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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39화 (139/374)

139화

준비

파인피와 스콘드를 따라서 부족의 안으로 들어선 루프스는 먼저 피해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자신이 떠나고 난 후 벌어진 상황이었다. 대다수의 포레스트 앤트들은 최하급 고블린들도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의 수는 고블린들의 수를 훌쩍 넘어섰으며 중간중간 그들이 감당하기 힘든 변종체까지 있었다.

"원래라면 그렇게 피해가 안 컸을 겁니다. 하지만 그 놈의 변종들이 문제였죠"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최초 일반 포레스트 앤트들이 부족을 향해서 달려들었을 때는 부족 내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루프스들이 떠나고는 무슨일인지 하루에 한번정도는 나타나던 몬스터들이 감감 무소식이라 몸이 근질거린다고 투덜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만만한 녀석들이 나타난 사실에 환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순번이 밀려 성장의 기회가 다음으로 넘어갔던 부족에 남아있던 최하급 고블린들도 기꺼워 했다고 한다.

첫 충돌은 순조로웠다. 만만한 녀석들 투성이였기에 직접 출입구를 열고 고블린들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싸웠을 정도였다.

"그 때만 해도 그리 큰 피해를 입진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방심하던 녀석들 여럿이 당하는 정도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파인피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생각도 하기 싫어하는 그의 태도에 괜스레 더 궁금해진 루프스는 그의 대답을 촉구했다.

"그렇게 허약한 녀석들을 데리고 모두 자신감이 차올랐었습니다. 이런 허약한 녀석들 정도야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구나 하고 저도 자신하고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당시를 떠올리기도 싫다는 표정을 짓고있었지만 그는 루프스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이틀 정도는 처음과 마찬가지의 전력을 보여줘 고블린들의 자신감을 한층 더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질되는것은 그리 이상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포레스트 앤트들을 상대하는데 긴장하지도 자세히 살피지도 않을 정도로 자만심이 비대해졌을 무렵,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보통의 포레스트 앤트들 보다 한층 큰 덩치를 가진 그 녀석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당시에는 아직 루프스들은 그 변종체를 만나지 못했을 시기였다. 즉, 그들이 아직 마주치기 전에 먼저 그의 부족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등장으로 전세는 담숨에 뒤바뀌었다. 포레스트 앤트들을 압도하던 고블린들은 녀석들에 의해서 단숨에 강제로 물러나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의 첫 등장시에 파인피와 스콘드는 전장에 있지 않았다. 한 상급 고블린에게 전체적인 지휘를 맡기고는 그들 스스로는 뒤로 한발 물러나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처음 등장한것은 방어형 변종이었지만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석벽 안의 고블린들이 대비를 준비하는 사이 하나의 변종이 더 나타난 것이다. 날개달린 비행형의 녀석들은 전체적인 덩치는 방어형 변종들 보다도 컸지만 비행을 위해서인지 비교적 얇고 날렵한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석벽 위에 있는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파인피도 직접 뛰어내려 전장에 참가하려는 순간 포레스트 앤트의 군세에 숨어있던 녀석들이 단숨에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생소한 또다른 적의 등장에 석벽 위의 고블린들과 전장에 나선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려던 파인피는 상황파악을 위해서 일순 멈춰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비행형 변종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고 말았다.

빠르게 접근해오는 그들의 모습에 그는 뛰어내리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뒤로 물러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석벽 위의 고블린들도 반수 이상은 그렇게 날아오는 비행형 변종 포레스트 앤트를 상대하느라 바깥에 있는 이들을 도와줄 상황이 못되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석벽의 밖에서 방어형 변종과 일반 포레스트 앤트들을 상대하던 고블린들도 손쉽게 알아 차릴 수 있었다.

결국 바깥에서 싸우던 이들은 부족으로부터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한 이들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그 때 당한 녀석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 때 피하지 못하면서 생긴 피해는 최하급 고블린들의 수가 반토막이 났으며 당시 그들을 이끌던 상급 고블린과 다수의 중급과 하급 고블린들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으음... 그 사이 녀석들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나?"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녀석들은 한번 병력을 쏟아내고는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새로운 병력이 보충되더군요. 워낙 수가 많아서 그것도 별로 티가 나지 않았습니다만 주기적으로 수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을 보고 조사한거니 확실 할 겁니다"

"나머지 하나는?"

"녀석들이 부족 근처에서 나타나는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째서인지 항상 여기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부터 오더라구요"

덕분에 부족 내부에서 튀어나오거나 엘프들의 마을 쪽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

그의 이야기에 뭔가 단서를 잡은 듯한 기분에 그는 기꺼운 목소리로 그리 답했다.

그 뒤로 한동안 루프스도 파인피와 스콘드에게 포레스트 앤트들을 잡기 위해 떠난 이후 루프스의 무리가 겪은 일들을 그들에게도 이야기 해 주었다.

그렇게 그들 모두 상황 파악 할 정도의 정보만을 교환한뒤 일단 뒤처리를 위해서 헤어졌다.

///

다른 고블린들에게 일단 뒤처리를 맡긴 루프스는 엘프들의 마을로 향했다. 오랜만에 엘라와 한번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부족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 걸리지 않아서 엘프 마을에 도착했다.

엘라는 촌장으로 부터 촌장 역을 인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제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기에 촌장으로서도 후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해둔 후보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엘라였다.

그녀 외에 몇몇 후보가 있긴 했지만 고블린들과의 관계나 마을 안에서 받고 있는 인망등을 생각하면 그녀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다른 엘프들을 모아 회의를 한 결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흠이라고는 고블린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하나 뿐인데 그것도 현재 동맹을 맺고 있으니 딱히 흠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엘프 촌장의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 루프스와 떨어져서 엘프 마을에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실제로 촌장이 된다면 그때는 온전히 엘프 마을에 정착한다고 봐야했다.

루프스는 엘프 마을에 도착하고 곧장 엘라를 찾아 나섰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지나기도 했으며 엘프 마을, 고블린 부족 할 것 없이 비상상황이었기에 교육 할 겨를이 없어 그녀의 집에 그녀는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똑똑

엘라의 집 앞으로 다가간 루프스는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어머? 어떻게? 아니, 그 보다 무슨 일이세요?"

엘라는 갑자기 등장한 그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도 그가 따로 원정을 나갔다는 사실을 익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도 듣기 전에 나타나자 놀란 것이다.

"잠깐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말이지"

그는 엘라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그녀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제법 심각한 상황이었군요"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루프스가 그랬듯이 안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부족에서 떨어진 곳에서부터 녀석들이 쏟아지듯이 나오고 있다는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일 뿐 의문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놈들이 왜 부족 근방의 나무에서는 나오지 않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그 물음에 엘라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모르셨겠네요. 저희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이야기라 그 생각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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