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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고블린-123화 (123/374)

123화

이주

퍽 퍽

바닥에서부터 솟아나는 그것은 새하얀 뼈만이 남아있는 손이었다. 이내 지면을 딛은 손은 바닥에서부터 뼈로 이루어진 몸을 끌어올렸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만났던 언데드, 좀비와는 전혀 다른 오로지 뼈만이 남아있으며 그 무장까지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이었다.

바닥에서부터 무수한 스켈레톤들이 솟아나와 도주하려는 조사대의 앞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조사대에게는 다행이게도 그들의 근처에서 솟아난 스켈레톤들은 그들이 충분히 감당할수 있는 이들이었다. 좀비 드래곤을 간신히 그 눈에 담을수 있는 거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퍼석- 까드드득

"얼른 도망쳐!"

갑작스럽게 변하는 상황에 당황했던 조사대였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퇴로를 막고있는것은 스켈레톤들이었지만 그들 뿐만이 아니라는것은 시선을 약간 뒤로 돌리는걸로 금세 알 수 있었다.

흐으으, 그으으

스켈레톤의 뒤편에서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좀비들이 그들의 사이로 가세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악문 조사대는 사력을 다해서 그들을 뚫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좀비 드래곤과 그 주변을 지키는듯이 보이는 고위 언데드들은 그런 조사대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변에 있는 스켈레톤과 좀비들은 그렇지 않았다. 뼈로 이루어진 칼로 그들의 앞길을 막았으며 썩어가는 몸뚱이로 장애물이 되어 그들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사대는 그런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쳤다. 몸이 부스러져가도 사지가 잘려나가고 동료가 그들의 발아래 짓밟혀도 길을 뚫고 왔던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언데드들의 방해로 경로가 약간 틀어졌지만 그것은 그리 특별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 사실이 소수나마 조사대원들의 목숨을 살리게 된 키가 되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언데드들에게 쫓기며 한참을 달린 그들은 이내 눈앞에 검은 땅의 끝이 나타났다.

"큭?!"

"잠...!"

선두에서 달리던 이들이 급작스럽게 몸에 제동을 걸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검은 땅의 끝은 다름아닌 절벽이었던 것이다.

절벽의 앞에선 그들은 뒤에서 여전히 뒤쫓아오고 있는 언데드들을 확인하고는 더이상 길이 없음에 한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절벽의 앞에 선 동료들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스물도 안되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눈치챌수 있었다. 절벽을 피해가기에는 이미 그들이 갈 수 있는 모든 방향에서 조여오고있는 닿는 시야에 빽빽히 들어찬 언데드들을 뚫어낼수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은 이내 절벽에서 뛰어내릴 각오를 다졌다. 위험을 살피기 위한 조사대였기 때문에 그 일원 하나하나가 모두 상당한 강자들이었으며 충분히 무수한 위험을 겪을 수 있다고 각오하고 들어온 이들이었다. 즉,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에 겁을 집어먹을 이들은 없었던 것이다.

결심이 서자 그들은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이 더욱 다가오기 전에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

과거 검은땅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한 조사대원, 르미리스는 그 후 어째서 자신이 아직까지 이 군락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살아남았지만 끝끝내 군락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사대는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그들의 퇴로라고 할 수 있는 장소는 얽히고 설킨 몬스터들의 영역으로 그야말로 군락지 최대의 마경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검은 땅 좀비 드래곤과 언데드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서 빠져나온 조사대는 그것이야말로 숲을 격동시킨 원인으로 파악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십여년에 한번씩 군락지 내부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약 백년동안 바뀌지 않는 세력권이 있다면 그곳은 그 종족의 오랜 터전이라고 보고 있었다.

진입 전에 군락지 내부의 몬스터 분포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아보았다. 자신들이 위치한 영역의 주인이 어떤 몬스터인지 모르는것은 여러모로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조사대는 언데드의 영역으로 변한 그 장소가 오크들과 리저드맨들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곳에 뜬금없이 언데드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들이 군락지에서 일어난 이변의 원인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조사대는 발에 땀이 나도록 퇴로를 색출했다. 그들이 처음 들어왔던 장소부터 플루 왕국이 아닌 외국으로 들어가는 길까지 그들이 보유한 모든 정보를 동원해서 퇴로를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작업이 불발로 끝이났다.

평생을 살아온 영역에서 벗어났으니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몬스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다른 환경은 그들에게 색다름을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초입부근에는 드물게 약한 몬스터들이 숨어다니고 있었다. 처음부터 살아가던 터전에 불청객들이 밀고 들어왔지만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해 숨어들었다가 그들이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은 이주한 강력한 몬스터들에게는 손쉬운 먹잇감이 손에 들어온것과 같았다. 그리고 약한 몬스터들은 대체로 번식력이 강해 그들의 입장에서는 먹고 또 먹어도 계속해서 식량이 나타나는 느낌이라 굳이 다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주저앉자 조사대는 지금까지 사용하던 경로로는 탈출이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뒤로 그들은 발길을 돌렸다. 목적지는 군락지의 동쪽 끝에 있는 바닷가였다.

목적지를 정한 조사대는 하루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 시간에 걸쳐 새로이 퇴로를 뚫으려던 그들의 노력은 결국 허사가 되었지만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바닷가를 노리는 것은 그곳이야말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바닷가에도 몬스터들이 있는것은 마찬가지지만 대체로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육지의 근처에서는 나타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리고 육지 근처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매우 작은 몬스터들로 최하급 몬스터들 중 최약으로 취급될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배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일말의 탈출 가능성을 가지고 출발한 그들은 지금 땅을 파내고 숨어들어서 밤을 지낸 것이다.

"끄응~!"

그녀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어느새 그의 동료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역경으로 오로지 열뿐이 남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끝까지 살아남은 최정예들이었다.

"먼저 일어난건가?"

"네, 눈이 일찍 뜨이더군요"

좁은 구덩이 속에서 뒤척인 동료들은 곧 모두 깨어나게 되었다. 그들의 대장인 라모르는 먼저일어나있는 그녀를 보고는 밖에서 무언가 바뀐것은 없는지 물었다.

"딱히 없습니다. 다행히 녀석들은 저희를 알아채지 못한것 같았습니다"

"으음... 그런가... 밖으로 나가면 알려야 할 소식이 하나 더 늘은게 어째 달갑지가 않군"

그들이 숨어든것은 전날 그녀, 르미리스의 정찰로 이 근처에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랜시간 인간들이 몰살시키려 심혈을 기울이던 고블린들이라는 것에 더욱 조심스러워졌던 것이다.

게다가 직접 보지 못하고 전달되기만 한 정보에는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잔뜩 있었다. 다양한 정보중에는 인간들을 부정적으로 대한다는 정보가 많아 그들의 정체를 짐작한 조사대가 경계한것이다.

"최대한 우회하도록 하지. 괜히 고블린들을 잡으러 갔다가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게 말이야"

""네!""

어느새 그들의 대장의 뒤로 모여든 대원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고블린을 발견한 장소로부터 우회해서 바닷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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