트들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통행만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그렇게 느끼던 것은 규모의 차이 때문이었다. 뻗어나가는 그들의 수에 비해서 극히 적은 소수의 포레스트 앤트들이 몬스터들의 시체나 나무 열매 등을 입에 물고는 다른 포레스트 앤트와는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사냥이나 식량의 채집에 성공한 녀석들이 본거지로 귀환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
족장인 루프스가 솔선수범으로 먼저 나무 속 통로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은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루프스가 겨우 이런 일로 목숨을 잃을 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증폭했고 서로 들어가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고블린이 나서서 그들을 막아섰다.
"멈춰라! 족장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다. 아무리 걱정 된다고 하더라도 족장의 명령을 지키지 못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족장님을 믿고 그 분을 계속 기다리는 것 뿐이다"
나서서 동요하는 몬스터들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이번에 루프스와 동행 하게 된 파인피 였다. 항상 그의 옆에 붙어 다니던 프리트의 모습에 투덜대던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루프스가 이번에 동행을 허락했던 것이다.
앞으로 나서서 족장을 믿자고 소리치는 그의 모습에 몬스터들의 동요는 곧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침착해 졌다. 그들도 루프스가 그저 당하기만 할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며 만일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가 직접 몸을 던져서라도 이 장소로 귀환했었을거란 믿음이 그들을 침착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
수풀 속에 몸을 가리면서 동시에 능력을 이용해서 몸을 숨기기까지 한 루프스는 포레스트 앤트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이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듯이 포레스트 앤트들의 움직임이 변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점점 귀환을 시작하는 포레스트 앤트들의 수가 늘어나더니 종래에는 방금전과는 정반대로 하나의 나무로 나와서 여러 나무로 쪼개지던 포레스트 앤트의 움직임이 여러 나무에서 나와 하나의 나무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
루프스는 그런 포레스트 앤트들의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순간 저들이 자신이 낸 소리를 감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멀지는 않다고 해도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그의 존재를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포레스트 앤트들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걸 안 루프스는 다시 그들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허, 이거 참 저녀석들은 서로 생각이 이어지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저렇게 질서정연하지?'
루프스는 무수한 수가 움직이면서 복잡한 상황에도 잠시도 지체되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포레스트 앤트들의 모습은 일견 소름끼치기도 했다.
그렇게 루프스가 포레스트 앤트들을 관찰하던 무렵 그들은 루프스가 자신들을 보면서 무슨 감상을 품는지도 모르던 순간 대부분의 포레스트 앤트들이 귀환을 마쳐가는지 그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프스가 그들의 움직임으로부터 눈을 떼었을 무렵이 됐을 때는 대부분의 포레스트 앤트들이 그 일대에서 자취를 거의 감춘 뒤였다.
주변에 어느새 포레스트 앤트들이 모두 사라지자 루프스는 만약을 위해서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 하고는 나무의 통로를 타고 부하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이동했다.
///
나무 속 통로를 통과한 루프스는 곧 통로의 반대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끄응"
동시에 다시 어지럼증으로 머리를 붙잡고는 끙끙대다가 좀 가라앉고 나서야 일어섰다.
"두번째 겪는거지만, 익숙해질것 같지 않군"
두통에 투덜거리던 루프스였지만 어느새 자신에게 다가온 부하들의 모습에 고개를 들어야 했다.
"족장! 괜찮으십니까?! 거기서 다른 문제는 없었습니까!"
피가 마르듯이 기다리던 족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파인피가 가장 먼저 달려가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특히나 도착하자마자 머리를 붙잡아 쥐는 모습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다. 그보다 모두 준비해라. 빨리 넘어가야 한다"
"건너편에 뭐가 있었습니까?"
왠지 급해보이는 루프스의 모습에 파인피는 의아한 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수한 포레스트 앤트들이 있더군.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굴을 나선 놈들로 추정된다. 지금은 잠시 휴식기인지 대부분이 왔던 장소로 돌아간 상황이다. 이 틈에 넘어가지 않으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
그의 말에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은 파인피는 그의 지시대로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을 움직여서 나무의 통로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프스는 준비를 끝마친 부하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출발 하시죠"
부하들의 제일 선두에 서있던 파인피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루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장 먼저 나무 속 통로로 들어섰다.
통로를 빠져나오고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뒤쪽으로 하나 둘 순차적으로 넘어오는 부하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서 조심스레 이전처럼 수풀 사이에 숨어서 그 너머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이곳에 잔류하고 있는 포레스트 앤트의 수는 적었고,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히 모두 이곳에서 치울 수 있을 정도의 수였다.
주변의 안전을 확인한 그는 점점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부하들을 이끌고 포레스트 앤트들이 통행하고 있는 나무들을 하나, 둘 씩 점거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레스트 앤트들의 중간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는 루프스와 그 부하들로 인해 완전히 점령하였다.
그렇게 점령을 마치자 루프스는 그 일대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를 향해서 다가갔다. 다름 아닌 포레스트 앤트들이 집중해서 나타나고 사라지던 그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