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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33화 (133/374)

133화

준비

막 성체가 된 어린 고블린들이 상대할 만한 몬스터들을 찾아 나선 루프스와 프리트는 한참을 돌아다녔다.. 수색을 시작할 때 프리트는 생각보다 쉽게 어린 최하급 고블린들이 상대할만한 몬스터들을 찾을 수 있을거라 루프스에게 이야기했다.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거란 그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그들의 눈에 띄는 이들은 없었다. 소소한 동물들이나 소수끼리 뭉치는 최하급 몬스터들을 조금 발견했을 뿐이었다.

사실 밑바닥의 몬스터들은 다수가 뭉쳐 부족을 이뤄서 위협을 물리치는 이들과 소수나 홀로 숨어다니면서 간신히 생존을 이어가는 이들로 두가지가 대부분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의 경우 모여든 이들의 생존률은 처음에는 그리 높지 않다. 주변에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들이 아니라면 살아남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역경을 버티면 버틸수록 그들의 힘은 높아져 간다. 다수가 모였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은 이들은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이들이 축복을 받아 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 부족의 생존률은 높아진다.

후자의 경우는 생존율만큼은 전자보다 월등히 높다. 적이 나타나면 싸우기보다는 도망치거나 숨는것을 우선시하다보니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한가지 단점은 있었다. 부족을 이루는 이들과는 달리 성장하는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싸움을 계속 피하고만 다니니 성장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 고블린이 숲을 수색하면서 느낀것은 후자를 차지하는 몬스터들은 대체로 죽어버려 결국 살아남은 것은 부족을 이루던 몬스터들이었다. 간간히 흩어진 동족들을 규합해서 새로운 부족을 만드는 이들과 패잔병처럼 피폐해진 몬스터들이 소수끼리 뭉쳐서 돌아다니는 모습만을 확인한 것이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규모의 최하급이나 하급 몬스터의 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돌아다닌지 어느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부터는 그 어떤 생명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던 몬스터들도 어느새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 남아있는 것은 크게 솟아있는 나무들과 나무와 나무 사이에 나있는 푸른 이름모를 잡초들 뿐이었다.

아무런 수확도 없다는 사실에 두 고블린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마땅한 녀석들은 없는건가?"

"끄응... 이렇게 피해가 클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루프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리고 프리트는 직접 둘러보니 몬스터들의 피해가 생각보다도 큰것 같아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결국 별다른 수확을 건지지 못한 둘은 시간도 슬슬 늦어가니 부족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카각-

갑자기 둘의 발목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각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콰직

발목에서 올라오는 기분나쁜 감각에 저도 모르게 강하게 발을 찬 루프스는 이내 그 원인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녹색의 몸체를 가진 제법 커다란 개미가 머리를 잃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녀석은?"

"확인해 보겠습니다"

루프스가 프리트에게 묻자 서둘러 짐을 풀어 한 천 뭉치를 꺼내든 그는 이내 그것을 펼쳐보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엘프들과 이전에 포로로 잡았던 인간들에게서 얻어낸 이 숲에 있는 몬스터들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찾았습니다. 포레스트 앤트라고 하는 군요"

"특징은?"

"무언가의 통제를 받는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하고 합니다. 그리고... 한 녀석이 나타나면 근처에 적어도 수백에 이르는 개체들이 있을거라고 하는군요"

"좋아, 번식력이 상당한 놈들이라는 이야기로군. 이녀석들 서식지는 특징이 있나?"

"숲지대에 주로 출몰하면서... 나무를 통로처럼 이용해서 지하에 서식하고 있다고 적혀있군요"

프리트는 유심히 기록물을 살피면서 그가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무를 통로로 한다는 이야기에 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숲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거대한 나무들에 바닥에는 이름모를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그다지 유심히 살피지 않았던 둘은 곧 자신들이 포레스트 앤트들의 진지 한복판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각 사각 사각

스스스스스-

초록색의 풀사이에 퍼져있는 그들의 모습은 풀들과 동화되어 있어 눈치채기 전까지는 그것이 풀인지 움직이는 생명체인지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어느새 그들을 둘러싸고 다가오는 커다란 개미들의 모습에 루프스는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그보다 약한것이 분명하며 이들 모두가 덤벼도 그가 못이길리는 없지만 그를 향해 다가오는 녹색의 물결을 바라보는것 자체에서 혐오감이 느껴진 것이다.

개미들이 어디서부터 나타났는지를 살피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곳곳에 있는 나무의 뿌리에 가까운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서부터 스믈스믈 기어나오는 초록색의 개미들이 보였다. 나무를 통로로 쓴다는 의미를 의도치않게 깨닫게 되었다.

어느새 두 고블린들의 주변까지 다가온 개미들의 모습에 루프스와 프리트는 각각의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늪 그 자체로 변한 프리트는 개미들을 무시하고 움직이면서 왔던길을 되돌아 갔다.

루프스는 바로 근처의 나뭇가지로 뛰어올랐다. 나뭇가지에 안착하자마자 그는 무의식중에 뒤덮고 있던 색을 지워나갔다. 점점 투명한 색으로 변해갔지만 그 모습은 사라진다기 보다는 벗겨진다는 표현이 더 알맞았다.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이물질들이 벗겨지면서 투명한 그 속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느새 주변의 풍경을 일그러져 보이게 만드는 최초의 상태로 돌아간 그는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기척은 물론 그 체취까지 옅어졌다. 거기에 그는 개미들 하나 하나에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그들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상태로 프리트와 마찬가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풍경이 일렁거리면서 지나가는 듯 했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포레스트 앤트들은 그의 영향력 안에 있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헛돌기만 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깊게 들어왔던 듯이 포레스트 앤트들의 물결은 한동안 끊이지를 않았다. 하지만 힘의 격차가 워낙 크다보니 두 고블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영역에서 벗어나고도 제법 떨어진 자리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꺼억

바닥에 내려선 루프스는 다시 흑색의 피부를 되돌렸고 그런 그의 옆으로 프리트가 늪에서 다시 하나의 고블린으로 변하더니 트림을 내뱉었다. 늪으로 들어왔던 포레스트 앤트들을 소화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현상이었다.

"후우, 어째 다른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이 녀석들 때문이었나. 장소는 확실히 기억했겠지?"

"물론입니다. 언제든지 다시 찾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프리트는 제법 오랜시간 동안 늪으로 변해있어서 그런지 약간 지친듯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을 들은 루프스는 만족스러웠다.

두 고블린은 진한 미소를 지으면서 부족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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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고블린이 사라진 장소의 근처에 자리잡은 나무에서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퍼석

무언가를 갉아내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무의 한곳이 파열하더니 그곳에서부터 한 무리의 포레스트 앤트들이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주변을 한번 훑어 보고는 다시 나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두 고블린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루프스와 프리트의 흔적을 쫓으면서 포레스트 앤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동시에 그만큼 은밀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살아 돌아간 두 고블린들을 쫓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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