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을 뜨니 고블린-112화 (112/374)

112화

균열

쿵- 쿵-

무너져내린 성벽과 마을 그리고 그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인간들과 몬스터들의 시체, 이미 모든 전투는 끝났다는 듯이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고 있는 이곳에는 인간들과 다른 몬스터들의 육체를 물어뜯는 몬스터들과 더욱 북으로 올라가고 있는 몬스터들 뿐이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골렘이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속도가 매우 느린 골렘은 천천히 계속 북으로 나가면서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부수고 있었다.

골렘이 부순 성벽으로 몬스터들이 침입해 요새의 인간들이 버티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일직선으로 나가는 골렘의 걸음을 막아서기 위해서 특히 강자들이 나섰던것이 인간들이 더욱 버티지 못한 원인이었다.

골렘의 진격로에 다름아닌 요새 전역에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가진 마법물품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으로 주요 요새가 아니면 설치되어있지도 않은 것에 몇몇 요새들은 그 비싼 가격 때문에 설치도 못한 물건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물건을 지키기 위해서 골렘의 앞길을 막아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골렘의 몸에 조금의 기스만을 남길 뿐 별다른 피해도 못입히고 그 주먹과 발에 깔려버리고 말았다. 그 후 골렘은 그저 쭉 걸어갈 뿐이고, 인간들은 몬스터들과 골렘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최전방에서 몬스터들을 막고 있는 병사들을 제외한 전체에 후퇴명령을 남기고는 그들도 재빨리 빠져나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양이 된 병사들은 무너진 성벽 사이로 쳐들어온 몬스터들의 손에 주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버리고 도망치던 이들 중 절반은 제대로 도주하지도 못하고 요새내부를 휘젓기 시작한 몬스터들의 손에 목숨을 잃고 나머지 절반만이 도주에 성공 할 수 있었다.

요새의 이런 상황은 이곳만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좀비 드래곤이 날뛰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 요새로 가장 많은 몬스터들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지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몬스터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요새의 주인이었던 플루 왕국보다 약한 국가, 특히 요새에 신경을 써주지 못한 국가들이 가진 요새들도 대부분 몬스터들의 손에 폐허가 되었으며, 특히나 강력한 몬스터가 출현한 곳은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져버려 인간들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어 버렸고, 곧 다수의 국가가 연합한 연합군이 파괴된 요새를 되찾고 다시 견고한 경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결성되었다.

///

인간들이 한창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몬스터들에 끙끙대고 있는 사이에 루프스의 몸은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로 완전히 회복되었다. 제법 격렬한 싸움이어서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회복 할 수 있었다.

몸이 회복되자 루프스는 곧장 밖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되고 첫째날.

루프스는 곧장 경사를 타고 위로 올라가 조심스레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부터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그의 움막까지 들어온 녀석들은 없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입구를 퉁퉁 치면서 반응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깥 입구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한번더 주변을 살피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재빠르게 나오느라 위쪽을 신경쓰지 못한 그는 머리를 부딪힌 그는 머리를 쥐어잡았다.

"크윽..."

어째서 머리가 천장에 부딪혔는지 의아하게 위를 올려다 본 그는 그의 키보다 밑으로 내려온 움막을 볼 수 있었다.

'이놈들이 지나가면서 다 때려부순거 아냐?'

머리의 통증이 가라앉자 그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움막이 주저앉았다고 해도 큰 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을 뿐이라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별지장은 없었다.

'크으... 다 부수고 가버렸네'

바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완전히 폐허가 되버린 부족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유난히 거대한 물체에 의해서 짓눌린듯한 모습의 움막들이 있는가 하면, 다행히 녀석들이 그저 옆으로 피해갔는지 비교적 멀쩡해보이는 움막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움막처럼 다수가 밀듯이 지나가면서 절로 무너져내린 움막들도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무수한 언데드의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뼈의 발자국과 고름과 핏자국이 있는 좀비의 발자국, 그리고 어떤 놈들인지 갑주를 입고 있는 놈이 낸 발자국들까지 가지각색의 인간형 발자국들이 찍혀있었다.

"다행히 언데드들 전부 지나간 모양이군"

그렇지 않아도 무수한 언데드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따로 목적지가 있는걸로 짐작되었는데, 다행히 그의 생각대로 이곳은 그저 통과지점이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방향도 코볼트들 쪽이 아니니, 다른 녀석들도 무사하겠군"

그리고 루프스는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루프스가 고블린들과 엘프들이 피신해있는 코볼트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는 그때, 정작 코볼트의 영역에 들어선 고블린들이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이자식들! 배신하겠다는 거냐?!"

들고있는 창에 불을 피우면서 파인피가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정면에서 화를 받아내고 있는 이는 다름아닌 루프스의 자식인 쿠알론을 필두로 한 셋이었다.

"배신이 아니지, 아버지는 이미 죽었을테고. 그러면 부족을 이끌 이가 필요한데 그에 어울리는데 우리만한 고블린이 있나?"

쿠알론은 코웃음 치면서 배신은 무슨 배신하고는 그를 비웃고 있었다.

"족장이 죽었다고 어떻게 확신한다는 거냐! 그리고 족장이 아니었으면 어차피 자기도 죽었을 놈이, 무엇보다 족장을 그렇게 남기게 된 원인은 너희들이잖아!"

쿠알론의 태도에 열불이 난다는 듯이 그는 방방 뛰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희생은 존경할만하나 그게 우리 때문이라는 말은 잘못되지 않았나?"

"뭐... 뭐라고! 캬아악!"

그의 뻔뻔한 태도에 파인피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앞으로 튀어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를 저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덥석

"멍청아 그렇게 앞으로 튀어나가지마, 지금 모습을 족장이 보면 뭐라고 하겠냐?"

프리트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열을 내고있는 파인피를 막으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애초에 족장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좀비들이나 상대하자고 주장한건 당신들이 맞잖습니까?"

"흥! 그럼 아버지께서 알아서 강압적으로라도 우릴 물리게 했어야지, 결국 끝까지 남기로 한건 아버지니 모두 아버지의 책임이 맞는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극렬히 반대했었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절레절레

프리트는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의 그를 보고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족장께서 이제 우리를 이끌 수 없는 상태이니 당신이 맡겠다?"

"그래, 나는 아버지의 자식이면서 충분한 강자이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항상 우리 부족을 위해서 싸운 공적도 있는데 내가 족장의 자리에 앉는데 뭐 더 필요한거라도 있나?"

그런 쿠알론의 모습에 프리트는 뭐 이런 황당한 놈이 있는가 하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더니 그를 향해서 한마디를 더했다.

"쯧, 족장께서 고작 그런일로 죽었을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 분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끌고 도망치든 숨든 둘 중 하나는 성공했을 겁니다. 족장자리에 앉을려면 당신을 따르는 녀석들이나 대려가서 그러시던지요"

프리트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면서 그를 향해서 그렇게 말했다.

"호오... 그 말, 후회하지 않겠지?"

"후회할게 뭐가 있나요?"

그는 후회하지 않겠냐는 쿠알론의 물음에 코웃음 치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신을 따르는 녀석들이 얼마나 된다고"

씨익

그리고 그런 프리트의 대답에 녀석은 기분나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몸을 돌렸다.

"날 따르는 놈들은 모두 따라와라!"

그리고는 힘차고 우렁차게 소리를 치더니 코볼트 부족의 목책 바깥을 향해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