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이주
조사대장 라모르 웨이페어는 잠결에 몽롱한 정신으로 비몽사몽 깨어났다.
"으으..."
그는 신음성을 내뱉으면서 조금씩 정신을 일깨웠다. 어느정도 정신을 되찾은 그가 가장 처음 느낀것은 익숙한 딱딱한 돌바닥이었다. 강제로 상당한 시간동안 숲 안에서 방랑생활을 이어온 그는 동굴에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거나 돌산의 한복판에서 잠이드는 일이 허다해 순간 지금도 그런 상황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그 착각이 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차르륵 팅-
몸을 일으키려 손을 움직이려 했더니 무언가에 막혀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손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할 때 마다 금속음을 울리면서 그 움직임을 막은 것이다.
"이게... 무슨!"
그제야 자신의 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경악성을 내뱉으면서 다급히 일어나려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쿠당탕-
일으키려던 몸은 제대로 지탱해줄 손과 발이 움직이지 못해 순식간에 다시 쓰러지고만 것이다. 그제서야 그는 기절하기 전의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발 아래의 땅이 늪지대로 바뀌더니 그대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간것을 기억해낸 것이다.
불길함을 느낀 라모르는 주변을 둘러보며 동료들을 찾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있는 장소를 그 눈으로 명확히 식별 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것은 그의 동료들이었다. 뱀피릭 플랜트에게 쫓기면서 총 열명이었던 인원이 다섯으로 줄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옆에는 두명의 동료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는지 가슴께가 오르락 내리락 하며 호흡을 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어서 그는 울퉁불퉁한 바닥과 비슷한 크기의 벽돌이 쌓여 만들어진 벽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어두운 시야에 동굴과 같은곳에 갇힌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는 건축물의 내부에 감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정면에 내부의 사람이 탈출하는것을 막기 위해 철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철창의 너머에 나머지 두명의 동료가 쓰러져있는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 다행이다"
동료들 전원의 생존을 확인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곧 단순히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법 정교해 보이는 벽돌로 쌓인 것이 인간들이 만든것과 비슷해 보였다. 다만 그가 알기로 그들은 군락지의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신들을 구하기 위한 원군이 들어왔다고는 군락지의 초입부를 떠올리면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듯이 그가 깨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단에 발을 디딛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창 가까이 다가간 그는 철창 밖의 복도를 살펴보았고 곧 복도 저편 어둠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오... 벌써 깨어났나?"
///
루프스는 병영의 지하에 지어진 지하감옥을 향해서 걸어갔다. 본래는 감옥이 아닌 잘못을 저지른 병사에게 훈계를 주기 위한 독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된 장소로 딱히 고문을 위한 도구나 상대를 단단히 묶어두기 위한 족쇄가 구비되어있지 않은 장소였다.
하지만 루프스는 이번에 다수의 인간들을 잡아오면서 그들을 가둬두기 위해서 병영의 지하를 임시로 감옥으로 써먹었다. 그리고 그들을 봉쇄하기 위한 족쇄로 대장장이들에게 부탁해 만들어낸 족쇄를 그들의 팔과 다리에 매달아 놓았다.
잠시 걸음을 이어가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했다. 남녀로 나누어서 각각 가둬둔 감옥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장소에서는 아직 모두 깨어나지 않았을 거란 그의 예상을 깨고 한 인간이 깨어나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오... 벌써 깨어났나?"
강력한 수면마취제의 효력이 벌써 다했다는 사실에 놀랍기는 했지만 루프스는 그에게 덤덤히 다가갔다. 깨어난 그는 루프스가 생각하기에 자신과 버금가거나 오히려 더욱 강한것으로 예상되는 인간이었다. 다만 구속되어있는 그는 별다른 움직임을 취할 수 없으며, 그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피폐한 그의 몸은 전력을 내기 부적절한 상황으로 위험은 없다고 판단하고 다가간 것이다.
"고... 블린?"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자신을 향해 다가선 이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반응에 루프스는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그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
갑자기 들이밀어진 검은 광택의 흉측한 고블린의 면상에 움찔한 그는 이를 악물고는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우리를 잡아 가뒀지?"
"그거야 너희들이 이상한 놈들을 이끌고 우리 부족 쪽으로 달려오니까 그런거지. 위험을 배제하는것, 그야말로 부족을 이끄는 입장으로서 반드시 행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나?"
"아니, 내가 정말 궁금한것은 어째서 죽이지 않고 사로잡은거지?"
그는 상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다. 간혹 인간들과 교류하려는 몬스터들이 있음은 알고 있다. 당장 왕국에서 제법 거리를 둔 곳에 오크 부족 연합국이라거나 인간들 틈에 섞여들어간 코볼트들이라거나 용병으로서 일하고 있는 트롤과 오우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블린들이 그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오랜시간 인간들의 눈앞에 나타난적이 없는 고블린들이 인간들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고는 생각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던지 말던지 루프스는 자신이 할 말만을 이었다. 그로서는 라모르가 고블린들을 어떻게 생각하던지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너희가 우리에게 필요한것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까"
느긋한 태도에 태평한 안색의 그는 순식간에 냉정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블린들은 그들에게 원하는것이 있었다.
바깥, 군락지 외부에 대한 정보.
간단한 정보들은 이미 엘프들이나 그의 부족에 합류한 인간들에 의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 많은 변질이 예상되는 정보들 뿐이었으며, 인간들이 지닌 정보는 질이 매우 떨어졌다.
현재 루프스는 바깥으로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계속 군락지에서 벗어나지 않고 생활하는것이 가능은 하겠지만 이곳은 위험이 사방 곳곳에 퍼져있는 장소였다. 언제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 고블린 부족을 잡아먹을지 알 수 없는 장소인 것이다. 그 와중에 제법 질이 좋았을것으로 짐작되는 무구를 착용한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나타난 것이다.
루프스는 그에게 구구절절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인간들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에게 간절히 자신들이 원하는것을 이야기해보아야 그들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줄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그들이 그 사실을 이용해서 자신들을 이용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프스는 그와 잠깐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감옥에서 등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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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라모르는 생각에 잠겼다. 고블린들이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오랜 험지 생활로 가지고 있는것이라고는 다 낡고 해진 무구들과 소소한 도구들 뿐인 그들에게 물질적인것을 원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판단하기를 자신들이 그들에게 제공할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들을 살려둔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렇다면 그의 짐작으로 고블린들이 자신에게 원하는것은 단 하나뿐으로 좁힐 수 있었다.
'정보? 바깥의 정보를 원하는건가? 어째서?'
그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자신들에게 원하는것으로 짐작되는 것은 단 하나, 군락지 바깥의 정보였다. 분명히 고블린들은 자신들이 군락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 들어온 조사대라는 사실은 알지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던 이들이니 자신들에게서 군락지 내부의 정보를 원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진것중 남은것은 바깥의 정보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아챈 라모르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고블린을 떠올리면서 침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