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공습
루프스는 무사히 승리를 따낸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는 자신과 비등한 힘을 가지고 있는 언데드였지만, 결국 그의 능력을 이용해서 결국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그것은 딱히 스켈레톤 나이트가 보유한 힘이 그보다 적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내보인 힘은 충분히 강력했으며 그 검술은 루프스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무기술 싸움으로 들어갔다면 루프스의 필패가 확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번의 부딪힘으로 루프스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동안의 훈련이 맹탕이 아니었으며, 동시에 스킬로 받는 보정이 충분한 효능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대가 본격적인 검술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루프스는 전투의 방향을 바꾸었다. 축복을 받은 이후 최초로 본격적인 능력을 이용한 전투였다.
무엇보다 승리를 따낸 가장 큰 이유는 스켈레톤의 방심이었다. 루프스가 이대로 계속 싸우는 순간 필패라는 사실을 읽어냈듯이 그 또한 필승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 순간 최상급에 이른 고블린에 대한 경계심이 내려가 방심하고 말았다. 게다가 스켈레톤이 유지하고 있는 생전의 감각이 시각과 청각 단 두개라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다.
미각은 혀가 사라지면서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피부와 신경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 촉각은 물론 그로인한 통각도 더 이상 느낄수 없었다. 그것은 후각 또한 마찬가지로 더 이상 그가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다만 시각과 청각은 흑석에 의해서 도로 되찾은 상황이었다.
주변에 흐르는 공기의 진동을 직접 감지한 흑석이 생전 그가 겪어보았던 청각으로 변환시켜주었다. 그리고 귀화를 비추어 정면에 있는 사물에 대한 정보를 마찬가지로 시각으로 변환시켜주면서 두가지 감각을 그는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원한다면 사라진 다른 감각으로 변환 시킬 수 있지만, 그가 지닌 흑석이 그에게 제공할수 있는 생전의 감각은 두가지 뿐으로 다른 감각을 살리면 시각과 청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른 감각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을 느끼는 스켈레톤 나이트는 자연스럽게 좀비와 같은 최하급 언데드들이 느끼는 생명력 감지를 더 이상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만일 그가 생전의 그였다면, 침착하게 청각과 후각을 이용 그리고 촉각을 통해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으로 대략적인 루프스의 위치를 알아내 그와 대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사후, 스켈레톤이 된 이후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는 시각을 버리고 다른 감각을 생성하고는 생명력 감지에 신경을 쏟아부어 이리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시각에 너무 의존했고, 시각에서 사라진 루프스를 더 이상 찾지 못해 허무하게 져버리고만 것이다.
스켈레톤과의 전투로 전력으로 특화능력 환상을 운용했던 루프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흐릿한 몸은 뚜렷하게 변했으며, 마치 흩어질듯한 아지랑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어찌되었든 상대는 자신과 동급의 강자,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력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어 전투가 끝났을 때는 전력의 방출로 온몸에 힘이 없는 상태였다.
'상황은?'
잠시 숨을 고른 루프스는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스켈레톤과 싸우는 동안 다른 고블린들이 겪고 있을 좀비들과의 전투상황이 어떻게 흐르고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스켈레톤을 상대하면서 언뜻 본 고블린들의 상황이 심각한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그는 주변을 둘러보면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끄응... 별로 좋지 않군. 이렇게 희생이 많다니, 다른 녀석들은 뭘 하고 있는거지?'
긴장한채 주변을 둘러본 루프스의 눈에 보이는것은 온통 시체 투성이였다. 처음부터 시체였던 언데드들과 그들과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다시 쓰러진 고블린들의 시체가 여기저기에 쓰러져 꿈틀대고 있었다. 다행히 바닥에 흩어져있는 것들 모두 사지와 목이 잘려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그가 스켈레톤을 상대하는 사이, 고블린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온통 시체투성이인 바닥에서부터 눈을 땐 루프스는 한창 격전이 이어지고 있는 장소를 찾았고, 여전히 격렬한 싸움에 쉽게 그의 눈에 띄었다. 다행히 그가 찾는 이들은 아직 모두 살아 있었다.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띄인 것은 끝까지 이곳에서 언데드들을 막기를 주장하던 자식들의 상황을 살피니, 그런 이야기를 한 만큼 선두에서 싸워나갔는지 온몸이 엉망인 상태였다. 좀비들이 주로 노리는 목덜미와 팔뚝에는 물린 자국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으며, 오랜 전투로 지친듯이 그들이 내지르는 검과 창은 힘을 잃어 비실거리고 있었다.
그 밖의 자식들도 녀석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상처는 하나같이 중상이었다. 하나는 주먹이 함몰되었고, 하나는 칠공에서 피를 줄기줄기 흘리고 있으며, 하나는 오랜시간 동고동락해온 늑대와 함께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쓰러져있으며, 한 발, 한 발 적을 향해 쏘던 손가락은 이미 다 해지고 닳아 더 이상 움직일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고블린들도 심각한 화상을 입은 팔에 창이 부러지고, 마찬가지로 칠공에서 피를 흘리면서 속에 든 것들을 게워내고 있으며, 남은 하나는 스스로 일으킨 시체들과 싸워야만 했다.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은체 적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상대하는 적은 지치지도 않으며, 그 수는 얼마나 되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고블린들이 하나의 언데드를 쓰러트리면 곧장 둘의 언데드가 튀어나와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크윽, 모두 후퇴해라! 각자 챙길 수 있는 동료들을 최대한 챙기고 후방으로 후퇴해라!"
더 이상 언데드들과의 싸움에 가망이 보이지 않자, 루프스는 고블린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조... 족장!"
그런 족장의 명령에 언데드들과 싸우던 고블린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들도 후퇴를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한창 밀리고 있는 와중에 후퇴를 거론하지 않는다는것이 오히려 이상 할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들은 결국 후퇴를 속으로 삼킬수밖에 없었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물러나는 순간, 언데드들은 후퇴하는 고블린들의 등을 무차별로 뜯어먹을 것이다. 고블린들은 후퇴하지 않은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내가 막고 있겠다! 너희들, 여기서 하나라도 더 빠져나가야 한다!"
잠시간의 휴식으로 무리한 능력 운용으로 인해 생긴 정신적 피로를 어느정도 회복된 루프스가 앞으로 나섰다. 다행히 스켈레톤과의 싸움으로 능력을 좀 무리해서 사용하느라 부담이 온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 언데드들을 상대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고블린들이 후퇴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먼저 움직인것은 루프스였다.
후웅-
그가 지닌 도끼가 위압적인 풍압을 뿜어내면서 고블린을 물어뜯으려는 좀비의 머리를 쳐냈다.
데굴 데굴
그의 도끼는 한번에 좀비의 머리를 쳐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죽었던 그는 사기의 도움을 받아 머리가 떨어져 나갔음에도 멀쩡히 움직여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어서 가라고! 여기서 더 얼쩡대지 말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고블린들의 모습에 루프스는 홧병이 도진듯이 거칠게 소리쳤다. 그로서도 지금 몰려오는 언데드들을 몇이나 상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무수한 좀비들의 앞에 당당히 섰다. 무수한 좀비라고 해보았자 그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약자들 뿐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기는 무리가 오지만 신체적으로 지치지도 않았으며, 별다른 상처도 없는 그는 후퇴하는 고블린들을 쫓아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막아섰다.
"캬아아아아아앗!"
언데드들을 뒤로 보내지 않겠다 각오한 그는 목청껏 포효를 내지르면서 그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그가 내지른 포효에는 더 이상 언데드들이 도망치는고블린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겠다는 각오가 실려있었다.