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이주
숲에서 일어난 이변으로 많은 몬스터들의 거주지가 변경된지도 오랜시간이 지나고 영역다툼에서 패배한 몬스터들이 하나 둘 씩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금 루프스의 눈앞에 있는 몬스터도 마찬가지의 행적을 보인 녀석이다.
고블린 정찰병들이 발견한 녀석을 루프스가 직접 상대하기 위해 나섰다. 상대는 소머리에 인간형의 육체를 지닌 미노타우로스였다. 직접 상대하기위해 나선 그가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했을 때 녀석은 이미 온몸 곳곳에 상흔과 날이 불규칙적으로 깨져 날이 들긴 하는지 의문인 도끼를 들고있는 모습이었다.
이미 정찰병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터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란 사실을 짐작했던 그는 단신으로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캉
날듯이 뛰어든 그의 내려찍기를 미노타우로스는 마치 미리 알고있었다는 듯이 수월하게 밀어냈다. 근력의 차이가 상당한지 조금도 힘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캉 캉 카가가각
루프스는 그에 아랑곳 않고 미노타우로스를 향해서 도끼를 연달아 휘둘렀다. 어깨와 팔에 있는 상흔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그의 공격을 미노타우로스는 도끼로 도끼를 흘려내면서 막아냈다.
캉 팅-!
방어에 전념하던 미노타우로스는 자신의 허리를 후려쳐오는 도끼를 밑에서부터 올려쳐냈다. 허공으로 붕 뜬 도끼로 루프스에게 큰 틈이 생겼고 미노타우로스는 그 틈을 향해서 도끼를 휘둘렀다. 단번에 끝내겠다는듯이 강렬한 파공성을 내면서 달려드는 도끼에는 어느새 시퍼런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콰앙!
도끼는 단번에 루프스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방어를 굳건히하고 찰나의 순간을 노린 미노타우로스의 노림수는 제대로 적중하는듯 보였다.
콰드득
싸움이 끝났다 생각한 미노타우로스는 갑자기 시야가 핑그르르 돌자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흐으"
미노타우로스의 뒤에서 단숨에 목을 갈라버린 루프스는 숨을 골랐다. 도끼가 힘에 의해서 허공으로 뜬 순간 재빨리 뒤로 뛰면서 잔상을 남겨두고 녀석의 뒤로 돌아가서 단번에 목을 쳐버린 것이다.
"목 한번 되게 질기네"
치면서 느껴진 강력한 저항에 여전히 손이 저릿저릿한 느낌에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나마 피곤해 하고 있어서 그런지 쉽게 잡았군"
꾹 주먹을 쥔 그는 방금전에 있었던 싸움을 떠올렸다. 미노타우로스의 힘은 그보다 훨씬 강력했다. 지쳐보이진 않았지만 피로가 쌓여있었는지 도끼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몸의 균형이 미묘하게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본래라면 손의 감촉만으로 눈앞의 루프스가 가짜라는걸 알 수 있었을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고블린들이 미노타우로스의 시체를 수습하고나자 그는 고블린들을 데리고 부족으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비슷한일이 자주 일어났다. 상급 이하의 몬스터들이라면 루프스가 직접 나서지 않고 부하들에게 맡기고 매우 드물게 최상급 몬스터가 다가오는 경우만 그가 직접 나섰다. 그 이상의 몬스터는 다행히 나타나지 않아 아직까지는 수월하게 막고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를 사냥하는것이 일상이 되어가던 어느 때 고블린들은 한가지의 정보를 들고 왔다.
족장의 집으로 들어선 고블린이 루프스를 향해서 말했다.
"족장,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이?"
고블린은 정찰병으로 부족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몬스터가 없는지 확인하는 원거리 정찰대에 속해 있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제법 거리가 떨어져있어 지나칠뻔 했지만 자신들을 발견했는지 부산스런 움직임을 보이는 인간들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인간들은 오랜시간 외부와 교류하지 못했는지 무구들이 녹슬고 낡았다는 것까지 전달했다.
"그리고..."
"또 뭔가가 있나?"
"확실친 않지만 그 인간들은 제법 강자들로 보입니다. 저보다 조금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이 절반에 나머지 절반은 분명히 저보다 약했지만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한명이 제대로 가늠이 되지가 않았습니다"
지금 보고하는 고블린은 최근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상급으로 올라선 고블린이다. 그런 그와 약간 약하거나 강하다는 것은 그 인간들이 상급이나 최상급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가 완숙한 상급의 고블린이었다면 자신보다 확연히 약하다고 했겠지만 축복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대비를 해야겠군. 일단 지켜보도록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블린은 물러났다. 그리고 루프스는 인간들에 대해 관심을 끊었다. 그저 스쳐지나가고 있는 것일수도 있으며, 어차피 이곳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살아나가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직접 인간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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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는 고블린들이 있는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우회하고자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들이 이미 너덜너덜해져 굳이 피할수 있는 싸움에 발을 담그기 싫다는게 첫번째였고, 고블린이라도 이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그들을 만만히 볼수가 없다는게 두번째였다.
우회해서 돌아가는데도 그들은 종종 고블린들과 조우했다. 다행인것은 그들도 조사대에 관심이 없는지 딱히 접근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몬스터들과 고블린들을 피해서 한참을 걸어 강가 부근에 도달한 그들은 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의 수심이 제법 깊어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 주변의 나무를 벌목해 임시로 뗏목을 만드는 것이었다.
문제는 벌목을 하면서 벌어졌다. 작은 나무들 위주로 벌목을 해나가던 한 조사대원은 벌목을 하던 중 걸리적거리는 위치에 있는 한 가시나무의 가지를 아무생각없이 들고있는 무기로 쳐낸 것이다. 그저 나무만 있는 숲이라는 생각에 방심했던 것이다.
그가 공격한 것은 다름아닌 뱀피릭 쏜, 피를 갈취하는 가시나무였다. 기본적으로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식물형 몬스터였다. 이 녀석은 한 때 몬스터들 끼리의 격렬한 전투의 현장에서 싹을 피운 몬스터로 하루 하루 피가 마를날이 없어 순조롭게 성장한 녀석이었다.
전투가 끝났을때는 스스로 사냥을 통해 피를 수집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성장한 나무였다. 그리고 지금 먹잇감이 들어오질 않아 숙면에 들었던 나무가 한 인간의 가지치기로 깨어난 것이다.
사아아아-
나뭇가지를 쳐내고 다시 벌목을 시작한 인간의 뒤통수를 향해서 뱀피릭 쏜의 나뭇가지가 뻗어나갔다.
푸욱
뻗어나간 나뭇가지는 별다른 저항도 못느끼고 나무를 치던 인간의 뒤통수로 빨려들어가듯이 들어갔다. 나뭇가지가 틀어박힌 인간은 순식간에 내부의 수분을 모두 빼앗기듯이 매말라갔다.
"흐어어어..."
한 인간을 해치운 나무는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영양분을 쪽 빨아내어 매말라 비틀어진 인간을 향해서 선심 쓰듯이 하나의 씨앗을 벌려진 입을 향해서 떨어트린 것이다.
씨앗은 순식간에 자라나 죽은 인간의 칠공에서 이파리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자 빼빼 매마른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뱀피릭 쏜의 주변의 조그마한 풀잎들이 들썩거리더니 일어서기 시작했다. 모두 풀잎에 뒤덮이거나 몸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이파리와 풀잎의 가지를 뻗은 몬스터들이었다.
모두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뱀피릭 쏜이 만들어낸 꼭두각시 들이다. 오랜시간 살아남은 뱀피릭 쏜은 이 숲에 들어오는 놈들 치고 홀로 들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자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향해서 방금 죽은 인간의 동료들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것의 명령을 들은 몬스터들은 일제히 퍼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창조주, 뱀피릭 쏜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 인간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과거 그들의 동료였던 대원이 다른 몬스터들과 같은 몰골로 함께 동료들을 찾아갔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