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준비
싸움이 끝나고 고블린들은 승리에 취하지도 희생된 동료들에게 애도를 표하기도 전에 폐허가된 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고블린들은 제법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장 곳곳에 쓰러진 고블린들의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정리라고 하더라도 고블린들이 할 작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단순히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흩어진 짐들을 챙기는 정도가 다였다. 고블린들이 정리하는 사이 루프스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본래 푸르른 초목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초목과 같은 색을 지녔지만 생리적으로 혐오감이 오는 녹색의 시체들이 즐비해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고블린들이 지금까지 마주치지 못했던 녀석들이었다.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들을 살피면서 루프스는 한가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주한 포레스트 앤트들은 모두 일률적이었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마주했던 다른 몬스터들과는 매우 다른 점 이었다.
제일 약한것으로 추정되는 일반적인 포레스트 앤트들만 보았을 때는 이런 점을 떠올리지 못했다. 고블린들도 초기의 생김새는 두껍고 긴 코와 귀 그리고 전체적으로 뾰족한 인상의 두개골에 주름지고 우둘투둘한 녹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지금까지 마주친 포레스트 앤트의 발전형인 녀석들은 루프스에게 한가지 의심을 심어준 것이다.
고블린들도 그렇지만 모든 몬스터들은 축복을 받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겨난다. 한번이라도 축복을 받았을 때 가장 큰 특징은 다름 아닌 각각 하나씩의 특화능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특화능력은 다양한 종류의 능력들이 있었다. 불을 뿜거나 얼음을 만들어내거나 바람을 불게하는 등의 원소를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능력이나 단순히 힘이나 민첩성이 강화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드물게 같은 능력을 지닌 이들이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경우도 그 활용 방법에 따라 방향이 갈라지면서 나중에는 완전히 다른 능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녀석들은 그렇지가 않군..."
루프스는 최하급 고블린들을 향해서 거동이 불편한 상태의 몸을 이끌고도 독을 뿜어냈던 한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를 눈앞에 두고 복잡한 눈빛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으로 늪에 완전히 빨려들어갔던 포레스트 앤트들을 간신히 소화시켜낸 프리트가 다가왔다.
"왜그러신가요?"
딱히 고블린들의 분위기가 밝지는 않지만 유난히 어두워보이는 그의 모습에 프리트는 의아함을 느끼고 그에게 물은 것이다.
"이녀석들이 영 이상해서 말이지"
그리고 루프스는 프리트의 물음에도 낯빛을 고치지 못하고 대답했다.
"이녀석들 말씀이십니까?"
툭툭
고개를 갸웃거리던 프리트는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듯이 발끝으로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를 툭툭 건드렸다. 루프스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딱히 이상할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우리가 지금까지 마주친 녀석들이 축복으로 변한 녀석들 아니겠습...니 ..."
말을 이어가던 프리트도 이내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는지 눈을 가늘게 떳다.
"확실이 이상하군요. 어떻게 모두 같은 능력을 사용 하는게 가능한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 프리트의 말에 루프스도 동의했다. 그가 이상하게 생각하던 것도 그 점 이었다. 그가 마주한 포레스트 앤트의 변종체 아마 병정개미의 역할을 하는것으로 생각되는 이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힘을 사용했다. 독을 내뱉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한가지가 더 있다. 최하급 고블린들에 의해서 억지로 움직임이 멈춰진 포레스트 앤트들 중에는 비교적 부상이 경미한 녀석들이 있었다. 하지만 독액을 내뿜어내 고블린들을 공격한것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포레스트 앤트들의 행동이었다.
"게다가 마치 하나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처럼 말이지"
루프스와 프리트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이 고블린들의 시체와 부상자들을 수습이 완료되었다.
"일단 돌아가도록 하지. 오면서 녀석들이 이용하는 통로들을 대부분 무너뜨렸으니 한동안은 영역이 넓히기 힘들거다. 그리고 포레스트 앤트들이 완전히 전멸하는 것도 우리 목적에는 적절치 못한 상황이니 이쯤에서 물러나는게 좋겠지. 게다가 이 정도면 충분히 우리의 목적은 달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는 먼 장소에 있는 포레스트 앤트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이는 나무 뿌리 부근에 나있는 구멍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일러 두겠습니다"
그렇게 루프스에게서 떠난 프리트는 다른 고블린들에게 그의 지시를 전달했고, 곧 그들은 부족을 향해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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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으로 회군하는 고블린들은 이번에는 딱히 다른 몬스터들을 만나는 일 없이 제법 빠르게 부족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의 모습은 그들이 떠나올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기잇?!"
"무... 무슨일이?!"
루프스의 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커지는 만큼 외부에서 발견할 확률은 올라간다. 그가 상급으로 올라가면서 얻은 '단체은닉'으로 부족을 가려주고는 있지만 특성 하나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커진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그는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대비를 해두었다. 부족의 바깥에 만들어진 각종 함정들과 항상 절반의 전력을 상주시키는 등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큰 피해로 원정을 돌아오게 된 그들은 부족이 있는 지역 부근에 큰 구멍이 생겨있고 각종 장치들이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보이는 포레스트 앤트들의 각종 시체들이 쓰러져 있었다.
부족에 변고가 생긴것을 직감한 루프스지만 먼저 상대를 살피기 위해서 다급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쓰러져있는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에 접근해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쓰러져 있는 녀석들은 다름아닌 가장 많이 마주치기도 한 녀석들이었다. 늑대들과 비슷한 크기에 녹색의 갑피 말고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개미의 모습을 한 포레스트 앤트였다.
그리고 중간 중간 눈에 띄는 정도로 마지막에 루프스가 이끈 무리들이 마주쳤던 한층 커다란 포레스트 앤트의 모습이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종류의 포레스트 앤트였다. 투명하고 얇은 두쌍의 날개가 너덜너덜한 상태에 그 몸체도 곳곳에 피를 흘리면서 죽어있었다. 녀석은 루프스가 좀 전에 마주쳤던 포레스트 앤트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턱의 날이나 다리의 끝이 뾰족하게 서있는 점이나 등껍질을 뚫고 나와있는 날개들을 보았을 때 이 녀석이 지금까지 그가 만나왔던 포레스트 앤트와는 확연히 다른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런 포레스트 앤트가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그 풍기는 기세가 강렬한것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프스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포레스트 앤트가 다시 한번 성장한듯 보이는 몬스터의 등장에 표정이 절로 굳어갔다.
"우리가 못 본 녀석도 있었군"
"이렇게 되면 이 세종류 말고도 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을 수 있습니다"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를 살펴보던 루프스의 옆으로 다가온 프리트는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세 포레스트 앤트의 시체들을 살핀 그들은 최대한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상대해야 할 적의 정체를 알아야 하기에 잠시 멈추고 살피긴 했지만 그만큼 부족의 상황이 어떤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게 루프스를 비롯한 고블린과 늑대의 무리는 빠르게 부족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것은 한참 부족의 석벽을 향해 그리고 그 위에 있는 고블린들과 코볼트들을 향해서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 포레스트 앤트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